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질신문서 쌍방울·아태협 두 축은 ‘지휘부는 경기도’ 진술 일치 반면 이화영은 ‘모르는 일’ 입장 되풀이

법조계와 사정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압수수색 초점은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부회장과 안부수 아태협 회장 진술을 토대로 이 전 부지사와 관련한 증거를 찾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2월 15일 수원지검 형사6부는 ‘4자 대질 신문’을 진행했다. 이날 조사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안부수 회장, 이화영 전 부지사, 방 아무개 전 쌍방울 부회장이 참석했다. 이 전 부지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 진술은 거의 일치했다. ‘이 전 부지사가 북한에 스마트팜 비용을 지급하지 않으면 경기도 대북사업이 어려워진다며 먼저 (비용) 대납을 제안해 쌍방울이 (비용을) 대신 냈다’는 취지의 진술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송금 의혹을 구성하는 3개 축이 양 갈래로 분열한 상황이다. 쌍방울과 아태협 관계자들은 대북송금 의혹 관련 ‘지휘부’로 경기도를 지목했지만 정작 경기도 측 핵심 관계자인 이 전 부지사가 이를 부인하면서다.
2월 21일 이 전 부지사는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4차 공판에서 “치아가 빠졌다”면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대질신문 과정에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 전 부지사 측 변호인은 재판이 마무리될 무렵 검찰 증인신문 절차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전 부지사 측 변호인은 경기도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기도지사 시절 방북비용 300만 달러 대납 등 사항을 검찰이 집중 추궁한 것은 이 전 부지사 공소사실과 무관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기소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 법정에서 미리 수사를 했다고도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대북송금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은 경기도와 아태협이 추진하던 대북교류사업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의혹 중심에 섰다. 돈과 관련한 부분을 실제로 집행하는 역할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김 전 회장이 지목됐다. 김 전 회장이 대북송금 의혹 '키맨'으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부수 아태협 회장은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공동개최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 통일전선부 산하 외곽단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와 접점을 형성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선아태위는 2010년대를 전후로 북한 대남 자금 공작을 담당하는 핵심 조직으로 부상했다(관련기사 [단독] ‘고장난 자판기’ 대남 수금 담당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정체).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직접 자금을 수령한 주체로 지목되고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들은 아태협이 추진했던 사업들과 관련해 ‘납득할 만한 대북송금 채널 확보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아태협이 한창 사업들을 추진할 당시엔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 평화무드가 최정점에 달했을 시기”라면서 “남북평화무드 흐름에 올라 타 각종 대북교류를 통해 북한과 금전도 교류하려 했던 흔적이 엿보인다”고 했다.
안 회장이 이끄는 아태협 사무실은 쌍방울 용산 본사 사옥 5층에 위치해 있다. 아태협과 쌍방울이 사실상 한 몸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안 회장은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조선 아태위 간부 등에 직접 대북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안 회장은 2022년 11월 19일 구속기소됐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구성하는 3개 축이 연결된 계기도 관심을 모은다. 첫 연결고리는 김성태 전 회장과 이화영 전 부지사 사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둘 사이를 소개한 징검다리 역할은 ‘김만배 헬멧맨’으로 잘 알려진 최우향 화천대유자산관리 이사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사외이사로 영입된 이력도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전 회장과 안부수 아태협 회장을 연결한 인물로는 이 전 부지사가 지목된다. 김 전 회장도 비슷한 취지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김 전 회장은 1월 말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안 회장을 만난 경위와 관련해 “이 전 부지사 소개로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송금 의혹 중심에 세트로 묶인 삼각편대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분열을 맞았다. 그리고 대질신문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쌍방울은 기업, 아태협은 사단법인으로 민간단체이지만 경기도는 지자체”라면서 “혐의에 따른 책임 지분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일 수 있다”고 했다.
앞서의 대북 소식통은 “대북송금이 이뤄진 과정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사실 대규모 대북송금의 경우 민간 차원에서만 이뤄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8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민간이 자체적으로 북에 넘겼다는 것은 북한에 ‘그냥 돈을 삼켜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면서 “이 전 부지사 수사 결과에 따라 쌍방울이 어설픈 기업이었는지, 아니면 대북송금 자체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진 것인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지역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한 여권 관계자는 “대질신문에서 이 전 부지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공통된 진술을 했다”면서 “이 전 부지사는 모르쇠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 상황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부지사가 독단적으로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도지사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대북송금 의혹에서 이 전 부지사가 담당했던 역할 실체가 밝혀질 경우 본격적으로 사건 초점은 이재명 대표 개입 여부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