회장 권력 막강한데 감시기구 사실상 유명무실…“한국 농업 손실 초래 사안엔 묵언 일관” 비판도
현행 농협법에 따르면 농협중앙회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2009년에 단임제로 개정됐다. 예전부터 농협중앙회장들의 권력은 막강했다. 수천 개의 지역 농협과 수백만 조합원의 조력을 받아 수백조 원을 주무를 수 있는 자리인 데다 임원 인사 추천권까지 갖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농협중앙회장들이 이러한 권력을 앞세워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장들의 부정부패가 연달아 드러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1988년 당선된 한호선 전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됐고, 이어 당선된 원철희 전 회장은 비자금 조성에다 횡령 혐의까지 더해졌다. 원 전 회장의 뒤를 이은 정대근 전 회장도 서울시 양재동 농협 부지의 현대차 매각 과정에 개입해 이권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중앙회장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명박 정부는 농협 개혁에 칼을 뽑아 들었다. 2009년 농협중앙회는 단임제를 도입했다. 중앙회장의 임원 인사 추천 제도를 폐지하고 인사추천위원회를 도입했다. 중앙회장 선거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후보 간 과열 양상을 줄이기 위해 직선제 대신 대의원 간선제로 바꿨다.
2020년 이성희 회장 부임 이후 이 같은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중앙회 안팎으로 연임제 추진을 위해 법을 개정한다는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다. 이는 중앙회장 연임을 골자로 한 법 개정안들이 2021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국회에 네 차례 발의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8일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을 골자로 한 농협법 개정안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당시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앙회장은 총괄대표권자이자 총회·이사회의 의장으로서 농협의 중장기적인 성과와 발전이 회장의 재임 기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연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신협, 새마을금고, 산림조합, 중소기업협동조합 등 유사 기관은 회장은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임제 전환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중앙회장의 권력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중앙회는 2012년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경제지주 두 지주사를 출범하며 권력 분산을 시도했다. 문제는 중앙회가 두 지주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는 중앙회장의 인사추천권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두 지주사 수장 선임에 중앙회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앙회장 감시기구도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다. 중앙회는 재산과 업무 집행 상황을 감사하기 위해 감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2015년 검찰이 농협 비리 의혹을 수사할 때 드러났던 사건 대부분이 이성희 회장이 감사위원장으로 지내던 시절에 발생하는 등 감사위원회는 중앙회를 두둔하는 기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중앙회장을 감시할 기구가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연임제로 회귀한다면 중앙회장의 부정부패가 2009년 이전만큼 심해질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농업의 경쟁력 강화와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중앙회장이 연임제 논의에만 공력을 쏟고 있다는 점도 농업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관계자는 “정부의 쌀 수급 조절 실패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 등 한국 농업의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들이 나올 때마다 이성희 회장은 일절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그런데 임기 중에 연임제를 도입하려는 모습을 보면 중앙회장이 자신의 사익 추구를 위해 우리를 이용하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주장했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농협법 개정안에 따르면 현 이성희 중앙회장도 연임이 가능하다. 좋은농협만들기 국민운동본부는 “농협 내부의 민주주의가 미약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농협중앙회장 연임은 농협중앙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고위직 임·직원의 농협 지배를 강화하고, 농민조합원의 주권 실현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그런데 여기에 이성희라는 ‘개인’의 연임까지 허용한다고 하니,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민주적 권한을 특정인을 위해 남용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도 지난 31일 “대한민국 헌법 제128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 대체 농협중앙회장이 무엇이며, 이성희 중앙회장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길래 헌법과 대통령을 뛰어넘어 ‘셀프 연임’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나설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라고 비난했다.
국회에서는 중앙회장의 셀프 연임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돼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농협중앙회장의 임기는 1차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도록 변경하고,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선출되는 중앙회장부터 비로소 적용할 수 있도록 부칙에 명시했다. 윤준병 의원실 관계자는 “현 회장의 개인 능력과 별개로, 단임제에서 선출된 중앙회장이 연임하는 것은 오히려 연임제의 장점을 퇴색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연임제보다 직선제 전환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앞의 조합 관계자는 “대의원 간선제가 아닌 직선제로 전환해야 한다. 1113명의 조합장만 투표를 하는 게 아니라 207만 농민이 모두 투표할 수 있는 직선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중앙회장이 정말 농업과 농민들의 이익을 위해서 힘을 쏟는 선재 장치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