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돈 받은 후 각종 사업 확약해줬을 가능성…검찰, 쌍방울-경기도 협력관계 규명에 집중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가 공동주최한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국제대회)’는 2018년 11월과 2019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열렸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제1회 국제대회에서 쌍방울은 막후 후원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국제대회에서 쌍방울 위상엔 변화가 생겼다. 쌍방울 핵심 관계자가 전면에 나서며 존재감을 부각했다.
2018년 11월 14일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 부위원장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제1회 국제대회 참석을 위해서였다. 리종혁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 7명이 방한했다. 리종이 입국장으로 나서는 길에서 밀착수행을 담당한 것은 국제대회 공동주최 측인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안부수 회장이었다.
리종혁은 2019년 7월 24일 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제2회 국제대회에 참석하는 북한 대표단을 다시 이끌었다. 이날 리종혁이 입국장을 통과할 때 양옆에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핵심 관계자 두 명이 서 있었다. 1회 국제대회에서 리종혁 옆에 서 있었던 안 회장은 제2회 국제대회 북측 대표단 입국 당시에도 그 자리를 지켰다. 안 회장 반대편엔 양선길 전 쌍방울 회장이 리종혁 곁을 지켰다.
2019년 5월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막후에서 리종혁과 직접 대면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제2회 국제대회 당시 북한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김 전 회장이 리종혁 볼에 입을 맞췄다. 김 전 회장은 “우리 소원은 통일”이라는 건배사를 하며 리종혁 손을 잡고 “조국통일 만세”를 외쳤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북한에 스마트팜 사업비용 취지 500만 달러, 이재명 대표 방북비 취지 300만 달러를 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500만 달러는 2019년 1월과 4월경 북한 관계자에 전달했고, 300만 달러는 2019년 11월경 송금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스마트팜 사업비용 취지 비용 500만 달러를 송금한 시점에 관심이 쏠린다. 제1회 국제대회와 제2회 국제대회 사이에 두 차례 송금이 이뤄진 까닭이다. 대북 소식통은 “실제로 돈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한 뒤엔 북한 측 관계자들이 쌍방울을 신뢰할 만하다고 느꼈을 것”이라면서 “동시에 쌍방울은 북한으로부터 ‘자금 공작’ 집중 공략 대상으로 떠올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소식통은 “돈을 줄 수 있는 사람인 것이 확인되면 북한은 모든 것을 해줄 것처럼 각종 사업을 확약해준다”면서 “이런 약속이 추가 수금을 보장해주는 절차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송금이 이뤄진 시점부터 쌍방울 측 관계자들 역시 북측 인사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이제 됐다’ 싶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1회 국제대회에서 쌍방울은 주로 막후 후원자 역할에 집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 전언에 따르면 2023년 2월 말 안부수 아태협 회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2018년 10월 김 전 회장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로부터 소개받았다”면서 “이 전 부지사가 국제대회 지원금 5억 원 중 일부를 쌍방울이 해결해줄 것이란 취지로 얘기했다”는 취지 진술을 했다.
제1회 국제대회가 열리기 한 달 전 이 전 부지사 소개로 김 전 회장을 소개받은 셈이다. 제1회 국제대회에선 쌍방울 관계자 존재감이 표면적으로 부각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선길 전 회장과 방용철 전 부회장 등 쌍방울 핵심 관계자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이 앉아있던 메인테이블 인근에 자리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단순 참가자이자 막후 후원자 역할이었던 쌍방울 위상은 향후 1년간 급변했다.
제2회 국제대회에서 쌍방울은 단순한 참가자를 넘어서 사실상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제2회 국제대회 두 달 전인 2019년 5월 중국에서 김 전 회장이 리종혁과 동석한 자리에서 경제협력 합의서를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협력 합의서 체결과 제2회 국제대회는 김 전 회장이 스마트팜 사업비용 취지로 500만 달러를 송금한 시점 이후에 진행됐다. 송금 이후 대북협력 관련 쌍방울 위상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쌍방울 위상 변화 과정 자체가 대북송금 의혹을 규명할 열쇠로 꼽히는 상황이다.
앞서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 측 인사들이 봤을 때는 쌍방울이 실제로 북한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주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이미 돈을 받아냈고, 앞으로도 돈이 더 들어올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쌍방울과 직접 소통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 김 전 회장과 북측 관계자가 직접 만나게 된 계기일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경기도와 쌍방울이 대북협력 파트너가 아니라면, 쌍방울 존재감이 급변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경기도의 정치적 목적과 쌍방울 경제적 목적이 모두 이뤄지려면 대북송금이란 행동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먼저 김성태 전 회장과 이화영 전 부지사의 협력 관계 여부가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검찰의 선결과제”라면서 “김 전 회장과 이 전 부지사 협력관계가 구체화된다면 그 뒤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여파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로까지 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이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고, 그 이면에 특정 지자체와 협력관계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지자체장이 관여한 부분이 어느정도인지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김성태 전 회장을 비롯한 쌍방울 핵심 관계자들을 줄기소한 상황이다. 양선길 전 회장, 방용철 전 부회장, 금고지기 김 아무개 씨 등을 구속수사 중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선 핵심 관계자들 추가 진술 내용에 따라 쌍방울과 경기도 협력 내용이 구체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월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둘러싼 정치적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제2, 제3의 체포동의안’ 중 하나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관련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검찰 출신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은 두드리면 열린다는 심정으로 구속영장을 계속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이라면서 “그 과정에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이 검찰의 중요한 카드로 부상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