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사모님들 ‘사모’ 바람 거세네…
▲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올들어 부자들의 ‘투자 득템’ 영순위는 단연 ELS(주가연계증권)와 DLS(파생상품연계증권) 등 파생상품이다. 일정 기간 후, 또는 일정 기간 기초자산 가격이 어떤 기준을 충족하면 수익을 지급하는 구조다. 보통 연 환산 기대수익률은 원금보장형이 10% 미만, 원금비보장형이 10~30%다. 원금비보장형이라도 주가가 급락하지만 않으면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ELS 발행 규모는 전분기 대비 72.8% 증가한 13조 1384억 원을 기록했다. 분기 사상 최대치다. 1분기 DLS 발행액도 전분기 대비 51.9% 증가한 5조 5134억 원으로 역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어서며 추가 상승 확률이 떨어지자, 펀드를 환매해 ELS와 DLS에 넣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값과 국제유가가 주춤하면서 DLS보다는 ELS로 몰리는 돈의 규모가 더 크다.
강남지역 모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부자들의 자산관리 원칙 가운데 가장 우선은 손실을 보지 않는 것이다. ELS와 DLS는 손실 확률은 직접 투자보다 낮으면서, 기대수익은 은행금리+알파(α)를 충족해 부자들의 니즈(Needs·욕구)에 딱 맞다”면서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에는 주가 부침이 심한 개별종목보다는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에 더 많은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자들의 또 다른 경향은 ‘사모(私募)’ 바람이다. ‘그들만을 위한 상품’을 원하는 것이다. 사모펀드는 공개 모집이 아닌 49인 이하로 구성된 소수의 투자자가 일정금액 이상을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억 원 단위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 자산가들이 조성한 사모펀드는 일정기간 동안 환매가 금지한 상태에서 운용된다.
대형 증권사의 경우 그동안 발행한 ELS만도 수천 개에 달한다. 신상품도 매일 쏟아진다. 자연스레 ELS를 잘 고르는 게 중요한 일이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원금을 대부분 날린 ELS나 ELF(ELS에 투자하는 펀드)도 있고, 최근의 횡보장에서도 -30% 이상 까먹은 채 만기 상환한 ELS도 있다. 따라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은 부자들을 위해 ELS를 대신 골라서 투자하거나, 아예 고객의 요구에 맞는 상품을 ‘주문제작’하기도 한다. 이는 최근 사모펀드 시장이 급팽창하는 것과, 사모형태의 파생상품 투자가 급증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1분기 ELS 발행액 가운데 사모발행은 7조 6371억 원으로 58.1%를 차지한다. 전분기 사모발행 규모 3조 7105억 원과 비교하면 105.8%나 늘어난 수치다. DLS 역시 사모발행 비중이 85%나 된다. 사모 DLS의 경우 기초자산이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원자재 등 일부 기초자산의 경우 주가 변동성이 커 손실 우려가 있어 큰손들은 안정적인 사모 ELS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의 최근 집계를 보면 공모와 사모를 합친 총 펀드 수는 지난 13일 현재 지난해 3월 31일 이후 452개(4.82%)가 늘어난 9829개다. 이 가운데 파생상품 형태로 이뤄진 사모투자 상품은 2936개로 같은 기간 757개(34.74%)나 급증했다. 파생상품형 펀드는 파생상품에 10% 이상을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공모와 사모를 합친 전체 파생상품형 펀드가 830개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사모 형태만 크게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부자들이 사모 형태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선호가 높아진 까닭도 있지만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 여력이 약해진 데도 그 원인이 있다. 김종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1년 동안 펀드 투자에 있어 공모형이 줄어들고 사모형이 늘었다는 것은 소수의 거액 자산가들의 투자만 늘어난 데 따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이후 고액 자산가들은 장기에 걸쳐 거액을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의 규모가 늘어났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물가상승과 고용불안 등으로 투자역량이 되레 줄어든 까닭에서다.
대형 증권사 PB지점장은 “부자들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펀드에 손실이 나면 이를 만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 다른 투자자들의 환매나 자금투입 때문에 수익률이 떨어지거나, 매수단가가 올라가는 간섭현상이 있는 점도 알게 됐다”며 “이러다 보니 기대수준이 다른 투자자들의 간섭 없이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있는 사모형 상품을 선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자들이 위험관리에 열을 올리는 또 다른 이유는 세제 변화 가능성에 있다. 현재 민주통합당은 지분율 2% 이상 또는 50억 원 이상 주식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는 정책안을 내놓고 있다. 4·11 총선에서 현행 주식양도차익 비과세를 지지하는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아직 대선이 남아있다. 주식투자를 많이 하는 고액 자산가들은 세금폭탄을 맞을 수도 있는 셈이다. 주식이 더 오를 것 같지도 않고 세금은 더 내야 할 확률이 있는 만큼 ELS와 같은 비(非) 주식상품으로 돈을 굴리려는 수요가 늘 수밖에 없다.
흥행에 실패하긴 했지만 얼마 전 한국장학재단의 삼성에버랜드 지분매각에 적잖은 강남 부자들이 펀드를 통해 참여하려 한 것도 세금이 가장 큰 이유다. 비상장사는 할인된 가치로 증여나 상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새누리당이 다주택자의 주택양도소득세 중과세 제도를 폐지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도 변수다. 부동산 경기침체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양도소득세 부담이 줄면 부자들로서는 새로운 투자처가 생기는 셈이다. 따라서 향후 부동산 관련 투자자금으로 쓰려는 수요 역시 존재한다.
모 증권사 PB본부장은 “부자들의 영원한 화두는 세금이다. 원금손실 안 보고 세금이 적은 곳에 돈을 넣으려 한다. 요즘 같은 정권 말기에는 새 정부의 정책 변화 가능성 때문에 관망세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한편 ELS 등 파생상품 시장 팽창은 주식거래와 펀드판매 위축으로 극심한 실적부진에 시달리는 증권사들에게 ‘가뭄의 단비’다. ELS는 대개 3년 만기로 4~6개월마다 조기 상환된다. 이때 고객들은 처음 약속 받은 수익률을 받기 때문에 수수료가 떼이는 줄 잘 모른다. 하지만 주식형 펀드와 마찬가지로 대략 1%의 수수료를 판매사가 가져간다.
펀드는 운용수익만큼 돌려주기 때문에 고객들이 수수료 0.1% 차이에도 민감하지만 ELS는 고객들이 신경을 거의 안 쓰기 때문에 그만큼 판매가 쉽다. 또 ELS는 빠르면 2~3개월 만에 조기 상환하고 다시 가입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 증권사들이 계속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