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 여성·3명 자녀와 공동생활…“살고 싶으면 나랑 관계해야” 무속인 행세하며 가스라이팅
지난 2월 7일, 일본 경찰은 “도쿄 히가시야마토시에 거주하는 시부야 히로히토(74)와 그의 전처 시부야 치아키(43)를 준강제성교미수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히로히토는 단독주택에서 40~70대 여성 9명과 함께 사는, 사실상 일부다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정신적 지배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체포 당시 히로히토 용의자는 최루 스프레이를 경찰에게 분사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도 추가됐다.
전처인 치아키는 히로히토를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의하면, 치아키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일하던 식당의 10대 여성 직원 A 씨에게 “용한 무속인이 있다”며 히로히토의 자택으로 유인했다. 히로히토는 A 씨에게 UFO(미확인 비행물체)가 나오는 영상을 보여준 후 “외계인에게 끌려가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나와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수차례 위협했다. A 씨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놓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피해를 면하게 됐다.
히로히토는 과거에도 비슷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17년 전인 2006년, 그는 11명의 여성, 1명의 자녀와 공동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부족했는지, 20대 여성을 자택으로 데려와 “아내 중 한 명이 될 것”을 권유했다. 거절당하자 히로히토는 “여기서 나가면 죽임을 당한다”고 위협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수사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과거 수법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동거녀들에게 직장동료나 친구들에게 말을 걸게 하고, 주로 20대 여성을 집으로 데려와 공포심을 부추기고 세뇌하는 악랄한 수법이다.
일본 매체 ‘뉴스포스트세븐’은 2006년 히로히토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당시 히로히토의 아내였던 치아키가 “집에 놀러 가자”며 전문학교 동급생(25)을 꾀어냈다. 집에 도착하자 치파오 의상을 입은 3명의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을 봐준다는 말과 함께 캄캄한 방으로 안내됐는데, 그곳에는 검은 두건을 쓴 히로히토가 앉아 있었다고 한다. 히로히토는 “너한테 무서운 영혼이 따라다니니 공동생활을 해서 영혼을 달래야 한다”며 위협했다.
이 무렵 히로히토는 일부다처제 집단(하렘)을 확장하려고 했던 것인지 만행이 멈추지 않았다. 간호학교에 다니던 여성은 “지인의 권유로 히로히토의 집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점을 봐주던 히로히토가 ‘소중한 남자친구가 곧 객사한다. 남자친구를 지키기 위해선 나와 잠자리를 해야 한다’며 성행위를 강요했다”는 증언이다.
또 다른 여성은 취업정보지에서 ‘역술인 보조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갔다가 “외계인에게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면 여기에서 살아라. 내 정자는 지옥에서 널 구할 힘이 있다”는 협박을 받았다. 황당한 말이었지만 줄곧 세뇌당한 여성은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딸을 구하러 부모가 달려왔고, 이때도 히로히토는 최루 스프레이를 뿌린 것으로 전해진다. 뉴스포스트세븐은 “구출된 뒤 피해 여성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아 치료까지 받았다”면서 “이번 체포로 히로히토의 여죄가 더 밝혀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 조사에서 히로히토는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치아키 또한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후지TV 정보프로그램 ‘메자마시’는 “히로히토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일부다처 생활을 했다”면서 “전처가 9명이나 있는 상태로 동거 생활이라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경악했다. 특히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했는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수수께끼의 생활비’는 17년 전 주간지를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주간포스트’가 히로히토와의 독점 인터뷰를 하던 중 밝혀진 것. 당시 히로히토는 인터뷰에서 “인간은 일부다처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럽다”며 큰소리를 쳤다. 또한 “평소 여성들은 어떤 생활을 하느냐”고 묻자 “낮에는 각자 생활비를 벌어 무직인 나를 부양해줬다”며 태연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밤길은 위험하기 때문에 저녁 5시 이후의 일은 시키지 않았다. 저녁에는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 규칙”이라고 덧붙였다.
17년 전 히로히토 자택 압수수색에서 최면술 관련 서적이 다수 발견돼 소란이 일기도 했다. 그 무렵 히로히토의 공동생활을 잘 아는 여성은 “히로히토가 여성들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해 판단력을 잃게 함으로써 지배력을 강화해나갔다”고 전했다. 그에 의하면 “1인당 공용비는 월 8만 엔(약 77만 원)으로 가사는 분담제였다”고 한다.
이웃 주민들은 “히로히토가 줄곧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지냈다”고 주장했다. “전직 무속인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에게 점을 봤다는 주민을 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한 이웃 주민은 “여자들이 밖에서 일해 그를 돌봤다”면서 “히로히토는 계속 무직으로 취사, 육아, 청소를 담당하는 이른바 ‘전업주부’였다”고 밝혔다.
히로히토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주간여성’에 의하면 “사립대학을 졸업한 뒤 임상검사 회사에 취직, 첫 번째 아내 B 씨와 1974년경 결혼했다”고 한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이후 1995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히로히토는 자택을 매각하고 지금의 히가시야마토시로 이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몇 년 뒤 아내 B 씨와 이혼했고, B 씨가 자녀 둘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 이웃 주민은 “아내 B 씨는 항상 웃는 얼굴로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었다”며 “이혼할 때도 인사하러 왔다”고 운을 뗐다. “이혼 사유를 묻자 B 씨는 ‘조만간 알게 될 거예요’라며 묘하게 웃더라.” 그런데 “이혼 바로 직후 히로히토가 스스로를 ‘무속인’이라 칭하며 여성들과 집단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웃 주민은 “어쩌면 하렘 생활 구상을 부인에게 말했던 게 아닐까 싶다”고 추측했다. “도저히 그런 생활은 할 수 없어 그로부터 도망친 것 같다”는 의심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