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풍’ 위력 놓고 회의론 고개, ‘안풍’ 정면충돌보단 우회전략, ‘석풍’ 컷오프 돌풍 반작용 우려도
당초 전당대회는 강력한 ‘윤심’을 등에 업은 김기현 후보의 대세론이 유효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 추격이 만만찮은 기세로 다가오면서 ‘윤풍’의 맞바람격인 ‘안풍’이 형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컷오프 결과치를 보면 이준석 전 대표가 만들어낸 ‘석풍’까지 불 조짐을 보인다. 윤풍과 안풍의 충돌 속에 석풍까지 새롭게 나타나면서 국민의힘 전대는 풍속 풍향을 예측하기 힘든 국면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윤풍, 풍속 유지 실패하며 주춤?
유흥수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이 2월 10일 당사에서 발표한 컷오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당대표 후보로는 김기현 안철수 천하람 황교안 후보(후보명 가나다순)가 본경선에 올랐다. 현역 국회의원인 조경태 윤상현 후보는 탈락했다.
4명을 뽑는 최고위원 본경선에서는 김병민 김용태 김재원 민영삼 정미경 조수진 태영호 허은아 후보가 승부를 다투게 됐다. 현역 의원인 박성중 이만희 이용 후보와 원외 문병호 천강정 후보는 본경선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명이 당선되는 청년최고위원 본경선에는 김가람 김정식 이기인 장예찬 후보가 진출했다. 이들은 모두 원외다.
본경선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선관위가 득표 순위를 발표하지 않아 후보별 득표율은 깜깜이 상태다. 결과 발표 후 여러 건의 추정 득표율이 나돌기도 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되진 않고 있다. 김기현 후보 대세론이 어느 정도 강하게 형성돼 있는지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진 셈이다. 2월 9일 한 인터넷 매체가 익명의 당 관계자를 인용해 ‘김기현 후보가 과반에 못 미치는 득표율로 1위로 통과했다’고 보도한 데 대해 선관위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김기현 후보가 예상대로 컷오프를 통과해 대세론 위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지만, 컷오프 결과를 보면 “윤풍이 과연 압도적으로 세게 불고 있느냐”는 의구심도 흘러나온다. 당대표 경선에서 현역 다선인 윤상현 조경태 의원을 누르고 이준석 전 대표가 미는 천하람 후보가 통과한 게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는 오랜 갈등을 빚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중도하차한 것도 친윤계의 공세 때문이란 게 여권 내부의 중론이다. ‘친이준석계’로 꼽히는 천하람 후보는 ‘윤심’의 반대편으로 각인돼왔다. 그런데도 많은 당원들이 천 후보를 선택했다. 천 후보는 가장 늦게 당대표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본인 스스로 컷오프 통과를 자신할 만큼 거센 표몰이를 했다.
최고위원 컷오프 결과에서도 윤풍 위력을 둘러싸고 다소 비관적인 기류가 감지됐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 수행단장이었던 이만희 의원, 수행실장이었던 이용 의원, 서울시당 위원장을 지낸 박성중 의원이 모두 탈락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과의 인연을 내세웠지만 큰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이들 3명은 당내 친윤계가 주도하는 의원 모임 ‘국민공감’ 회원이기도 하다.
친윤 진영에선 컷오프에서 탈락한 이들 대부분이 윤풍과는 관계가 없고 인지도가 낮아서 나온 당연한 결과물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윤풍’만으로는 경선 경쟁의 높은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나경원 전 의원 불출마 사태 등 실력행사를 해왔던 윤풍이 풍속 유지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의 분석도 뒤를 잇는다.
윤풍은 현역 국회의원들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세력을 키워왔다. 이번 전당대회 컷오프는 100% 당원투표로 이뤄졌다. 통상 현역 의원 세가 강한 쪽이 당원투표에선 유리하다. 그런데 컷오프 결과만 놓고 보면 현역 의원들이 조직표 장악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이번 전당대회 선거인단은 모두 83만 9569명으로 최근 당원이 크게 불어났다. 이준석 전 대표를 선출한 지난 2021년 6·11 전당대회(32만 8893명) 때와 비교하면 2.5배 늘었다. 당원 숫자가 늘어나면서 현역 의원들이 접촉하기 어려운 당원들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당원들의 표심이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힘들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원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내 지역구 당원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전당대회는 관심이 크게 높아져 투표율도 높을 것이다. 1호 당원인 대통령 중심으로 당대표와 원팀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일단 강하게 형성돼있다. 그러나 모바일 투표를 하는 점까지 고려하면 조용한 다수가 존재할 수 있고 대세론·조직표 이런 것들이 먹히기 어려울 수 있다. 당원들이 여론 향배를 보면서 전략적 투표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 현역의원은 대세론이 있긴 하지만 컷오프 결과만 봐도 일관되게 대세론을 쫓는 방향이 아니라 계속해서 출렁이는 형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안풍, 윤풍 뚫을 수 있을까
당대표 경선 본선에 올라간 안철수 후보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일단 비윤 후보로 지목됐다. 안 후보는 윤풍과 싸우면서 독자적인 안풍을 일으켜야 하는 위치가 됐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역임 등을 내세우며 자신의 높은 인지도에다 윤풍에까지 실려가 보려 했지만 이에 실패했다.
안 후보가 만들어 내야 하는 안풍 앞에는 윤풍이라는 초대형 폭풍이 있다. 안 후보로서는 걸림돌이다. 당내 다수를 점하는 친윤 성향 의원들은 ‘차기 대권주자가 당대표에 올라 대통령 임기 초반 미래 권력이 될 경우,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국정 운영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안 후보를 공격하고 있다. 당·정·대가 엇박자를 내는 혼란이 계속되면 내년 총선은 필패라는 점도 내세운다.
친윤계 공세 속에 낙마했던 나경원 전 의원이 안 후보 우군으로 오지 못하고 사실상 김기현 후보 쪽으로 돌아섰다는 점도 악재다. 세력 확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대 경쟁자인 김기현 후보가 오세훈 서울시장·홍준표 대구시장 등 여권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측근들을 영입했다는 발표를 2월 8일 하면서 당내 세력의 김기현 쏠림도 가속화하는 형세다.
그러나 안 후보가 쉽게 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뒤지기도 했지만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를 눌렀다는 결과가 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 후보의 높은 인지도가 일단 그의 경쟁력을 계속해서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안 후보가 우세할 것으로 평가받는 수도권의 당원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도 가뭄 속 단비다. 국민의힘 당원의 지역별 비중을 지난 2021년 전당대회 때와 비교해보면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은 32.3%에서 37.79%로 늘었다. 영남권(TK·PK)은 51.3%에서 39.67%로 오히려 줄었다. 안 후보 고향인 부산·울산·경남(PK)의 당원 비중은 18.64%, 그리고 전통적 보수 당원 밀집지역인 대구·경북(TK)은 21.03%였다.
안 후보 역시 ‘수도권 후보론’을 전면에 부각하고 나섰다. 안 후보는 2월 8일 경기 평택시 평택을 당협 사무실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서 “총선은 수도권 민심을 가장 잘 아는 사령관이 지휘해야 승리할 수 있는데 저는 3번의 수도권 선거에서 승리한 만큼 수도권 유권자를 누구보다 잘 아는 당대표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윤풍에 정면으로 맞서는 충돌이 아닌 우회 전략도 세웠다. 윤석열 정부 개국공신임을 내세워 자신은 절대 비윤·반윤이 아니라는 논리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론하고 있다. 결선투표까지 가 인지도 싸움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한 포석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친윤 성향이지만 김기현 후보를 찍기 망설이는 당원들이 적지 않다. 과연 당대표로서 총선을 이끌 수 있느냐는 의문 때문”이라면서 “안 후보가 이 틈을 비집고 가기 위해선 윤석열 대통령과 등을 돌려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석풍, 돌풍이냐 미풍이냐
이번 전당대회 기간 “친윤 세력의 힘자랑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고개를 들면서 최대 수혜자로 이준석 전 대표가 떠올랐다. 컷오프에서 ‘친이준석계’로 불리는 천하람 후보가 당대표 선거 본선에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허은아 김용태 최고위원 후보, 이기인 청년 최고위원 후보까지 살아남으면서 ‘석풍’은 허울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준석계의 출발이 다른 경선 후보들에 비해 늦었음에도 불구, 이준석계는 컷오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너무 제 마음대로 한다”는 친윤 세력에 대한 비판이 이준석계를 링 위로 끌어올렸다고 당내에서는 한목소리를 낸다. 이준석계 자력 등판이 아니라 친윤계의 절제 기술 부족이 불러온 예상 밖 결과물이었다는 것이다.
컷오프 결과가 본선까지 이어졌던 직전 전당대회 사례를 본다면 당대표 선거에서 이준석계 천하람 후보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준석 전 대표 취임을 기점으로 꾸준히 증가한 20·30·40대 당원 비중은 32.4%에 달한다. 전당대회에서 ‘젊은표’의 위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0·30·40대 당원 비중은 50대 이상(67.6%)의 절반 수준이지만, 2021년 전당대회 때와 비교하면 20%대에서 30%대로 올라섰다.
양강으로 꼽히는 김기현 안철수 후보가 결선에서 맞붙을 경우, 천하람 후보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두 후보 중 특정 후보에게로 천 후보 표가 향한다면 승부의 결정타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준석계 표가 윤풍에 힘입은 김기현 후보로 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어 윤풍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론도 있긴 하다. 컷오프 결과에서 ‘윤풍 흔들기’가 목격된 만큼 영남, 그리고 50대 이상 고령층이 총결집해 윤풍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논리다. 앞서의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당원들 사이에서 이준석 비토 기류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이 전 대표가 내부 총질로 당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준석 바람은 미풍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