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 과정 놓고 불협화음도…일부 인사 “결정 내려놓고 통보만 하는 형태였다”
#선수 업적은 역대 최고, 감독 생활은 명암
클린스만은 대한민국 축구사를 통틀어 이름값으로는 역대 최고 감독이다. 1990년대 당대 세계 축구의 최고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국가대표 소속으로 2개의 우승컵(월드컵, 유로)을 들었다. 월드컵 본선 기록만 17경기 11골이다. 대한민국을 상대로도 월드컵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바 있다. 소속팀에서도 분데스리가 우승과 득점왕, UEFA컵 우승을 경험했다. 인터밀란(이탈리아),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 등 유럽축구 빅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남겼다. 축구선수 개인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2위(1995년)에 오르기도 했다. '월드클래스'로 불리는 차범근 전 감독(1997~1998 대표팀 감독 역임)과 견줘도 부족함이 없다.
선수 은퇴 이후로는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부진했던 독일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4강에 올려놨다. 좋은 성적과 함께 세대교체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냈다. 북중미 대회인 골드컵 우승,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지도자 생활에는 그림자도 있다. 독일과 미국 대표팀 경력 사이에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재임 기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다. 클린스만 체제의 뮌헨은 리그 우승에 실패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굴욕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미국 대표팀에서도 2014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 무대를 밟았으나 이후 행보가 좋지 못했다. 일부 선수들이나 미국축구협회와 마찰을 빚는 일이 있었다. 성적도 저조해 2018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을 치르던 도중 경질됐다. 결국 미국은 2018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후 헤르타 베를린에 몸담았던 시절은 클린스만 감독 축구인생에 가장 어두운 부분으로 남았다. 구단의 이사진으로 일하다 흔들리는 팀에 임시 감독직을 맡았다. 임시 감독 임무수행 이후에는 다시 이사진에 복귀할 계획이었으나 10경기만 벤치에서 소화한 이후 돌연 사퇴를 발표했다. 독일 내에서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는 그의 축구계 평판을 망치는 계기가 됐다. 베를린 지역 언론은 한국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야 한다”고 조롱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베를린에서 사퇴 발표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 라이브 방송으로 한 탓이다.
#감독 클린스만 향한 기대와 우려
대한민국 대표팀은 차기 월드컵 본선 진출이 유력하다. 2026 북중미 월드컵부터 대회 본선 규모가 늘어 아시아의 본선 티켓이 8.5장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예선 통과가 선결 과제였던 과거보다 본선에서 퍼포먼스에 대표팀 운영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클린스만 감독이 다른 후보에 비해 월드컵 본선에서 16강 이상의 무대를 치르는 데 신뢰를 보였다는 발언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남부럽지 않은 월드컵 본선 경험을 자랑한다. 선수로서 3개 대회에 뛰었고 우승도 했다. 감독으로도 독일과 미국을 이끌고 각각 3위와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각기 다른 두 팀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는 점은 특별한 경험이다.
또 클린스만 감독은 트레이닝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선수 은퇴 이후 스포츠 과학 선진국인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은 이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직을 수행하며 4명의 트레이닝 코치를 대동했던 적이 있을 정도다. 대한민국 대표팀에도 선진화된 트레이닝 방식을 도입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차기 월드컵이 북중미에서 열린다는 점은 클린스만 감독을 새롭게 선임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클린스만은 선수 은퇴 이후 장기간 미국에서 거주해왔고 미국 대표팀 감독까지 역임했다. 2026년 열리는 월드컵이 캐나다·멕시코·미국 3국 공동개최지만 절대적 다수 경기가 미국에서 열린다. 대회를 치르는 데 클린스만 감독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낙관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클린스만 감독은 전술적인 능력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국가대표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그의 지도를 받았던 필립 람이 "클린스만은 체력 단련만 시켰을 뿐 전술적 지시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을 정도다. 성공을 거뒀던 독일 대표팀 시절에도 전술적인 부분은 당시 코치이자 후임 감독 요아힘 뢰브가 대부분 담당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축구 지도자로서 긴 공백 기간도 우려되는 점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미국 대표팀을 떠난 시점은 2016년이다. 이후 헤르타 베를린 지휘봉을 잡았다고는 하나 시즌 도중 부임한 임시 감독이었고 단 10경기만 벤치에 앉았을 뿐이다. 베를린 시절을 제외하면 약 6년간 현장을 떠나 있었다는 점은 예민한 감각이 필요한 지도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이외에도 구단 측과 상의 없이 베를린 감독직을 내려놓았던 것은 달갑지 않은 전력이다.
#선임 과정에서 아쉬움
클린스만 감독을 둘러싼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지 않다. 선임 발표 이튿날 열린 마이클 뮐러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의 기자회견이 열렸으나 이후로도 불안한 시선은 지속되고 있다.
뮐러 위원장은 "최초 61명의 후보군을 23명, 5명으로 줄여나갔고 첫 협상대상인 클린스만 감독과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전했다. 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의욕적이었다' 등의 답으로 의아함을 남겼다.
지도자로서 능력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 "그만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경험이 있다. 스타플레이어를 잘 살리고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약점으로 지적받는 전술 부분에 대해서는 "축구에는 전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팀워크를 잘 살리는 등 클린스만 감독만의 능력이 있다"고 옹호했다.
향후 클린스만 감독이 보여줄 축구의 방향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얻기는 어려웠다. 뮐러 위원장은 "특정 스타일을 카피하는 것보다 '강남 스타일'처럼 한국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 1일 K리그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정 회장은 A대표팀 새 사령탑과 관련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다"라고 설명했다.
선임 과정을 놓고도 불협화음이 이어진다. 전력강화위원회가 구성됐으나 위원회 인사들과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뮐러 위원장은 "위원회와 의견을 나눴고 동의를 받았다"고 설명했으나 일부 인사는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결정은 내려놓고 통보만 하는 형태였다"며 분개하는 위원회 인사도 존재했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벤투 감독 선임 당시 시스템을 만들어 놨고 그 시스템으로 좋은 결과까지 얻어냈다"며 "그런데 4년 전과 비교해 다소 후퇴하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감독은 결정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남은 코칭스태프를 얼마나 잘 구성하느냐와 우리가 응원을 보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이 정해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잘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할 대표팀 코치들은 협상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인 코치에 대해서도 전력강화위원회가 회의를 진행했다. 새 체제의 대표팀이 첫 선을 보일 경기는 오는 24일 콜롬비아전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프로필 1964년 7월 30일 독일 출생 -선수 커리어 FIFA 월드컵 우승(1990) UEFA 유로 준우승(1992) UEFA 유로 우승(1996) 분데스리가 우승(1996-1997 바이에른 뮌헨) UEFA컵 우승(1990-1991 인터밀란, 1995-1996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득점왕(19골, 1987-1988 슈투트가르트) -감독 커리어 독일 국가대표팀 - 월드컵 3위 바이에른 뮌헨 미국 국가대표팀 - 골드컵 우승, 월드컵 16강 헤르타 베를린 |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