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교체 후 SR 지분 민간 재매각 가능성…유지·보수업무 철도공단 이관 검토, 민간 진입장벽 낮아져
#SR 지분, 민간에 재매각하나
수서고속철도(SRT)를 운영하는 SR의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우선매수청구권(풋옵션)이 2023년 6월 만기가 도래한다. SR의 지분은 코레일(41%)과 사학연금공단(31.5%), IBK기업은행(15%), KDB산업은행(12.5%)이 나눠 들고 있다. 문제는 SR이 현재 자본잠식 상태라는 점이다. 2027년 수서-광주 복선전철이 추가로 개통될 것을 고려하면 차량을 추가 구입해야 하는 SR의 빚은 앞으로도 크게 늘어난다. 당분간 수익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들이 풋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털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학연금공단 등이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코레일은 연 6%의 이자를 얹어주고 지분을 인수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코레일이 SR 지분을 50% 이상 소유할 경우 상황이 애매해진다. 코레일이 SR 지분을 완전히 소유한다고 해도 지배회사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레일과 SR 간의 경쟁체제를 형성하려 하는 정부의 목표와도 배치된다.
이런 가운데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은 나희승 사장이 해임되고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하는 새로운 사장이 올 경우 최연혜 전 코레일 사장 재임 시기와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연혜 전 코레일 사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에 취임한 후 SR 설립을 주도해 철도 경쟁체제를 도입한 인물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최연혜 전 사장도 원래 SR 분리 반대하셨던 사람인데 자기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국토부 의견을 따랐다. 신임 사장이 올 경우 SR 지분을 사게 되면 민간에 재매각할 개연성도 충분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SR 지분 매각은 철도 분리 체계를 공고화하는 동시에 민간이 고속철도 운영에 참여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레일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나희승 사장은 철도 통합을 줄곧 주장해 온 만큼 섣불리 민간에 지분을 재매각하지 않았겠지만 올해 사장이 바뀔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코레일이 현재 적자가 심해 지분 매각할 핑계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교통연구원의 최진석 선임연구위원은 “코레일은 SR과의 통합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지분을 매각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새로운 사장이 오더라도 내부에서 엄청난 반대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일 측은 이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답변했다.
#시설 유지 보수·관제권 이관하면…
국토부는 현재 철도 시설 유지·보수 기능과 관제권 등을 국가철도공단에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코레일은 현재 선로 등 철도 시설을 관리하고 있으며 선로를 달리는 차량들을 지속 관제하는 역할까지 홀로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국토부가 최근 발주한 철도안전체계 심층진단과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 용역에 시설 유지보수와 관제권 이관에 관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17일 발표한 철도안전 강화대책에도 코레일과 협의 없이 ‘관제기능 중앙관제화’가 담겨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토부는 빈발하는 철도 사고의 한 원인으로 코레일의 역량 부족을 지목하고 있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GTX랑 SR이랑 코레일이 같은 선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제라도 국가가 일사불란하게 시설 보수나 관제 업무를 보는 게 맞다는 판단이다. 일개 운영사인 코레일이 혼자서 철도 제반 업무를 통솔하는 게 사리에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업무 이관이 ‘스텔스 민영화’를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시설 유지 보수와 관제 업무 등을 철도공단이 관리할 경우, 향후 철도 운영사들이 어떤 노선이든 부담감 없이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코레일 한 관계자는 “철도는 시설 유지 보수나 차량 정비에 비용이 엄청 들어가는데 그 부분에서 사실상 부담이 사라지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아진다”고 말했다.
특히 고속철 노선은 흑자가 약속된 ‘알짜배기 노선’으로 꼽힌다. 자본잠식 상태인 SR도 고속철 운영에서는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철도 사업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민간에서도 눈여겨 볼 여지가 있다. 앞서의 코레일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운영사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SR도 최초에는 대우건설과 동부건설이 제안했던 사업이고 지금 GTX나 신분당선, 신안산선, 공항철도 모두 건설사와 은행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들어왔다”며 “고속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민간이 철도에 들어오기 쉽도록 진입장벽 낮춰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새롭게 도입된 ‘개량 운영형 민자사업’ 방식에 따르면 민간 사업자가 기존의 공공시설물을 개량할 경우 사업 운영권을 획득해 수익을 추구하는 민자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 건설 등 비용이 대거 투입되는 단계에서는 투자하지 않은 민간 사업자들이 부분 개량만으로도 운영권 획득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책국장은 “현재 공공철도가 영업하는 노선에 민간 사업자들이 쉬이 진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라며 “앞으로 공공부문에 민간사업자가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계속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철도 민영화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코레일의 시설 유지·보수 업무 이관 등이 ‘스텔스 민영화’의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국가고속철도와 관련해서는 민영화 계획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