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인과관계 입증 유족 몫, 근로복지공단 조사 인원도 부족…전문가 “전문 위원회 설치해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7년 각 분야의 사업장에서 뇌심혈관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인원은 총 1815명이다. 이 중 584명이 승인받았다. 2019년 산재를 신청한 인원은 2694명이며 1111명이 승인받았다. 2년 만에 직장인 뇌심혈관질환 산재 신청자가 2000명대를 넘어선 것. 올 5월 기준 직장인 뇌심혈관질환 산재 신청자는 907명이며 338명이 승인받았다.
뇌심혈관질환은 대표적인 과로 및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산재다. 노동환경연구소 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은 “과로는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성과 압박, 업무 가중 등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스트레스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면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과로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알려진 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러난 부분이 없기에 대중의 관심이 별로 없고 유족들도 막상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산업재해보상보호법에 따르면 뇌심혈관질환은 △뇌실질내출혈 △지주막하출혈 △뇌경색 △심근경색증 △해리성 대동맥자루(대동맥 혈관벽의 중막이 내층과 외층으로 찢어져 혹을 형성하는 질병) 등이 있다. 이 중 법에 규정되지 않은 뇌심혈관질환으로 과로사 할 경우 질병의 유발이나 악화가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이 시간적·의학적으로 명백한지 판단해야 한다. 업무로 인해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만 입증되면 과로사에 대한 산재 신청이 가능하다.
다만 업무강도, 업무시간, 인과관계 등 입증 과정이 복잡해 유족 측에서 개인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를 입증해나가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아 유족들이 경제적 책임을 지고 변호사, 노무사 등 ‘입증 책임자’를 직접 선임해야 하는 실정이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업무상 질병의 인정 여부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다. 그러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업무상 질병을 모두 심의해야 하는 탓에 과로사만 따로 심층적으로 조사하기 힘든 상황이다. 근로복지공단 내 과로사 조사 인원도 부족하다. 근로복지공단 내 과로사 산재 담당자가 1명당 40~50개 사건을 맡는 것으로 전해진다.
위드유HR컨설팅 소속 류순건 노무사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 과로사를 규범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위원회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임 사무처장은 “결국 시스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매년 1만 2000명 정도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데 이 중 5000여 명이 업무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함에도 불구하고 산재 신청은 10여 명뿐”이라며 “근로자가 죽으면 왜 죽었는지 알아내야 하는 건 유족의 몫이다. (유족이)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산재 신청을 하는지, 어떤 소명 자료가 필요한지 등을 알겠느냐”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과로에 대한 별도의 인정기준을 마련해 인식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류순건 노무사는 “과로의 인정기준이 특정 질환인 뇌심혈관질환에 한해서만 명시돼 있어 판단에 어려움이 있다”며 “뇌심혈관질환 이외 질병이나 정신질환에 대한 인정기준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근로복지공단의 과로사 조사를 이행할 법적 근거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법상 민간 기업들이 과로로 사망한 근무자의 평소 업무시간 등 기본 자료를 제공할 법적 의무가 없는 탓에 근로복지공단에선 "사망자의 업무와 관련한 기본 자료를 얻지 못해 (과로사) 인과관계를 풀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법무법인 마중 김용준 변호사는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업무를 진행했던 사업장에서 근로자에 대한 기본 (업무) 자료를 제공하도록 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