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위한 개정인가 비난 화살 ‘빗발’
▲ 한무컨벤션이 소유한 삼섬동 건물. 현재 2층에만 세븐럭 카지노가 영업중이다. | ||
정부가 국제공항 등을 갖춘 시·도의 특1급 호텔에만 설립 가능했던 외국인 전용 카지노 허가기준을 완화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전국의 모든 특1급 호텔이 일정 기준만 갖추면 카지노 설치를 허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물론 기존 카지노 업계까지 반발을 하고 나서 극심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정부는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립 기준 완화를 뼈대로 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업의 허가요건 가운데 ‘국제공항·국제여객터미널이 있거나 관광특구 안의 호텔업 시설이 있는 지역에 설치할 수 있다’는 기준을 완화해 ‘원칙적’으로 전국의 모든 특1급 호텔에 카지노 설치가 가능하게 한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사행성 조장’ 명분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향후 국회에 법안이 넘어오면 부결시키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의 카지노 가동률이 2002년 기준 3.8%에 머물고 대부분의 업소가 적자 투성이로 전락했다”며 정부 시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 이경숙 의원도 성명을 통해 “나라를 도박공화국으로 만드는 정부의 이번 조처는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정부가 ‘망국병’인 도박산업을 장려하고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번 조처가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국한된 것으로 관광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반론도 나오고 있다. ‘내국인 상대의 불법 도박장에 대한 단속이나 잘하라’는 식의 비아냥거림도 들려온다.
그러나 정부부처와 정치권의 갈등은 간단하게 봉합되지 않을 전망이다. 손봉숙 의원은 지난 3월 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1990년 이래로 외국인 관광객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카지노 가동률은 현저히 낮다”며 “앞으로 카지노 규제가 더욱 완화돼 내국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용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질 것”이라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모든 특1급 호텔에 카지노 허가가 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다. 설치기준이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기준에 부합해 신설될 수 있는 카지노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정부측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기존 업계에선 ‘앓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제주지역 카지노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위원회(위원장 최규선)는 지난 3월 8일 공개탄원서를 통해 정부의 이번 조처가 전국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공멸하는 근거를 만든 것이라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올해 2개의 카지노가 추가 신설될 경우 도내 카지노 대부분이 문을 닫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제주도의 기존 업계가 위기감을 느끼게 된 배경 중 하나로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세븐럭 카지노의 올 초 개장이다. 제주지역 업계인사들은 ‘세븐럭 개장 이후 딜러와 고객들이 대거 이탈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월 말 서울 삼성동에 세븐럭 카지노가 개장하면서 제주지역 카지노 업계 매출액이 눈에 띌 정도로 급감했다는 게 제주지역 업계인사들 주장이다. 카지노가 더욱 늘어날 경우 한정된 업계 경력직원 빼가기 바람이 불 것이며 이는 경력딜러들의 몸값을 천정부지로 솟구치게 만들 요인이 될 수 있다. ‘집단 이기주의’라는 시각도 있지만 기존 업계인사들에게 카지노 업소 신설은 절대 반가운 일이 아닌 셈이다.
올 초 신설된 서울 삼성동의 세븐럭 카지노는 이미 기존 업계 인사들에게 ‘공공의 적’ 같은 존재가 된 상태다. 그러나 세븐럭의 영업도 그리 순탄한 편이라고 볼 수 없다. 건물 용도 변경을 놓고 관계당국의 인허가를 얻지 못해 파행을 겪고 있는 것이다.
카지노 업계 안팎에선 이번 문광부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허가조건 중 허가지역을 부분적으로 현실화한 것’에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카지노는 국내에선 사실상 파라다이스그룹의 독점사업이었다. 3공부터, 3공과 인적자산을 공유한 5공 6공까지 그랬다. 하지만 ‘정권 교체’가 이뤄진 DJ정부 시절부터 카지노 신규허가론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DJ정부 시절 내내 공청회에 탄원서로 이어진 카지노 신규허가 공방은 DJ 정부의 후신인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4년 11월 전격적으로 서울 두곳, 부산 한 곳에 신규 허가를 내주면서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규 운영주체 후보로 떠올랐던 A사나 B사는 배제되고 한국관광공사가 운영주체로 선정됐다.
즉 여전히 카지노 운영에 대해 욕심을 내고 있는 대형호텔 사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이번 규정 변경에 대해 문광부가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카지노가 더 등장할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과거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았던 ‘카지노 신규 허가 배후설’이라는 유령이 다시 출몰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파라다이스의 카지노 왕국의 독점체제가 확실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투명 경영을 내세우며 증시에 상장까지 했던 파라다이스의 주가가 벌써부터 맥을 못추고 있다. 현정부에서 신규 카지노가 추가될지 궁금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