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오세훈 존재감 과시, 원희룡·한동훈 실적 승부…대통령 임기 1년도 안돼 곳곳서 차기 경쟁 장면
#홍준표 오세훈 존재감 풀풀
‘시정은 돌보지 않고 왜 다른 데 관심을 쏟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홍준표 대구시장의 훈수정치는 정치적 영향력을 꾸준히 발휘하면서 일정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본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기도 한 홍준표 시장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경쟁했던 윤석열 대통령에게 우호적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친윤 어른’로서의 역할을 확립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치 세력 등장에는 견제구를 쏘아대며 세력 전이를 경계하고 있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서 예상 밖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천하람 후보에 대한 견제가 대표적이다. 홍 시장은 지난 3월 1일 천하람 후보를 겨냥해 “어쩌다 이준석 바람으로 뜬 무명의 정치인이 일시적 흥분과 자아도취에 취해 책임지지도 못할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나경원 유승민 전 의원이 결국 등판하지 못하는 과정에서도 홍 시장은 이들에 대한 공격수 역할을 했다. 홍 시장은 지난 1월 16일 대구시청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을 얕보고 정치 모른다고 깔보는 사람이 당대표가 되면 이 당은 풍비박산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 프로들 눈에는 다 보이는데 대통령이 (그것을 모르는) 바보냐”라고도 했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국민의힘 당권을 둘러싸고 친윤(친윤석열)계와 대립하고 있던 나 전 의원과 유 전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홍 시장은 윤 대통령에 대해서도 강한 변호 본능을 발휘하고 있다. 언론이 비판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대신 나서 보호막까지 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중단하자 2022년 11월 21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때늦은 감은 있지만 참 잘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국민과 가까워지려는 대통령의 뜻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마음 졸이며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대통령의 말씀은 태산같이 무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서 MBC 출입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것에 대해 야당 등에서 반발하자 홍 시장은 2022년 11월 10일 SNS에 “취재의 자유가 있다면 취재 거부의 자유도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취재당하는 입장에서는 악성 왜곡 보도를 일삼는 언론에 대해서는 유일한 대항수단으로 취재 거부의 자유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며 대통령실을 옹호했다.
홍 시장이 공개적 행보를 하고 있다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반적으로 스텔스 전법을 쓰면서도 기회가 생기면 적시타를 날리는 모양새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가 뜨거운 화두가 되자 오 시장은 2월 9일 자신의 SNS에 “서울이 어렵다면 지방이라도 먼저 지원해 달라”며 통 큰 이미지를 보였다.
또한 “지하철 무임수송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주장을 듣자니 거대한 벽을 마주 보는 듯하다”며 “국가에서 정책 결정을 했고 법률과 시행령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그 부담은 지방자치단체 혼자 짊어지라는 비정상,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온화한 모습이 그의 평소 색깔이지만 무임승차 의제에서는 강한 발언을 내놨다.
행정가 이미지를 강조하는 오 시장은 때론 정치인으로서의 역할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시기인 지난 1월 중순, 오 시장은 후보군과 잇따라 접촉해 눈길을 모았다. 1월 15일 김기현 후보와의 동동주 회동에 이어, 다음날에는 나경원 전 의원과 만났다. 또한 1월 17일에는 안철수 후보와도 얼굴을 마주했다.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지만 윤 대통령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모습도 보인다. 오 시장은 대통령 관저가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시장 공관을 마련해 3월 말 입주한다. 새 공관은 윤 대통령 부부가 거주하는 한남동 관저와 직선거리로 약 300m 거리다.
오 시장은 2021년 4월 보궐선거로 서울시정에 복귀한 이후 불필요한 세금 낭비를 막겠다며 별도의 시장 공관을 구하지 않고 광진구 자택에서 서울시청으로 통근했다. 새 공관 마련은 시장의 재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게 서울시 설명이지만, 대통령 관저와 가까워져 오 시장의 주목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진·신진 장관의 활약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입각할 경우, 일에 파묻혀 정치적으로는 큰 손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면서 자신에 대한 이미지 제고는 물론, 윤 대통령의 지지율까지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건설현장 불법 행위에 대한 대수술 지휘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국토부는 타워크레인 월례비에 이어 건설현장에서 실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임금을 챙기는 ‘가짜 팀장’ 퇴출을 선언했다. 원 장관 주도하에 국토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윤 대통령도 지난 2월 21일 ‘건폭(건설폭력)’이라는 단어까지 새로이 만들어내면서 ‘완전 근절’을 지시했다. 이날 회의 모두발언은 TV로 생중계되기까지 했다.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은 노동개혁 시도 덕분이라는 말이 많은데, 이 부분에서 원 장관이 많은 득점을 하고 있다.
원 장관이 노조만 때리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강자로 불리는 대기업도 원 장관 타깃이다. 원 장관은 2월 16일 자신의 SNS를 통해 4월 시행을 앞둔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을 두고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고객은 뒷전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고객들이 애써 쌓은 마일리지의 가치를 대폭 삭감하겠다는 것이라고 질타한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경우, 본인의 능력도 있지만 행운의 안타까지 연이어 터진 격이라는 정치권 진단이다. 법무부 장관은 언론의 주목을 받을 일이 그리 많지 않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법무부 장관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2월 27일 국회에 나가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 및 성남 FC 후원금 의혹’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대장동 개발 특혜와 관련된 이 대표의 범죄 혐의를 ‘휴대전화 판매’에 비유했다. 한 장관은 “영업사원이 100만 원짜리 휴대폰을 주인 몰래 아는 사람에게 미리 짜고 10만 원에 판 것”이라며 “여기서 주인은 90만 원의 피해를 본 것이지 ‘10만 원이라도 벌어준 것 아니냐’는 변명이 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장동 이익 9606억 원 중 성남시가 가져간 돈은 1830억 원에 불과해 성남시가 일은 다 해놓고 이익은 이재명 당시 시장 측과 유착된 김만배 일당이 독식하게 한 것이 이 범죄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또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라고 주장해 온 이 대표의 말을 따와 “단군 이래 최대 손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한 장관이 확실한 차기 잠룡으로 올라섰다는 관전평을 내놓고 있다.
#외곽의 쓴소리포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불출마를 선언한 뒤 잠잠하던 유승민 전 의원은 최근 특유의 쓴소리포를 연일 가동하고 있다. 공식 직함이 없어 공개된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꾸준한 개인 메시지 발신을 통해 언론의 주목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내년 총선 등 향후 정치판에서의 역할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통계가 나온 직후인 2월 22일 유 전 의원은 자신의 SNS에 논평을 재개했다. 그는 “인구소멸 문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 중 가장 치명적인 위험”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정부는 이 당연하고 필연적인 시대 과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유 전 의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나경원 전 의원)은 정치적으로 해임됐다. 윤 대통령이 인구위기 극복에 진심이라면 이런 식의 해임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촌극”이라고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
그는 ‘아들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사태에 대해서도 2월 28일 글을 올려 윤석열 정권 차원의 사과와 책임 추궁을 주장했다. 유 전 의원은 “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국가수사본부장은 국민 인권과 법치의 수호자인데, 아들의 학폭과 강제전학 문제를 소송으로 끌고 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던 검사를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 임명했다”며 또다시 윤 대통령을 겨냥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노장, 신진들이 여럿 뛰는 모습은 내년 총선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 뛰는 사람들이 모두 차기라고 보기에는 대선이 너무 많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