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으로 권한쟁의심판 청구하거나 검찰청법 개정 재추진 거론…지도부는 ‘신중한 입장’
헌재는 3월 23일 법무부와 검찰이 국회를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모두 ‘각하’ 결정했다. 각하는 소송요건에 흠결이 있거나 부적법한 경우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당사자 신청을 배척하는 처분이다.
헌재는 청구인인 한동훈 장관에 대해 “법안은 검사의 권한을 일부 제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며 “수사권·소추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법무부 장관은 청구인 적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에 대해서도 “법률 개정 행위는 국회가 입법사항인 수사권·소추권 일부를 행정부에 속하는 국가기관 사이에서 조정·배분하도록 법률을 개정한 것”이라며 “검사들의 헌법상 권한침해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1997년 8월 21일, 2008년 1월 10일, 2019년 2월 28일, 2021년 1월 28일 헌재 결정 등을 통해 “행정부 내에서 수사권 및 소추권의 구체적인 조정·배분은 헌법사항이 아닌 입법사항”임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수사권·소추권이 헌법상 권한이 아닌 국회의 입법사항이라며 사실상 민주당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한 장관은 3월 24일 과천 법무부 청사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 장관으로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검수완박법의 문제점에 대해 실질적 판단을 안 하고 각하하는 등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친 헌법적 질문에 대해 실질적 답을 듣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서는 ‘헌재가 법무부 장관의 청구인 자격을 각하했는데 사과할 생각 없느냐’는 질문에 “재판관 9명 중 4명은 청구인 적격을 인정했다”며 “입법 과정에 위장 탈당 같은 위헌·위법이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에 사과는 민주당 의원들이 해야 한다”고 반격했다.
헌재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검수완박을 둘러싼 한 장관과 민주당 간 감정의 골이 오히려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민주당의 이후 스텝에 관심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할 수도 있다. 앞서 법무부는 시행령을 통해 검찰청법 개정안 안에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중요범죄’의 ‘등’을 최대한 활용해 검찰 직접수사 대상을 일반 형사사건까지 크게 넓혔다. 한 장관 역시 법에 ‘등’을 넣은 것은 민주당이라면서 시행령 입법 취지를 강조했다.
앞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한 장관은 “우리는 (검수완박법) 취지를 존중해 시행령을 만들었고, 그 부분에 대해 (헌재에) 어떤 청구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행령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시행령 유지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민주당은 시행령이 모법의 입법 범위를 넘어서 위법하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당초 민주당은 헌재 판결 이전에 권한쟁의심판 제기를 검토했지만 실제 청구까지 이뤄지진 않았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한 의원은 “일단 헌재의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며 “다시 신중히 검토한 후 승리 가능성이 충분하면 제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헌재가 검찰의 수사권·소추권이 국회의 입법사항이라고 확인해준 만큼, 이번에는 말 그대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등’ 문구를 ‘중’으로 개정해 확장 해석을 제한하거나, 검찰이 기소만 담당하게 하는 방안에 속도를 낸다는 것이다. 실제 당 일각에서는 이러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 한 전략통은 “한 장관은 검찰청법에 ‘등’이 들어간 것은 민주당이 합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법무부는 시행령 입법은 정당하다는 것”이라며 “그럼 민주당이 법을 다시 개정해 ‘등’을 빼면 된다. 검수완박 취지는 장기적으로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 등을 설치해 검찰이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나온 만큼 다시 법 개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검수완박 법을 추진할 때 국회는 여야가 갈라져 극한 대립을 보였다. 검수완박을 밀어붙였던 민주당을 향한 시선도 그리 곱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 민생 법안 처리가 산적한 상황에서 검수완박을 다시 추진하면 국회가 갈등으로 멈출 수 있고, 자칫 그 역풍을 민주당이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민주당 전략통은 “지금은 국회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느냐. 윤석열 정부와 검찰은 야당 탄압만 하고 있지, 민생을 챙기고 있지 않다. 결국 입법은 원내에서 논의할 일이다. 하지만 아직 의원들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검수완박 추진을 주도했던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검찰의 직접수사를 다 없애는 게 당초 여야의 합의였다. 법 개정을 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 검찰청법 개정안이 새로 올라온 것은 없다”며 “검수완박에 국민의힘은 절대 반대하고 있다. 법사위원장도 국민의힘이 가져갔다. 사개특위(형사사법체계개혁특별위원회)도 여야 의원이 동수다. 현실적으로 법 개정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실제 민주당 지도부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한 의원은 “지도부가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며 “헌재의 이번 판결에 대해 국민들께 알려나가야 된다. 지금은 윤석열 정권과 한동훈 장관이 얼마나 무도한지 알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