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사람 감금·폭행 회칼 위협에도 영장 기각, CCTV 공개되고서야 보호조치…가해자 “진심 사과, 수사 결과 따를 것”
김 아무개 씨에게 감금 폭행을 당한 피해자 A 씨의 말이다. A 씨 변호를 맡은 천호성 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 대표변호사는 “이 사건은 1년 전 벌어졌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된 수사나 피해자 보호 등 최소한의 조치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폭력 전과 7범이다.
피해자 증언과 경찰 사건 기록을 종합해보면 사건은 다음과 같다. 김 씨는 F 코인 회사를 운영했다. 그런데 2022년 1월 김 아무개 직원이 F 사 회사 자금 150억 원 상당의 코인이 담긴 코인 지갑을 훔쳐 잠적했다고 한다. 김 씨는 잠적한 직원을 찾기 위해 직원들과 지인들을 모았다. 김 씨는 잠적한 직원의 부하 직원이자 가까운 사이였던 송 아무개 씨를 찾으면, 소재 파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사건은 2022년 2월 3일 벌어졌다. 김 씨는 송 씨와 알고 지냈던 피해자 A 씨와 B 씨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A 씨와 B 씨는 6개월 전 송 씨와 잠시 한집에서 같이 살았던 사이다. 김 씨는 ‘송 씨 어디 있느냐’고 물어봤고 A 씨와 B 씨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에 김 씨는 ‘추운데 사무실 가서 얘기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A 씨와 B 씨가 사무실로 가자 김 씨는 이들에게 휴대전화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 통화 내역에 약 2주 전 1분가량 송 씨와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이 통화기록을 보자 김 씨가 돌변해 40cm 되는 회칼을 들이대면서 ‘손가락 하나만 자르자. 왜 거짓말했어’ ‘배때기 한 번 쑤실까’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가 B 씨 네 번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사이를 칼로 베면서 ‘얘네는 빠따를 맞아야 한다. 빠따를 맞아야 전부 말한다’면서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를 갖고 왔다고 한다.
이후 김 씨의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됐다. 김 씨는 무릎을 꿇린 뒤 뺨을 때리거나, 엉덩이를 방망이로 때렸다. 감금되면서 폭행이 시작된 시간은 2월 3일 1시 35분 무렵이었다. 이때부터 10시간 넘게 두들겨 맞았고, 송 씨 행방을 말하라며 협박당했다. 이때 김 씨는 피해자들에게 ‘집에 가고 싶으면, 처벌불원서를 쓰라’는 등 협박을 계속했다고 한다. 처벌불원서를 쓰자 김 씨는 피해자들에게 ‘처벌불원서까지 썼으니 너희는 경찰서 못 간다. 처벌불원서까지 쓰고 고소하면 무고죄 될 수 있다’는 등 협박을 이어갔다고 한다.
2월 3일 14시 25분 무렵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A 씨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김 씨 등은 ‘화장실에 가려면 신발을 벗고 가라’고 했다. A 씨는 신발을 벗고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출입문을 향해 뛰었고 파출소까지 약 800m를 달렸다. 당시는 체감 온도 영하 10℃ 이하의 살을 에는 날씨였다. 맨발로 살기 위한 전력 질주 끝에 A 씨는 논현동의 한 파출소로 뛰어 들어가 ‘살려달라’며 외쳤다.
A 씨는 경찰에게 ‘친구가 죽고 있다’며 ‘지금 빨리 안 가면 친구가 죽는다’고 말했다. A 씨는 경찰차를 타고 김 씨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사이 김 씨는 피해자 A 씨가 도주한 걸 인지하고, 사무실을 이탈하면서 내부 CCTV 저장소를 은폐하고 범행에 쓰였던 회칼 및 야구 방망이 등을 없앴다.
당시 출동한 경찰은 A 씨, B 씨의 상해 상황이 심각한 상황에서 몇 가지 실수를 했다. 가장 큰 실수는 당시 사무실을 찍고 있던 CCTV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경찰은 ‘CCTV는 모형이다’라는 김 씨 측 말을 확인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씨가 피해자에게 보복하지 못하도록 긴급체포 등 추가 조치를 하지도 않았다. 이후 강남경찰서에 사건이 배정돼 수사관이 내부 CCTV를 확보하려고 했으나 이미 증거인멸을 한 뒤였기 때문에 결국 경찰은 CCTV를 확보할 수 없었다.
김 씨는 이 같은 무자비한 감금 폭행을 벌인 다음 날인 2월 4일 잠적한 직원이 있다고 생각해 강남구의 한 주거지로 이동했다. 김 씨는 사설 경호원 등과 함께 그 주거지를 침입했지만 직원은 없었다. 타인 주거지를 무단침입한 김 씨는 출동한 경찰에 공동주거침입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강남경찰서는 김 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 측은 “김 씨가 주거지가 일정치 않고, 폭행 전과가 많다”며 “피해자들 손을 칼로 벤 것을 인정하지 않고, CCTV 영상을 인멸하는 등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2022년 2월 7일 영장 실질 심사에서 영장이 기각되면서 김 씨는 풀려나게 된다.
사건은 아무런 진전 없이 1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다. 그동안 변화는 강남경찰서에 있던 사건이 서울 광역수사대(광수대)로 이첩된 것뿐이었다. 광수대로 이첩된 뒤에도 피해자를 소환하거나 김 씨를 조사한 일은 없었다.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초조하게 경찰 수사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만 흐를 뿐이었다.
그렇게 1년가량이 흐른 사건은 결정적인 반전 계기를 맞게 된다.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TV’에서 당시 사무실 내 CCTV를 확보해 공개한 것. 카라큘라TV 채널을 운영하는 이세욱 씨는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가 건네줬다”고 말했다. 이 CCTV 속에는 회칼로 위협당하거나 김 씨가 방망이로 때리는 등 피해자가 주장한 결정적 장면들이 찍혀 있었다.
이 씨는 “제보자에 따르면 김 씨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는 전관 변호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감금 폭행에 가담한 김 씨 측 직원이 주거침입 피해자와 통화한 내용에는 “너희 때문에 변호사비만 3억 썼다”, “국회, 검사, 기자 돈 안 먹은 놈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씨는 일요신문에 “검경 및 정치권에 친분이 없다”며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선임한 변호사가 변호 중이다”고 말했다.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사건이 화제가 되자 그제야 경찰은 피해자에게 ‘피해자 안전 조치를 신청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사건 발생 364일 만이었다. CCTV를 공개한 이세욱 씨는 “김 씨가 보복하려고 했다면 100번을 더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신경 안 쓰다 이제야 ‘보호조치를 꼭 받아라’는 문자 메시지가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일요신문에 김 씨는 “내 불찰로 고통을 받은 피해자분들께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내가 받아야 하는 잘못은 수사 결과를 분명하게 따를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천호성 변호사는 빠른 수사 재착수를 촉구했다. 천 변호사는 “사건이 멈춘 지 약 1년이 지났다. 피해자들이 위해서라도 빨리 정리가 되길 바란다”며 “피해자들은 배달 라이더, 요식업 종사자로 건달, 코인과 전혀 상관없는 땀 흘려 돈을 버는 건실한 청년들이다. 김 씨에게 애꿎게 두들겨 맞고 중상을 입었고, 감금 폭행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김 씨의 구속”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