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발매 지연’ 신곡 7곡 발표…태연 등 SM엔터 아티스트 총출동…“난 너의 편” 팬덤 ‘마이’의 떼창
#콘서트에서 부른 신곡 7곡
이날 에스파는 기존 발표된 히트곡 외에도 신곡 7곡을 선보였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써스티’와 경쾌한 일렉 사운드로 무장한 ‘돈트 블링크’를 비롯해 걸그룹 특유의 깜찍함을 강조한 ‘핫 에어 벌룬’과 ‘아임 언해피’, 관객들을 모두 일으켜 세운 ‘욜로’ 등을 불렀다.
가수들이 콘서트장에 온 팬들을 위해 미공개 신곡 한두 곡을 발표하는 경우는 하지만 이처럼 신곡을 대거 방출하는 사례는 드물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당초 에스파는 2월 20일쯤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는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앞서 이성수 SM엔터 대표는 “공들여 만든 세계관이 돋보이는 그룹 에스파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무심기'를 투영한 가사를 넣은 노래를 부를 것을 (이수만 전 총괄이) 지시해 에스파 멤버들이 속상해 하고, 울컥해 하기도 했다”면서 “이러한 무리한 지시에 모든 부서 직원들은 기존의 세계관, 팀의 색깔, 이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사 내용, 이 모든 것들을 연결해야 하는 미션을 받게 되었고, 이러한 엉뚱한 디렉션으로 인하여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콘텐츠가 나오게 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에스파는 SM엔터 경영권 분쟁의 여파로 앨범 발매 없이 공연장에서 신곡을 부를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공연 말미 멤버 윈터는 “(새 앨범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곧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컴백을 예고했고, 또 다른 멤버 지젤은 “‘곧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 곧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약속했다.
#총출동한 SM엔터 소속 가수
이틀에 걸친 에스파의 공연장에는 SM엔터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했다. 동방신기 최강창민, 슈퍼주니어 은혁·이특, 소녀시대 태연 등 맏형 격 멤버들을 비롯해 샤이니 민호·키, 레드벨벳 슬기·웬디, NCT 지성·해찬·런쥔·사오준·텐·쿤 등이 현장을 찾았다. SM엔터 ‘막내’인 에스파의 첫 콘서트를 응원하기 위한 선배들의 발걸음이라 볼 수도 있다. 사실 ‘SM 패밀리 콘서트’를 제외하고 이처럼 소속 가수들이 한꺼번에 특정 공연장에 모이는 것은 드물다.
물론 이들이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다. 객석에 앉아 에스파를 응원했고, 에스파는 자리를 지킨 선배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SM엔터 아티스트들의 끈끈한 애정을 과시했다.
매우 의미 있게 읽히는 장면이다. K팝 시장의 맏형 격인 SM엔터는 현재 후발주자인 하이브의 피인수 대상이 됐다. 하이브는 SM엔터의 고유성을 인정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지만, 하이브가 SM엔터를 인수하게 되면 결국 ‘자회사’ 혹은 ‘레이블’이 된다. K팝 시장 리딩 그룹으로서 SM엔터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2월 17일 팀장급 이하 평직원 208명이 모인 SM엔터 평직원 협의체는 “이수만 전 총괄이 자신의 불법·탈세 행위가 드러날 위기에 놓이자 본인이 폄하하던 경쟁사에게 보유 주식을 매각하고 도망치는 일이 발생했다”면서 “팬, 주주, 투자자에게 우리가 처한 제대로 된 상황을 알려야 SM엔터 고유의 문화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성명문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아티스트들이 이 같은 공식 성명서를 내진 않았다. 하지만 에스파 콘서트장에서 보여준 단체 행동은 결국 ‘무언의 시위’로 해석될 수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SM엔터 소속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행동이라 볼 수 있다”면서 “이런 모습은 그들을 지지하는 팬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응원 약속한 팬덤
SM엔터 사태에 대해 소속 가수들의 팬덤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대중적 주목을 받는 사안이 발생할 때 성명서를 발표하며 입장을 표명하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왜일까. 결국 지지하는 아티스트들이 아직 공개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좋아하는 가수들의 입장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엇박자를 내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날 공연 말미 에스파의 팬덤은 ‘에스파의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속내를 우회적으로 밝혔다. 2시간이 넘는 공연이 마무리될 때쯤 공연장에 모인 팬들은 에스파의 노래 ‘포에버(약속)’를 떼창했다. 팬들의 이런 준비를 모르고 있던 에스파는 팬들의 노래에 귀기울이며 “포에버 맞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 노래는 “난 너의 편이 되고 싶어, 힘들고 외로울 때 내 어깨를 내어줄게. 네 옆에 난 걸어갈게”라는 가사가 담겼다.
이에 멤버 닝닝은 “어제도 오늘도 너무 행복했다. 항상 함께했으면 좋겠다. 오늘 마이(팬덤) 분들도 고맙고, 선배님들도 고맙다. 스태프들도 고맙다”고 말했고, 카리나는 “덕분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컴백을 해서 더 특별하고 재미있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 기대 많이 해달라. 성장하는 아티스트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