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9호선 마주보며 질주… 정면충돌 초읽기
지난 14일 토요일, 요금을 500원 인상하겠다고 기습 공고한 서울지하철 9호선 민간사업자 서울시메트로9호선(주)과 서울시의 공방이 ‘치킨게임’(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메트로9호선에 대해 서울시가 ‘과태료 1000만 원과 대국민 성명 발표’라는 강수를 뒀지만, 당사자인 메트로9호선은 정연국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요금인상 계획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반격했다. 서울시는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메트로9호선 정 사장을 불러 청문회를 열기로 하는 등 사실상 해임절차에 착수, 양측은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다. 도대체 ‘9호선 지하’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서울지하철 9호선 요금인상 공방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은 일주일 전인 지난 14일 토요일. 메트로9호선은 지하철 운임을 6월 16일부터 교통카드 기준 1050원에서 1550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공문을 역사에 공고하고 자사 홈페이지에 안내문을 팝업창으로 올렸다. 이날 오후 지하철 9호선 여의도역사는 공고문을 벽면에 붙이는 역무원들로 분주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서울시는 “운임인상을 용납할 수 없으며, 공고문을 떼지 않으면 과태료 1000만 원을 부과하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사실 메트로9호선이 운임 인상을 고려한 것은 한 달 전인 올 3월부터다. 메트로9호선 관계자들은 “운임을 (500원) 올리겠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고, 서울시는 “협의체를 꾸려 요금인상 폭을 낮추는 방향으로 회의 중이다”라고 요금 인상을 억눌렀다. 사태는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직후 불거졌다.
12일 서울메트로9호선은 운임 인상을 결정하고, 다음날인 13일 서울시 담당자들에게 “6월 16일부터 운임을 올릴 것”을 통보했다. 서울시는 사업자가 총선 결과를 보고 저울질하다가 여당이 과반을 점하자 운임 인상을 기습적으로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물가 앙등으로 서민 경제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대중교통요금을 한번에 50%까지 인상하겠다고 나선 메트로9호선의 의사 결정 과정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예고도 없었고 토요일 밤, 그것도 인터넷과 역사 공고문을 통해 기습적으로 요금인상을 발표했다.
물론 메트로9호선 측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 관계자는 “지하철 9호선 운임 인상 건이 하루 이틀 된 이야기도 아니다. 2010년 3월에 논의하기로 해 놓고 2년이나 미루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며 “2010년에는 서울시장 선거 때문에 안 된다더니, 지난해에는 오세훈 시장 사퇴 때문에 미루고, 박원순 시장은 무작정 요금 인상 안 된다 하고…. 지난해 말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만큼 재무 상태가 안 좋아졌는데도 서울시는 협상을 질질 끌기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민간사업자인 메트로9호선 내부 의사결정과정에 주목한다. 지하철 요금을 결정하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이뤄진다. 사업자인 메트로9호선이 이사회를 통해 운임을 결정해 서울시에 제안하면, 서울시 도로정책과와 실무진이 협의를 통해 폭을 조정한다. 요금을 정하는 우선권은 메트로9호선에 있지만, 협의 후에 정하는 셈이다.
요금 인상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메트로9호선은 사실상 현대차그룹 계열사다. 현대차그룹은 메트로9호선의 지분 32.64%(현대로템 25%, 현대건설 7.64%)를 보유한 최대주주. 기습 인상을 선언한 정연국 사장은 기아자동차 국내영업본부장 출신으로 올 초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메트로9호선의 이사회 구성원 7명 중에 현대차그룹 출신은 기아차 출신인 정 대표와 현대로템 출신 1명, 현대건설 출신 1명, 모두 3명이 포진해 있다. 500원 가격 인상을 결정한 것은 1월 이사회에서다. 해당 이사회 당시 대표이사는 기아차 재경본부장 출신 안희봉 씨. 이후 전면에 나선 것은 정 대표로 사태가 현대차그룹으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요금 인상 결정 과정에서 메트로9호선의 2대주주(24.5%)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맥쿼리인프라)의 압박도 크게 작용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협상을 할 때 제일 곤란하게 굴었던 사람들이 후순위채권을 보유한 맥쿼리인프라와 신한은행 담당자들이었다”면서 “맥쿼리에서 요금 인상을 하지 않으면 이사들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압박했다더라. 현대차 관계자들은 이사라고 해도 큰 힘도 없고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메트로9호선의 2대주주인 맥쿼리인프라에 대한 비난 강도를 높이면서 시민의 관심은 외국계 자본인 맥쿼리그룹으로 쏠렸다. 맥쿼리인프라가 우리나라에서 투자한 민자사업 전체의 문제로 부각됐다. 맥쿼리인프라가 우리나라에 투자한 14개 국내 민자사업 가운데 12개가 총운영수입보장제(MRG)를 통해 과도한 수익을 얻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 와중에 서울시와 맥쿼리자산운용이 서울지하철 9호선 실시협약을 맺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큰형인 이상득 의원의 장남 이지형 씨가 맥쿼리자산운용과 신한은행의 합작회사인 맥쿼리IMM의 국내 대표를 맡았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 집안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의 파장이 커지면서 이상득 의원이 직접 나서 “아들과 서울지하철 9호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다음날 맥쿼리자산운용도 “서울지하철 9호선의 최대주주인 맥쿼리인프라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씨의 큰아들 이지형 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자료를 배포했다.
맥쿼리자산운용은 자료를 통해 “이지형 씨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맥쿼리IMM의 대표를 맡았던 것은 맞다”면서도 “이곳은 상장주식 및 채권을 투자하는 일반자산운용업무를 담당하는 합작회사일 뿐 맥쿼리인프라 운용사인 맥쿼리자산운용은 사업 간 교류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 박원순 시장과 정연국 사장. |
이처럼 지하철 9호선은 불똥을 사방으로 날리며 마주 달리는 중이다. 이대로 가다간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명지 조선비즈 기자 mae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