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건 맡은 변호사 등 대북 테마 ‘나노스’ 지분 보유 투자조합 참여…해당 변호사들 “내 돈으로 투자”
김성태 전 회장과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의 연결고리는 사외이사뿐만이 아니었다. 일요신문은 김 전 회장이 본인 소유 제우스1호투자조합(제우스1호)을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 A 씨와의 인연에 활용한 정황을 포착했다. 제우스1호 조합원 명단엔 A 씨 외에도 김 전 회장 친동생 변론을 맡았던 판사 출신 변호사 B 씨, 특수부 검사 출신 쌍방울그룹 전 사외이사 등 여러 법조인이 이름을 올렸다.
검찰은 쌍방울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도 측근 명의로 제우스1호에 참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제우스1호가 지분을 보유한 쌍방울그룹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는 과거 대북 테마주로 거론되며 주가가 급등한 바 있다.
제우스1호 조합원인 변호사 A 씨는 검사 시절 주가조작 등 금융·증권범죄 수사와 여러 대기업 비자금 수사 등으로 주목받았다. A 씨는 변호사 개업 이후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원영식 초록뱀그룹 회장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원 회장이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을 때다. 당시 원 회장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변호사 A 씨는 원 회장이 주도한 여러 투자조합에 조합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원 회장은 상장사 전환사채 발행에 투자조합 형태로 참여한 뒤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두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 회장이 법조인 관리를 위해 법조인들에게 투자조합 참여 기회를 줬고, 김성태 전 회장 역시 제우스1호를 비슷한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의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변호사 A 씨는 "김 전 회장이 투자 기회를 줬다"면서도 "내 돈을 투자한 거다. 투자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했다. 손해 볼 수도 있고 이익 볼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거의 날린 돈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시세차익을 거두기는커녕 손실이 예상된다는 취지로 특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쌍방울그룹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은 대북송금과 뇌물공여, 횡령·배임 등 혐의로 2월 3일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대북송금은 2019년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800만 달러를 몰래 전달했다는 의혹이다.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 추진은 실제 사업보다 주가 부양 목적이 컸다는 의심을 받는다. 쌍방울그룹이 2019년 5월 북한 측과 체결한 대북사업 관련 합의 내용을 보면 지하자원개발, 철도건설 등 쌍방울그룹 역량으로는 실행이 어려워 보이는 사업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이 대북사업이나 남북교류에 오랜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다. 중국통으로 알려진 쌍방울그룹 전 부회장 C 씨는 검찰 조사에서 "김 전 회장은 대북사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평소 북한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호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쌍방울그룹이 조직적으로 계열사 나노스를 대북 테마주로 부각하려 한 정황도 있다. 대북사업을 대가로 쌍방울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1월 17일 공판에서 검사는 쌍방울그룹 임원 일부가 참여한 2019년 1월 14~15일 카카오톡 단체 대화내역을 증거로 제시했다. 당시 대화방에서 대북사업 관련 합의 실무를 담당한 임원 D 씨는 전 통일부 차관 영입에 관한 보도자료를 올린 뒤 대화방에 참여한 임원들에게 "오늘도 N 활성화 부탁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언급한 N은 나노스를 지칭한다.
검사는 증인으로 출석한 D 씨에게 "네이버 주식 관련 댓글창에 나노스가 대북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취지의 댓글을 달아줄 것을 종용하는 대화 내용인가"라고 물었다. D 씨는 "맞다"고 답했다. 이어 D 씨는 주식 부양 목적이 포함돼 있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하지만 2월 3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쌍방울그룹 당시 CFO(최고재무책임자)는 같은 질문에 대해 "주가 부양이 아닌 기업가치 제고 목적이었다"고 진술했다.
실제 2019년 1월 나노스는 공시와 보도자료 등을 통해 대북사업 추진 소식을 적극 알렸다. 이후 주가는 급등했다. 당시는 2019년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교류 기대감이 컸던 시기다.
나노스는 2019년 1월 8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사업목적에 광산개발업, 해외자원개발업 등을 추가하겠다는 안건의 주주총회소집을 공고했다. 2019년 1월 14일엔 전 통일부 차관을 고문으로 영입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또 나노스는 2019년 1월 21일 양선길 당시 대표가 "그동안 추진해온 대북 관련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나노스 주가는 2019년 1월 8일 5000원에서 2019년 1월 21일 장중 한때 9140원까지 올랐다.
나노스 지분을 보유한 김 전 회장 소유 제우스1호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가 보내지고 있다. 검찰이 확보한 제우스1호 주요 조합원 명부에 경제계 및 법조계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점은 의심을 더 키웠다.
조합원 명부엔 이화영 전 부지사도 실질조합원으로 기재돼 있다. 입금명의자는 이 전 부지사 비서 역할을 했던 측근이다(관련기사 [단독] 쌍방울 법인카드 누가 썼나…이화영과 여비서 수상한 행적). 제우스1호와 관련해 이 전 부지사 변호인은 1월 13일 공판에서 "이 전 부지사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제우스1호 조합원인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 A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내가 김 전 회장 가족이 관련된 사건 변호를 했고, 결과가 잘 나왔다. 김 전 회장이 고맙다고 워런트(일정 수의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사게 해줬다. 돈 주고 샀다. 워런트를 행사해서 (제우스1호가 보유한 나노스) 전환사채를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또 A 씨는 "원영식 회장과 친해져서 원영식 회장이 하는 투자에 조금씩 들어갔다. 실질적으로 손해본 것이 많다. 예금 금리보다 못 받은 것도 있다"고 밝혔다.
기업사냥꾼이라는 비판을 받는 김 전 회장과 원 회장의 투자에 동참한 것과 관련해서는 "주가조작을 할 수도 있으니까 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논리라면, 아무 데도 투자하면 안 된다"며 "내가 아는 원 회장은 주가조작을 안 한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 B 씨가 제우스1호 조합원이 된 경위도 비슷했다. B 씨는 2013년 쌍방울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의 친동생 변호인 중 한 명이었다. B 씨는 2017년 김 전 회장의 매제였던 쌍방울그룹 재무담당 이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제우스1호에 가입했다. B 씨는 "변론 당시 김 전 회장을 본 사실은 있으나, 이후에는 연락을 받은 사실도 없고 만난 사실도 없다"며 "별로 큰 금액은 아니라서 별 고민 없이 가입한 것으로 기억하고, 투자금을 납입했다"고 밝혔다.
쌍방울그룹의 사례로 투자조합을 통한 전환사채 발행이 이슈가 되면서 금융당국도 관련 행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2년 10월 11일 국정감사에서 "사모를 투자조합의 형태로 해서 점점 규제는 회피하면서 그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시장 불공정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저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처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