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여론 염려한 일부 의원에 친문계 가세한 듯…‘가결 같은 부결’ 민주당 내홍 격화
‘139 대 138.’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의원들은 139명으로 반대한 의원들보다 한 명 더 많았다. 기권은 9표, 무효는 11표였다. 출석 의원 297명의 과반을 채우지 못해 부결되긴 했지만 민주당 의석수(169석)을 감안하면 예상하기 어려웠던 결과였다.
민주당 이탈표는 어느 정도일까. 우선 친명계에선 ‘17표’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국민의힘 114표, 정의당 6표, 시대전환(조정훈) 1표, 무소속 7명 중 1표를 합하면 122표가 된다. 민주당 의원 17명이 찬성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무소속 1명은 양향자 의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무효 및 기권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표(138표)가 모두 민주당 의원이라고 단순 계산하면 최소 31명이 이탈한 셈이다. 하지만 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 6명, 또 국민의힘 이탈표 등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정가에선 40표 안팎이라는 게 중론이다.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던 민주당 지도부, 친명 진영은 투표함 뚜껑이 열린 후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부결 투표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던 비명계에서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대표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는 여론이 높았던 만큼, 계파를 떠나 부결에 몰표가 쏟아질 것으로 점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정치 평론가들, 정치부 기자들 대부분이 결과를 보고 허를 찔렀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방송에서 “부결이 최소 170표 이상”이라고 자신했던 전직 의원은 “비명계, 특히 친문계의 여론이 이렇게까지 안 좋은지 몰랐다. 이 대표로선 부결을 천만다행으로 알아야 할 것 같다”면서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로 민주당 계파 대립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결이 끝난 후 비명계 의원들은 입을 닫았다. 이재명 대표 지지자인 ‘개딸(개혁의 딸)’을 중심으로 이탈표 색출 주장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SNS(소셜미디어) 등에선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이른바 ‘수박’ 의원 명단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개딸 게시판에선 2024년 총선 공천 살생부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친명계에선 비명계가 조직적으로 표결에 임했을 것이란 의구심이 번지고 있다. 가결에 따른 후폭풍은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니 일정 수 이상의 비명 의원들이 기권과 무효표, 반대표 등으로 전략적 투표를 한 것 아니냐는 판단이다. 친명계 한 초선 의원은 “친문이 실력행사로 ‘턱걸이 가결’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명백한 배신행위”라고 전했다.
비명계에선 이러한 시선에 손사래를 친다. 개인 소신에 따른 것으로 사전에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일요신문이 취재를 위해 만난 대부분의 비명 의원들 역시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이들은 지역구 민심을 반영해 양심에 따라 투표를 했을 뿐, 그 어떠한 정치적 계산이 없다고도 했다.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제일 우려스러웠던 것은 압도적 부결 후의 일이다. 국민의힘 텃밭인 영남권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 충청권에선 방탄 국회 프레임이 제법 먹혀들어가고 있다. 지역구 민심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몇몇 의원들이 기권과 무효, 심지어 가결에 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 체제로는 총선이 힘들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대표 측은 이런 저런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탈표 색출을 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반성해야 할 때다.”
하지만 취재 결과, 체포동의안 표결 전 비명 진영에선 조직적인 움직임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표결 전날인 2월 26일 친문계 한 중진 의원은 10여 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비공개 오찬 모임에서 “160표 이상의 부결은 곤란한 것 아니냐. 민주당에도 다른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가결이 부담스럽다면 기권이나 무효를 던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모임이 새어나갈까 걱정이 된다. ‘개딸’들의 화력을 익히 알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표결 전날 분위기가 묘하게 바뀐 것은 맞다. 당시 모임에 있었던 의원들이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 중진 의원 발언을 전했다. 분명히 표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 혼자만 이탈한 게 아닐 것이란 안도감이 들었다는 의원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앞서의 내용들을 요약하면, 지역구 여론을 염려한 일부 의원들에 친문계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이탈표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향후 친명계와 친문계 간 대립이 격화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번 이탈표 정국은 내년 총선 공천과 맞물릴 가능성이 높아 더욱 거센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친명계는 일단 숨고르기에 나섰다. 2월 28일엔 이 대표가 직접 “이번 일이 당의 혼란과 갈등의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강성 지지자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이탈표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총선 때 솎아내기가 불가피하다는 강경론이 우세하다. 또 다른 친명 의원은 사석에서 “그런 사람들이랑 어떻게 같이 한 배를 타고 정치를 하느냐”면서 “혹시 체포동의안이 또 오면 이번엔 당론으로 부결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친문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겉으론 몸을 사리고 있지만 수위 높은 발언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이 대표 사퇴 요구도 거세다. 한 친문 재선 의원은 “개딸들의 색출 작업이 오히려 더 우리들의 전투력을 높이고 있다. 다음 체포동의안은 가결되지 말란 법도 없다”면서 “이대로라면 어차피 친문 대부분이 공천을 받지 못한다. 이 대표 사퇴를 전제로 한 당의 앞날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