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검찰 수사 비판 “핵심 증거 제시했어야”…항소심서 ‘제3자뇌물제공죄’로 공소장 변경 전망도
하지만 정작 법원 안팎에서는 ‘소신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회적 여론도 분명 중요하지만 재판부는 법과 증거만 놓고 판단해야 하는 지점에서 ‘검찰 수사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검찰과 곽상도 전 의원 모두 항소해 2심의 판단을 받게 된 상황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이 1심처럼 대응할 경우 2심에서도 무죄가 날 수 있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검찰, 곽 전 의원 모두 항소
1심 패소 이후 검찰은 곧바로 항소했다. 검찰은 “1심 판결은 제반 증거와 법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사회통념과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곽 전 의원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유죄 판단을 두고 맞항소한 상황. 검찰의 항소와 곽 전 의원의 맞항소는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앞서 이원석 검찰총장은 선고 이후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해 대면 보고를 받고 엄정 대응을 당부했다. 같은 날, 공판팀장인 유진승 국가재정범죄합수단장에게도 항소심 공판업무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송경호 지검장은 담당 수사팀으로부터 무죄 분석 및 공소유지 계획을 보고받고, 지휘부와 함께 향후 공소유지 대책 및 관련 잔여사건 수사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2심에서 뒤집을 수 있을까
2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의원의 선고공판에서 뇌물수수 및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국회 부동산 특조위원으로서 곽 전 의원의 의정활동이 대장동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50억 원이 곽 전 의원에게 직접 지급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를 밝혔다. 아들이 받은 50억 원을 ‘곽 전 의원의 몫’으로 볼 증거가 부족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의원으로서 직무 관련성 부분은 인정될 여지가 있고 이는 아들에게 지급된 돈을 피고인이 직접 수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라며 “아들 계좌로 입금된 성과급 중 일부라도 피고인에게 지급되는 등 사정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 증거만으로 아들에게 지급된 돈을 피고인에게 지급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화천대유가 곽병채(곽 전 의원 아들)에게 지급하기로 결정한 50억 원의 성과급 금액은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고 판단된다”면서도 “성과급으로 지급한 돈이 알선과 관련이 있다거나 그 대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남 변호사를 통해 전달된 5000만 원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했다. 곽 전 의원과 남 변호사 모두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곽 전 의원에게 벌금 800만 원형을 선고하고 5000만 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남 변호사에게도 400만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검찰 부실 수사 비판 불가피
2심에서 검찰이 기존 논리를 반복하면 또 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과거 검찰은 50억 원이라는 금액의 의미를 높게 봤다. 50억 원이 비상식적인 퇴직금이기 때문에, 금액만으로 충분히 ‘뇌물 성격’을 입증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다. “아들 병채 씨가 성인으로 독립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아들이 받은 돈이 아버지 곽 전 의원에게 건네지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부실한 수사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검찰이 최근 들어 경제공동체의 개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는 느낌이 있다”며 “이미 결혼해 독립생계를 꾸린 자녀라면 분명 뇌물을 건넨 쪽에서 ‘대가’를 요구한 것을 추가로 제시해야 했는데 그런 추가수사 없이 기소를 하니 무죄가 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병채 씨가 실제로 근무를 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50억 원’이 과하기는 하지만, 검찰의 추가입증이 필요했다는 비판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 역시 “기소를 할 때부터 무죄가 예상됐던 사건”이라며 “뇌물을 준 쪽(김만배 측)과 받은 쪽 모두 검찰의 기소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김만배 측의 허풍이라고 볼 여지도 있는 상황에서 검찰은 유죄를 입증할 만한 핵심 증거가 있어야 했는데 검찰은 그걸 ‘50억 원이라는 비상식적 금액’이라고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이 ‘곽상도 전 의원이 50억 원을 받는 것을 요구했거나, 혹 사전에 알고 김만배와 직접 조율했다’는 정도의 SNS나 문자, 전화 대화 정도는 증거로 제시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관련 경제공동체 개념을 깐깐하게 본 대법원 판례도 이미 있었다. 검찰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기소를 강행한 셈이다. 검찰은 2015년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뇌물수수 사건에서 STX가 정 총장 장남이 33% 지분을 보유한 요트회사에 건넨 7억여 원의 후원금을 정 총장에게 준 뇌물로 보고 기소했다. 하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50억 클럽 일괄적으로 기소했어야”
앞선 변호사는 특히 검찰이 곽상도 전 의원만 기소한 것도 문제 삼았다. 곽상도 전 의원 외에도 다수의 멤버들이 ‘50억 클럽’에 이름을 올린 상황에서, 곽 전 의원만 기소한 것은 재판부에게는 ‘유죄’를 선고하기 더 힘들 수밖에 없다는 풀이다.
그는 “만일 검찰이 수사를 통해 일괄적으로 5~6명의 50억 클럽 멤버를 기소했다면, 재판부는 멤버 개개인마다 ‘대가 요구’가 있었는지, 뇌물로 볼 수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고 유무죄를 나눠서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진 곽 전 의원만 먼저 기소를 해버리니 재판부 입장에서는 ‘유죄’를 선고하면 줄줄이 이어질 50억 클럽 사건 관련자들도 자동으로 유죄라고 해버리는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럴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의 사건을 고려해 무죄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적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공소장 변경’으로 2심 전략을 바꿀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1심 때처럼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 씨가 받은 50억 원을 곽 전 의원이 받은 것과 동일시하지 않고, 제3자뇌물제공죄로 조금 더 쉽게 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추가 수사를 통해 뇌물죄 입증을 더 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김만배가 아들 병채 씨를 통해 곽상도에게 줬다, 곽상도가 달라고 했다’라고 하는 전언을 넘어서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뇌물수수나, 제3자뇌물제공죄도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