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자유 박탈” vs “환자 보호 위해서라도 필요” 논란…해외 곳곳 입원 판단 위한 ‘사법임원제도’ 실시
조현병 환자의 환청·망상장애 등의 증상이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자의적 입원(강제입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증상 악화로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입원 치료를 권유하는데 환자가 거부하면, 가족이 비자의적 입원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환자 가족들은 비자의적 입원의 조건이 까다로워 바로 입원을 진행할 수 없는 어려움, 내 가족을 강제 입원을 시켜야 한다는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환자가 비자의적 입원을 진행한 가족을 원망해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비자의적 입원은 △응급입원 △행정입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으로 나뉜다. 응급입원은 경찰이 자·타해 위험성이 있고 추가적 위해가 발생할 긴급성이 있는 대상자를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동의를 받고 입원 조치하는 것을 일컫는다. 행정입원은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 정신질환자가 계속 입원할 필요가 있다는 2명 이상의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일치한 소견이 있는 경우 정신질환자를 치료 목적으로 지정 정신의료기관에 입원 의뢰해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입원시키는 것을 뜻한다. 보호의무자는 직계혈통(부모·아들·딸), 배우자(며느리·사위 포함), 후견인으로 대부분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다.
비자의적 입원이 조현병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깨뜨릴 수 있는 해결책 중 하나라는 의견이 있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조현병 환자가 일으키는 범죄가 줄어들면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겠나”라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만큼 증상이 심각한 조현병 환자를 입원 치료함으로써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점태 심지회(한국조현병회복협회) 회장은 “조현병 환자가 자가 입원과 치료를 거부하는 건 병식(병의 인식과 자각)이 없기 때문”이라며 “조현병은 치료하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되기에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병원에 보호입원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자의적 입원이 조현병 치료의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비자의적 입원에 반대하는 이들은 조현병 환자가 비자의적 입원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증상이 악화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외래진료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비자의적 입원이 비인도적 방법이며 조현병 환자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관계자는 “가족의 동의 또는 지자체의 명령으로 의사가 치료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조현병 환자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면서 감금하는 것 아니냐”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는 장애·질병을 이유로 잔혹한 비인도적인 처우를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가족의 동의를 얻지 않고 격리치료를 한 이유는 전염 등 타인에게 건강상 해를 가할 수 있어 국가 차원에서 나선 것”이라며 “육체적 질병 격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정신적 질병 격리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을 정도의 증상이 나타나 입원 치료 하는 건 환자를 위해서도 가족과 타인을 위해서도, 나아가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래진료·약물치료를 거부하는 조현병 환자를 놔뒀다가 범죄가 발생하면 손해배상금을 환자 가족이 몽땅 부담해야 한다는 점도 비자의적 입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다. 환자와 함께 살면서 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내는 조현병 환자 가족 입장에서는 비자의적 입원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응급입원과 행정입원은 병상·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현장에서 거부당하기 일쑤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경찰청·국회 입법조사처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경찰이 응급입원을 의뢰한 총 7380건 중 거부당한 사례는 517건이다. 실제 지난해 3월 경기 남양주에서 조현병과 치매를 앓던 환자가 응급입원 절차에 들어갔지만 인근 병원에서 모두 거절해 동두천 소재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있었다.
환자 가족들을 정신적으로 가장 괴롭히는 것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다. 앞의 응급·행정입원이 각각 경찰과 지자체장의 주도로 이뤄지는 것이라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가족들의 주도로 이뤄진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비자의적 입원 중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한림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비자의적 입원에서 보호의무자의 의한 입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85%다. 이러한 까닭은 환자 가족들이 응급·행정입원이라는 제도가 있는지 잘 모르고, 제도를 안다 해도 이에 호소하고 이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응급·행정입원보다는 절차도 간소하고 환자가 다녔던 병원이라면 환자 이송과 입원도 빠르다.
경찰이나 지자체에서 조현병 환자를 계속 관리하지 않는 이상 환자의 순간적인 증상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제도를 이용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환자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는 셈이다.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 조현병 환자를 꾸준히 관리하고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내 가족을 내가 강제로 입원시켜야 한다'는 심리적 고통과 조현병 환자를 가족으로 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견딜 수 없을 정도라고 환자 가족들은 말한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이뤄졌다고 해서 가족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강제 입원시킨 데 앙심을 품은 조현병 환자가 퇴원 후 가족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실제로 2018년 10월 40대 조현병 환자가 비자의적 입원을 시켰다는 것에 분개해 자신의 부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비자의적 입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환자 가족의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조현병 관련 단체, 정신의학계, 장애인인권단체 등은 해외처럼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비자의적 입원 결정을 사법임원제도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원 또는 준사법기관에서 심사를 거쳐 입원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정신건강법정에서 판사가 다학제팀(의료인은 아니지만 정신질환 분야에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인력)과 함께 중증정신질환자의 비자의적 입원을 심사한다. 호주에서는 정신건강심판원을 통해 정신의학전문의의 의견에 따라 입원 여부를 결정한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등) 중증정신질환의 치료와 회복은 그동안 전적으로 가족의 책임으로 맡겨져 왔다”며 “비자의적입원은 신체의 자유에 대한 문제이므로 국가가 결정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므로 제도 변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