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하는 이 대표, ‘충분히 수사 협조’ 영장 빌미 제거…소환하는 검찰, ‘답할 기회 줬다’ 명분 쌓기
“‘답정기소(답은 기소로 정해져 있다)’다”며 검찰 수사를 비판하면서도 이재명 대표가 검찰 소환에 응하는 것이나, 검찰 역시 출석해도 입장문 외에는 진술하지 않는 이재명 대표를 다시 부르는 것 모두 향후 이뤄질 구속영장 청구와 체포동의안 투표를 고려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 측은 방탄국회에 대한 비판을 최소화하고, 검찰은 이 대표 구속영장 청구 및 기소 필요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통화한 적 있다” 말 바꾼 김성태
태국에서 송환되면서 이재명 대표와의 인연을 전면 부인했던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검찰 진술이 달라졌다. 1월 17일 송환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 전 회장은 “이재명 씨는 전화도 한번 한 적 없다. 전화번호 알지도 못한다”며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 수사에서 달라진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2019년 이화영 당시 경기 평화부지사(구속 기소) 등과 함께 북한 광물 사업권 관련해 중국에서 북한 측 인사를 만나는 기업 간담회에 참석했었는데,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이화영 전 부지사가 전화를 걸어 이재명 대표를 바꿔줬고, 이 대표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는 취지다.
쌍방울그룹이 대북 송금에 나선 것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를 위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경제협력 사업용이라는 진술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1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조성을 목적으로 500만 달러를 경기도 대신 송금했다고 인정했는데, 그해 11월에는 추가로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을 위해 300만 달러를 송금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이 ‘대가성’을 주목하는 대목이다.
이미 기소된 이들의 재판에서도 김성태 전 회장과 이재명 측의 관계를 시인하는 진술들이 나오고 있다. 1월 31일 열린 이화영 전 부지사 공판에서는 2019년 김성태 전 회장의 모친상에 김 전 회장과 친분이 없던 경기지사 비서실장이 조문을 왔다는 쌍방울그룹 전 비서실장의 진술이 나왔다. 전혀 알지 못했다는 앞선 김 전 회장, 이재명 대표의 진술과 다른 얘기들이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책임론’ 목소리 잠재우기
이재명 대표는 ‘검찰의 신작 소설’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검찰이 이미 기소로 방향을 정했다며, 검찰의 수사는 대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반발이다. 이 대표는 “결국 (대장동·위례 개발 비리 의혹) 사건은 기소할 듯하다. ‘답정기소’”라며 “기소를 위해 명분을 만들고, 합리적인 설명을 하면 그걸 깨기 위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대장동·위례 신도시 특혜 개발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추가 소환조사 요구에 전격적으로 응했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대가는 모욕적”이라면서도 소환에 응하겠다고 1월 30일 밝혔다. 검찰에 구속영장 청구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했을 때 ‘검찰 수사 비협조 및 소환 불응’은 영장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사에 충분히 협조했다”는 명분을 만들려는 전략적 계산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기자들의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 질문에 “(본인) 혐의에 대한 뚜렷한 증거도 없고, 도망을 갈 것도 아니고, 주거가 부정한 것도 아니고, 증거를 인멸하려야 할 수도 없는 상태인데 뭐 때문에 체포 대상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내 비판 여론을 고려했을 때에도 소환에 응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비명계 중심의 ‘이재명 책임론’ 목소리를 잠재워야 한다. 당장 고민정 의원 등 비명계 의원들 사이에서 “체포동의안 부결 확정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 수사에 응하는 모습을 보여줘 당내 반발을 최소화해야 하고, 더 나아가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더라도 민주당 내에서 나올 ‘이재명 방탄정당’이라는 비판을 최소화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검찰에 출석할 때마다 얻을 수 있는 ‘탄압받는 이미지’는 당내·외 여론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데에도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검찰 역시 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1차 소환조사 때처럼 이 대표가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대표는 150쪽 넘는 검찰의 질문지에 33쪽 분량의 진술서로 갈음하겠다는 진술만 반복한 바 있다. 그럼에도 수사팀에게는 소환이라는 명분이 더 중요하다. 검찰에게도 제1야당 대표를 수사하는 것이기에 ‘과정의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략이다. ‘모든 의혹에 다 답할 기회를 줬다’는 명분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엄희준)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2차 소환조사에서 1차 조사 때 확인하지 못한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 측근 비리 연루 의혹을 집중 추궁한다는 방침이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은 소환조사 등 주요 고비마다 빼먹지 않고 꼭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직접 불러 해명할 기회를 주는 방어권 행사도 이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번 주말 즈음, 2차 조사를 마친 뒤 2월 중순쯤 이 대표의 구속 영장을 청구할 전망이다.
#"유죄 얼마나 잘 받느냐가 더 관건"
검찰 안팎에서는 ‘시기와 범위가 달라질 수 있을 뿐’ 구속영장 청구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제출되면 현재 임시국회 상태에서 민주당이 이를 부결시키는 시나리오까지 ‘높은 확률’로 전망하고 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임시국회를 열어둔 것은 구속영장 청구를 염두에 둔 것이고, 영장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도 상관없다. 검찰에는 오히려 1심에서 유죄를 얼마나 잘 받느냐가 더 관건일 것”이라며 “체포동의안 부결까지 염두에 두고, 검찰은 기소 예상 일정을 짜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