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체 조직 떠오르면서 ‘자금공작’ 주도…남한 기업인 주요 타깃, 대표 케이스가 쌍방울 김성태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법리스크의 큰 축이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북한에 800만 달러를 송금한 경위를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조선아태위에 대북 스마트팜 사업 추진 비용 500만 달러, 이재명 방북비 명목 300만 달러를 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방울 소유 달러를 챙겨간 조선아태위는 최근 북한에서 ‘대남공작 선봉’에 선 조직이라고 한다.
기존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대남공작 파트 중 하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다. 북한 조선노동당 산하 대남공작 및 정보기관으로 알려진 통일전선부 산하 외곽조직이다. 조평통은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운영하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6년 조평통 위상엔 변화가 생겼다. 조평통은 기존 통일전선부 산하 외곽조직 신분에서 정식 국가기구로 승격됐다.
조평통은 국무위원회 산하 내각으로 편입됐다. 조평통은 당 산하 외곽조직에서 정부 산하 공식기관으로 변신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며 한국 기업인들을 다그쳤던 리선권이 국가 내각으로 편입된 조평통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22년 6월 그는 통일전선부장이 됐다.
리선권은 조평통 위원장 시절인 2018년 1월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에 북한 측 수석대표로 파견됐다. 사실상 한국 측 통일부 장관과 격을 맞추는 모양새였다. 통일부와 격을 맞췄던 통일전선부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합을 이뤘다.
조평통이 북한 정부기관으로 편입되면서 기존 통일전선부 외곽조직과에서 운영하던 외곽조직 판도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대남공작 ‘선봉장’ 역할은 주로 조평통 담당이었지만, 조평통이 공식적인 기관으로 변신하면서 새롭게 부각된 조직이 있었다. 바로 조선아태위다.
조선아태위는 최근 국내 정치·사회 뉴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북한 외곽조직이다. 경기도·쌍방울·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을 둘러싼 대북 커넥션 의혹 때문이다. 아태협 사무실은 쌍방울 본사 건물에 있었다. 아태협은 2018년과 2019년 2년에 걸쳐 경기도와 공동으로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국제대회)’를 개최했다. 1회 국제대회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2회 국제대회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국제대회엔 북측 인사들이 참석해 관심을 모았다. 여기 참석했던 주요 북측 대표단들은 조선아태위 핵심 인사들이었다.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을 필두로 김성혜 조선아태위 실장,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 등이 참석했다. 김성혜 실장은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을 밀착 수행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성태 전 회장 공소장에도 조선아태위 관계자 이름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제1회 국제대회 북한 대표단 방남을 추진하러 방북했을 당시 북한의 낙후된 협동농장을 스마트팜으로 개선하도록 경기도가 북한에 500만 달러를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2018년 11월 김 전 회장은 국제대회 공동주최자인 안 아무개 아태협 회장 소개로 조선아태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장소는 중국 선양이었고, 참석한 조선아태위 인사는 리종혁 부위원장, 김성혜 실장, 리호남 등이었다.
김성혜 조선아태위 실장은 김 전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경기도에서 스마트팜 비용을 지원해준다 해서 준비해놨는데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어 큰일”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은 귀국 후 이화영 전 부지사로부터 “스마트팜 비용을 지급하지 않으면 경기도 대북사업이 어려워지니 쌍방울이 대신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018년 12월 김 전 회장은 중국 단둥으로 건너가 조선아태위 핵심 관계자들을 만나 스마트팜 사업 관련 500만 달러 송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쌍방울이 북한 광물·호텔·카지노·백두산관광개발 등 사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건 것으로 전해진다. 2019년 1월 김 전 회장은 이 전 부지사(경기도), 안 회장(아태협)과 함께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을 만나 대북 합의서를 작성했다.
2018년에 송금을 위한 준비 절차가 마무리됐다면, 2019년엔 본격적인 송금이 시작됐다. 검찰은 2019년 1월, 4월, 11월~12월 등에 걸쳐 대북송금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측 수금 담당 실무자는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이었다. 하지만 경기도나 아태협, 쌍방울이 원하던 결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스마트팜 사업, 이재명 경기도지사 방북은 불발됐다. 쌍방울 대북사업도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전혀 진척이 없었다. 돈은 넣었는데 결과물이 없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대북공작원으로 활동했던 한 대북소식통은 “조선아태위의 전형적인 수법에 김성태 전 회장이 놀아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식통은 “조선아태위는 원래 그런 식”이라면서 “모든 공작 목적이 남측 기업인들의 돈을 빨아먹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그는 “수금만 할 수 있다면 수단을 불문하고 모든 일에 나서는 조직이 조선아태위”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아태위는 주로 한국 기업들을 상대한다. 한국 기업인이 북한 사람을 만나면 통일부 측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조선아태위는 교묘하게 통일부 허락을 안 받게 해준다고 하며 사업가들에게 접근한다. 나도 과거 조선아태위 관계자로부터 ‘여권 도장 안 찍히게 평양으로 초청해 밀월여행을 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대신 초청비를 요구한다. 5000달러를 달라, 1만 달러를 달라, 이런 식이다. 가격은 다양하다. 오래 전부터 조선아태위는 한국 기업인을 상대로 이런 일들을 해왔다.”
소식통은 “우리 기업인 입장에서 조선아태위는 그야말로 고장난 자판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소식통은 “지금까지 암암리에 대북사업을 목적으로 조선아태위를 통해 송금한 기업들 중 그 돈을 회수한 기업은 하나도 없다”면서 “조선아태위는 떡고물만 주워먹고, 송금받은 돈은 당으로 들어가 최고지도자 통치금이나 비자금으로 흡수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선아태위의 달콤한 제안에 넘어가 돈을 넣게 되는 순간 그 돈은 절대 찾을 수 없는 돈이 된다”고 했다.
정보기관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조선아태위 같은 경우엔 돈을 받은 뒤 조선노동당으로 그 돈을 보내고 오리발 내밀면 끝”이라면서 “돈을 뒤로 빼돌리는 그들의 행동은 그릇된 자본주의 체제를 흔드는 하나의 전술로 정당화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조평통 중심으로 구성돼 있던 북한 대남공작 외곽조직 판도가 조선아태위 위주로 꾸려진 이유는 사상투쟁보다 돈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정도까지는 학생운동 조직등과 소통하며 정치적 목적 대남공작을 수행하는 것이 북한 쪽 주요 전략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바뀌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고 핵을 개발하는데, 대북제재가 점점 돈줄을 조여오니 달러가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 정치공작을 하는 쪽보다 자금공작을 하는 쪽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결국 정치공작을 하던 조평통은 국가기관에 편입됐고, 외곽조직은 자금공작을 중심으로 한국 사업가들의 돈을 빨아가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 서 있는 조직이 조선아태위다.”
이 관계자는 “과거 조선아태위가 개입된 마약거래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었다”면서 “조선아태위는 당과 최고지도자에게 돈을 댈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작에 돌입하는 그런 외곽조직”이라고 했다. 그는 “조선아태위 관계자들은 교묘한 말로 한국 사업가들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하는데, 이런 제안에 혹하게 된다면 돈만 넣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된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