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새 감염 환자 폭증…“경기 침체 속 데이트앱 활발” 묻지마 관계 원인 추측
#일본 매독 역대 최다, 상당수는 20대
도쿄에 거주하는 회사원 카오리 씨(가명·30)는 작년 10월, 남자친구가 매독으로 판명됐다. 결과를 들은 카오리 씨도 검사를 받았고 “처음에는 음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매독은 잠복기가 길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2주에 한 번 검사를 계속했더니 7주 후 양성 결과가 나왔다.
“설마 제가 매독에 걸리다니… 충격이 너무 컸어요.” 카오리 씨의 남자친구는 “매독이 확진되기 몇 달 전에 성매매업소를 이용했다”고 털어놨다. ‘그때 감염된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이다. 신뢰가 무너진 두 사람은 교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22년 일본 매독 감염자 수는 약 1만 3000명에 이른다. 1999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역대 최다 기록이다. 특히 도쿄의 감염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NHK에 따르면, 도쿄 내 매독 감염 보고 수는 3677건으로 남성이 2291건, 여성이 1386건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남성의 경우 약 9배, 여성은 무려 약 40배나 환자가 늘었다.
여성의 감염 급증이 두드러지는데, 상당수가 20대로 알려졌다. NHK는 “클라미디아와 임질 같은 다른 성병도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며 “성병 확산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매독은 원인균 ‘매독 트레포네마’에 의해 발병하는 세균성 감염증이다. 주로 성관계, 유사 성관계 등 성적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보통은 3주에서 6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첫 증상이 나타나고, 무증상인 사람도 있다. 감염 부위에 콩알만 한 덩어리가 생긴다든지 다리 관절의 림프절이 붓기도 한다.
초기 증상을 간과하면 3개월 후에는 손바닥이나 발바닥 등에 ‘돌발진’이라 불리는 장밋빛의 피부발진이 나타난다. 다만, 발진 또한 금방 사라져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진행되기도 한다. 비뇨기과 전문의 이시카와 데쓰오 원장은 “헤르페스 같은 물집이 생겼다는 이유로 내원했다가 혈액검사에서 매독으로 판명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매독은 치료법이 확립된 성병이기도 하다. 내복약과 근육주사 두 종류의 치료법이 있으며, 초기라면 1회 주사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방치할 시 장기 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최악의 경우 뇌나 심장에 중대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임산부가 매독에 감염되면 유산 위험성이 높아지고, 태반을 통한 태아 감염도 가능하다. 이시카와 원장은 “증상이 없어져도 자연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면 안 된다”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NS 데이트앱 만남이 배경인가
일본에서 매독은 전후 한때 환자가 20만 명에 달했다. 이후 항생제의 보급으로 대폭 감소, 사실상 사라진 병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배경이 무엇일까. 미카모 히로시게 아이치의대 교수는 “소셜미디어(SNS)나 데이트앱을 통해 불특정 다수와 성관계를 하면서 감염 사례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유례없는 경기 침체로 20대 젊은 남녀의 매춘이 늘면서 매독이 대유행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NHK가 1월 말, 18~59세 일본인 남녀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조사가 있다. 남성이 어떻게 불특정 상대를 만났는지 답변을 살펴보면, 중장년일수록 성매매업소와 유흥업소가 많았다. 반면, 젊은 층일수록 앱이나 SNS 등 온라인에서 만나는 비율이 높았다.
문제는 “성감염병에 걸렸다” 혹은 “감염 불안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의료기관에서 검사·진료를 받은 이가 절반에 그쳤다는 점이다. 더욱이 자신의 감염이나 불안감에 대해서 성관계 파트너에게 상담한 것은 불과 18.6%였다. 즉 80% 이상이 상대에게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성감염병 전문클리닉의 후쿠치 유조 원장은 “감염된 사람이 적절한 검사와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 감염 확대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두드러기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자 알레르기 약을 처방받아 버틴 환자도 있었다”고 한다. 증상이 악화돼서야 병원을 찾았다. 후쿠지 원장은 “그대로 성생활을 하면 결국 감염을 확산시킨다”면서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신속히 병원을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
#감염으로부터 몸을 지키려면
성병으로 진단을 받으면, 반드시 여성 혹은 남성 파트너도 함께 검사·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무증상이라도 체내에 균이나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경우 상대에게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병은 낫더라도 면역을 획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러 번 감염되기도 한다. 자신만 치료했을 시 치료를 받은 않은 파트너에게 잠복해 있던 균이 다시 들어와 감염되는 ‘핑퐁감염’이 일어나고 만다.
NHK에 따르면 “최근 성병 확산 문제가 세계적인 숙제”라고 한다. 각국에서는 대책 마련 및 강화가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영국은 정부와 비영리단체(NPO)가 연계해 성병 무료검사 키트를 희망자에게 제공한다. 프랑스에서는 2월부터 18세에서 25세 청년에게 콘돔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NHK는 “일본도 성병 노출 위험이 높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공중위생의 문제’로서 대처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도쿄도는 날로 늘어나는 매독 환자 수를 줄이기 위해 검사소를 익명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오는 3월 3일 신주쿠를 시작으로 도내 4곳에 매독 감염 여부를 익명으로 체크하는 검사소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검사 결과는 당일에 알 수 있다고 한다.
매독 감염 예방의 기본은 성관계 시 처음부터 끝까지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감염 방지를 위해 후생노동성과 각 지자체도 “콘돔을 올바르게 사용할 것”을 당부하고 나섰다. 고이케 지사는 회견에서 “개개인이 올바른 지식을 갖고 적절한 행동을 해야 감염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