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인사, 유명 골퍼와 트롯 가수 등 전두환 집 찾아와…경호원들에게 돈 줘 비상장 주식 취득, 자손에게 상속”
전우원 씨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영상과 사진을 올리며 전두환 씨 일가뿐만 아니라 전우원 씨 주변 지인의 마약, 성범죄 등을 폭로했다. 전우원 씨는 “죄인은 숨을 곳이 없어야 한다”며 약 30건의 주변 지인에 대한 범죄 스토리를 적었다. 전우원 씨는 “내가 아는 전 씨 일가와 주변 지인 죄를 폭로하고, 나도 처벌받겠다”고 했다. 일요신문은 전우원 씨에게 직접 전두환 씨 일가 얘기와 폭로에 나서게 된 배경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갑작스러운 폭로에 놀라는 사람이 많다.
“갑작스럽게 폭로한 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내게는 부모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사실상 없었다. 미국으로 건너와 자랐지만, 그동안 왕따 등 힘든 시간을 겪기도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때도 있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나와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교회를 다니고, 봉사 활동에 나섰고 사람들의 순수함도 배웠다. 그들의 사랑을 느끼고 나니 내가 얼마나 흉측한지 알게 됐다. 특히 아버지(전재용 씨)가 목사를 한다고 하는 모습을 참기 어려웠다. 내 죄부터 고백하고, 내 주위에 피해자를 만들 수 있는 사람 명단을 공개해 추가 피해를 막고자 한다.”
―부모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던 배경이 뭔가.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한 상태로 외도를 했기 때문에 언제나 빈자리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 제 삶에 있어 주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이 없었다. 특히 사회에서 내 가족은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사회에서 내가 누군지 신분을 항상 감추고, 내 가족을 욕하는 걸 들어야 했다.”
―주변 지인의 마약, 성범죄 등을 폭로한 이유가 있다면.
“그들은 좋은 집안에 재산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법으로 심판이 어려운 자들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알리는 방법으로 처벌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법은 죄인을 심판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이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는 걸 대중들이 알길 바랐다.”
―현재까지는 유력 집안 자제 마약 범죄 등을 고발하고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인물들은 아니다. 재벌, 정치인, 연예인 등의 범죄를 고발할 계획도 있나.
“나는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회계법인을 다녔다. 학업과 직업이 금융 쪽이기 때문에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비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정치인 나 아무개 씨 가족의 남자친구 비리는 올려 둔 바 있다.”
―가족, 친척, 지인 폭로를 얼굴을 드러내고 하면 위협이나 협박은 없나.
“아직까진 없다. 동정심을 유발해서 빠져나가 보려는 사람도 있고,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어차피 나는 극단적인 선택 당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폭로한 뒤에 최소한 나라도 본보기가 돼 마약 등 내가 지은 죄는 다 대가를 받고 싶다. 가족은 ‘사랑한다’, ‘돌아와라’ 등의 말을 하거나,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 네가 괜찮다는 증거가 어딨나’ 등의 말도 있었다.”
―전두환 씨와 과거 자주 만난 사이였나.
“우리 집은 일요일마다 할아버지 댁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으면서 식사하고 어울리는 게 문화였다. 가끔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있던 날도 있었다. 할아버지 댁에 가서 비위를 맞추며 환심을 사는 게 목표였다. 할아버지는 돈으로 사람들을 포섭했다. 오는 사람들에게 100만 원 단위 용돈을 턱턱 내줬다. 나도 그 용돈을 받기도 했다.”
―전두환 씨 집에는 누가 찾아왔나.
“과거 하나회 사람들이 자주 왔던 걸로 기억한다. 유명 트롯 가수가 와서 공연하기도 했다. 가족이 골프를 참 좋아해서, 유명 골프선수를 초대하기도 했다. 집안에 스크린 골프장이 있어 집에서 골프를 치기도 했다. 때로는 학교나 체육시설을 통째로 빌려 배드민턴을 치거나 스포츠를 즐기기도 했다. 그럴 때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가 오기도 했다. 내가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몰라 못 알아본 것이지, 찾아온 사람 중에 유명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전두환 씨가 5·18 민주화운동 관련 얘기를 한 적이 있나.
“5·18 민주화운동 관련 얘기나 돈에 관한 얘기는 가족끼리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그런 것들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돌아온 건 세뇌밖에 없었다. 그들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이었다’라거나, ‘할아버지는 국가의 영웅이자 아버지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으로 내몰려) 피해자가 됐다’고 가르쳤다.”
―전우원 씨도 전두환 씨 가족으로서 재산을 증여 받은 게 있나.
“지금은 다시 다 가져가 버려서 세금으로 변했다. 다만 비상장주식 여러 개의 지분과 부동산, 호화 아파트 등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비엘에셋이라는 회사의 20% 지분, 웨어밸리라는 보안 업체 비상장 주식, 준아트빌이라는 고급 부동산 명의가 넘어왔다. 그러다 아버지의 황제 노역 사건이 터졌고, 그걸 이유로 아버지가 다시 회수해 가면서 내야 할 세금만 쌓인 상태다.”
―다른 가족은 어느 정도 받았으리라 보나.
“무조건 나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작은아버지인 전재만 씨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 사업을 한다. 미국 최고의 와인 산지 나파밸리 땅값에다 설비를 갖추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사업에 뛰어들려면 돈이 엄청나게 많아야 한다.”
―전두환 씨는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했다. 그가 이렇게 상속한 비결이 있다면.
“할아버지인 전두환 씨에게서 직접 자손들에게로 내려오는 게 아니다. 할아버지를 보좌하는 경호원들이 있다. 이들에게 돈을 주면 경호원들이 비상장 주식 지분 등을 취득해 자손들에게 준다. 할아버지를 조사해 봤자 나오는 게 없다. 그런데 자손이 갑자기 지인에게 거액의 증여를 받는 구조다. 만약 수사기관이 숨겨진 재산을 찾는다면 내 계좌를 확인해 보고, 내가 언급한 비상장 회사를 털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털어 놓으면 앞으로 영원히 가족을 못 만날 수도 있겠다. 가족들에게 원망을 듣는 게 두렵진 않나.
“내 마음으로는 가족을 다 용서하고, 사랑한다. 가족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진 않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 누렸던 모든 것들을 많은 사람의 희생을 통해 갖게 됐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중적인 감정이지만 그 가족의 일원이 됐다는 게 수치스럽고 창피하기도 하다. 그런 여러 가지 상황이 힘들게 한다.”
―스스로 죄를 고백하기도 했다. 처벌 받을 각오도 한 건가.
“코카인, 케타민, LSD, 대마초 등 각종 마약을 했다. 한국과 미국 가운데 형량이 더 높은 곳에서 모든 처벌을 받을 생각이다. 한국에서 처벌이 더 무겁다면 한국으로 갈 생각도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