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단 소문 듣고 찾아온 이스캔데룬 캠프 진료소 장사진
그린닥터스 봉사단원들은 순간 지진임을 간파했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네팔, 중국 쓰촨 등 숱한 지진지역에서 긴급 의료지원 활동을 펼쳐왔던 그들이었지만, 이번 지진의 흔들림은 너무도 컸다. 정근 단장은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긴급대피 메시지를 올렸다.
밖으로 뛰어나온 대원들의 차림새가 다들 엉망이었다. 신발 대신에 숙소 실내화를 신고 나오거나, 추운 바깥 날씨에도 불구하고 얇은 옷가지만 걸친 대원들도 눈에 띄었다. 그만큼 절박한 순간이었다는 방증이었다. 16명의 대원들이 모두 숙소 밖 안전지대로 무사히 대피했음을 확인했다.
지진 순간 1층 로비에 있던 소방공무원 출신 최찬일 그린닥터스 이사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곧바로 8층으로 뛰어올라가 거기 숙소에 머물고 있던 오무영(소와청소년과 전문의)·김석권(성형외과 전문의) 과장을 안전하게 대피시기도 했다. 벌써 호텔 밖에서는 앰뷸런스가 소리가 굉음을 일으키면서 질주하고 있었다. 여진 피해자들을 구조하는 것이었다. 그린닥터스 대원들은 동영상 안부 인사를 통해 한국에서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무사함을 알렸다.
그린닥터스는 하루에도 수없이 크고 작은 여진 속에서도 사흘째 튀르키예 지진 이재민 진료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18일 주말 첫 진료를 했던 이스캔데룬 이재민캠프 컨테이너하우스에 마련된 그린닥터스 임시진료소 앞에는 이재민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그린닥터스’라는 의료봉사단이 진료를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던 모양이다.
그린닥터스 대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튀르키예 아이들이 한국 봉사단을 보자마자 “꼬레”라고 외치면서 환영했다. 하도 귀여워서 아이에게 ‘그린닥터스’가 적힌 작은 플래카드를 쥐어주자, 이를 들고 이재민 캠프 주변을 뛰어다니면서 “꼬레”를 외쳤다.
투르키예 주민들은 대부분 진료해주는 한국의료진에게 고맙다고 인사했고, 함께 기념사진 찍자고 조르기도 했다. K팝 때문인지, 대한민국이 선진화된 덕분인지, 과거 한국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을 도와준 역사적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형제의 나라’로 여겨서인지 알 수 없지만, 투르키예 주민들은 ‘그린닥터스’라는 대한민국 의료단을 열렬히 응원했다. 여진 공포 속에서도 이들의 응원은 단원들에게 격려와 위안이 됐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까지 생겼다.
이날 그린닥터스 의료진은 임시진료소에서의 외래진료 뿐만 아니라, 이재민 캠프까지 왕진도 했다. 소아청소년과 오무영 과장(온종합병원)은 크고 작은 상처로 곪거나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많이 진료했다. 그 중에는 옴 환자도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옮길 가능성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해줬다.
외과 박무열 과장(일신기독병원)은 즉석에서 티눈 제거수술과, 손바닥에 나무가시가 깊이 박힌 이재민을 국소 마취해 수술로 제거했다. 지진으로 인한 붕괴과정에서 파편에 입은 상처, 급히 대피하다가 발목, 팔꿈치 등 인대나 관절 등을 다친 이재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박무열 과장은 외상을 크게 입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이재민캠프까지 방문 진료하기도 했다.
성형외과 김석권 과장(온종합병원)은 기저질환으로 당뇨와 당뇨발을 앓고 있는 이재민의 다리 궤양치료와 함께 각종 피부질환자들을 보살폈다. 정근 단장(안과전문의)도 임시진료소 외래진료와 이재민캠프 왕진 등을 통해 사시. 백내장. 시력저하, 알레르기눈병 환자들을 진료하는 등 사흘째 그린닥터스 긴급의료봉사단은 이스캔데룬 임시진료소에서 튀르키예 이재민 160명을 치료했다.
정근 단장은 “지진으로 사회 인프라 시설이 붕괴되는 바람에, 특히 화장실 등 보건위생시설이 태부족해 이재민들이 피부질환 등으로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며 “앞으로 튀르키예 지진 이재민 돕기 기증물품에 각종 피부질환 연고치료제 등이 많이 포함됐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정근 단장은 이어 “튀르키예 아이들과 주민들의 진심어린 환대와 감사에 가슴 뭉클했다. 대한민국이나 튀르키예가 같은 어족인데다,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운 투르키예는 피를 나눈 우방국이므로 ‘형제의 나라’라는 사실을 이번 튀르키예 봉사를 통해 절감하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고 말하며 그린닥터스의 튀르키예 긴급의료봉사단 파견에 대한 의미를 새삼 되새겼다.
박정헌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