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명령이니, 애들 밥에 고춧가루를…”
▲ 기계교 비극 관련 MBN 뉴스 캡처. |
피의자 권 아무개 씨(여·38)는 10세와 7세의 두 딸을 둔 평범한 엄마였다. 권 씨는 첫째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자모회에서 양 아무개 씨(여·33)를 만나면서 악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당시 권 씨와 양 씨의 자녀들은 같은 반 학생이었는데 권 씨의 자녀는 공부를 매우 잘했던 반면에 양 씨의 자녀들은 그렇지 못했다. 양 씨는 권 씨에게 자신이 J 대학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자신의 일이 매우 잘 풀린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양 씨는 무직의 평범한 학부모였다.
이후 양 씨는 본격적으로 ‘기계교’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실제로 여기서 말하는 ‘기계’란 철과 금속으로 된 기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뜻이 없는 단어일 뿐이다. 양 씨는 권 씨에게 “모든 사람에게는 기계가 있는데 이 기계의 말을 따라야 성공한다”는 식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계’의 말은 모두 문자 메시지로 전송이 되며 그 문자 메시지는 양 씨 자신의 번호로 발신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 물론 양 씨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보내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양 씨의 말에 홀린 권 씨는 이후 ‘기계’를 모두 믿어버리게 된다. 초반기에 받은 문자는 ‘밥을 먹지 마라’ ‘세탁기를 언제 돌려라’ 등 사소하고 당혹스러운 내용들이었다고 한다. 권 씨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이를 다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 씨는 △남편에게 밥을 주지 마라 △집에 들어가지 말고 역 앞에서 노숙을 해라 등의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명령을 권 씨에게 주문했다.
그렇다고 권 씨가 특별히 정신적인 이상이 있는 여성은 아니었다. 권 씨는 전북에 있는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정신질환 경력도 전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신 수준을 가진 여성이었다. 권 씨를 조사했던 담당 수사관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너무 순진하고 순수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기계’를 믿어버린 것이라고 추정했다.
초반의 문자 내용이 갈수록 이상해진 것은 아이들에게 가혹행위를 강요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애들을 일주일간 씻기지 마라’ ‘애들 옷을 갈아입히면 안 된다’ 등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 전달됐지만 권 씨는 이를 착실히 이행하게 된다. 권 씨의 작은 딸 A 양(7)이 다니던 유치원 관계자는 “유난히 A 양이 또래에 비해 성장이 더뎠다”며 의문을 나타냈다. 그 이유는 당시 권 씨가 받은 ‘기계’의 명령이 ‘아이들 밥에 고춧가루를 두 스푼씩 넣어서 주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한참동안 밥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도 모르게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권 씨가 아이들에게 절대 발설하지 말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아이들이 따르지 않을 경우 가혹한 폭행이 뒤따랐다. 경찰 조사에서 권 씨는 ‘기계’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 씨가 명령을 어길 경우 양 씨는 벌금 명목으로 상당수의 돈을 상납 받았다. 실제로 양 씨가 권 씨로부터 2년 동안 1억 4000여만 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양 씨는 권 씨의 카드를 직접 받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권 씨는 돈이 더 필요하게 됐고, 급기야 사채를 끌어다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계’의 모든 메시지들은 양 씨가 보낸 문자에 불과했다. 경찰 조사결과 양 씨는 권 씨의 자녀들이 자신의 자녀보다 공부를 잘하자 그 질투심에 ‘기계교’라는 거짓말을 시작하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양 씨는 ‘기계’를 통해 권 씨의 자녀가 시험에서 0점을 맞을 것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또한 권 씨가 알고 있는 모든 지인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아무도 못 만나게 지시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려운 명령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권 씨는 ‘기계’의 명령을 법으로 여기고 지냈다. 그러다 갈수록 감당하기 힘든 명령에 괴로웠던 권 씨는 ‘기계’에서 딸들과 자신이 해방되기 위해 두 딸을 죽이고 자신은 자살을 감행했던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권 씨는 “기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먹을 수도 씻을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야만 했다”고 진술했다. 즉 ‘기계’의 말을 끝까지 거역하지 못했던 셈이다.
현재 양 씨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그녀를 알고 있는 주변 친척들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들이었다”며 “양 씨를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그녀를 아주 정상적이고 문제가 전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권 씨의 자녀를 질투해서 벌인 일이라고 하기엔 그 명령들이 너무도 비인간적이었다. 또한 양 씨는 권 씨가 두 자녀를 살해했을 당시 경찰에게 허위로 진술을 하기도 했다. 권 씨의 직업을 마음대로 꾸며내 수사에 혼선을 빚게 한 것이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권 씨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엄마였다. 일부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남편과의 관계가 많이 소원한 편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 심각하게 힘든 상황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직까지도 ‘기계’를 맹신하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하는 내내 ‘기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말을 반복하더라”며 “‘기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상태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박상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