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5:4로 ‘국힘’ 권한 침해 인정, 5:4로 ‘국회’ 판단 존중…법무부가 시행령으로 수사권 회복 시 공소권 문제 발생
당초 법조계가 예측한 지점이기도 했다. 민주당이 위장탈당 등 몇 가지 문제가 될 소지는 있지만, 국회에 부여된 입법권한을 헌재가 문제 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이로써 한동훈 법무부 장관 주도 하에 추진한 ‘검찰 수사권 정상화’는 새로운 시도가 불가피해졌다.
#6개월 만에 내린 결론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둔 지난해 4월 말~5월 초 국회를 통과해 9월부터 시행됐다. 개정된 검찰청법은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개 범죄에서 부패·경제 2개 범죄로 축소하고 수사 개시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법안을 무효화하기 위해 헌재를 찾았다. 권한쟁의심판을 신청한 것.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사이에 권한 다툼이 있을 때 헌재가 이를 가리는 절차다.
법무부는 헌재에서 열린 2022년 7월과 9월 공개 변론 등에서 “검찰의 수사·소추권을 침해한 데다 국회 입법절차에서 의원 위장탈당과 회기 쪼개기 등 편법이 동원됐으므로 개정 행위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민형배 의원이 위장 탈당을 통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 절차를 무력화하고 본회의에서 회기 쪼개기를 통해 무제한 토론 절차(필리버스터)를 막은 점 등이 반헌법적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국회 측은 “법 개정으로 인한 검사의 권한 침해가 없는 데다 적법한 입법절차에 따라 수사권을 조정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이에 대해 헌재는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 재판관) ‘침해됐다’고, 나머지 4명(유남석 소장·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침해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인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 조정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했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이는 국회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와 실질적 토론을 전제로 한 헌법상 다수결원칙을 규정한 헌법 제49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법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권한이 침해됐다는 주장을 다수로 받아준 셈이다.
하지만 헌재는 당시 국회의 법안 가결 선포가 무효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가결 선포 행위를 무효로 해달라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청구에 대해서는 거꾸로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기각했다. 국민의힘의 권한이 침해됐다고 본 재판관 가운데 이미선 재판관은 “국회의장의 개정법률 가결 선포 행위는 문제없다”고 봤다. “침해 정도가 국회의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진 않았다”며 “국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법무부가 낸 권한쟁의심판도 각하를 결정했다. 역시 5 대 4의 의견이었다. 5 대 4의 재판관 구성은 국민의힘이 낸 권한쟁의심판 때와 동일했다. 5명의 재판관은 청구인 가운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수완박 법률에 의해 제한되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할 수 있는 당사자 적격이 없다고 판단했고, 나머지 청구인인 6명의 검사들에 대해서는 권한침해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각하했다.
#예측 가능했던 결과?
사실 이미 법조계에서는 예상됐던 결과였다. 헌재 파견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민주당의 입법 과정이 다소 무리한 지점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검찰의 수사권을 줄이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라면서도 “문제는 국회의 입법권한을 문제 삼기에는 헌재에 뒤따르는 부담이 너무 크다. 헌재를 만든 것도 국회에서 만든 법안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실제로 헌재는 1997년과 2011년 권한쟁의심판 결정에서는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이미 통과된 법률을 무효로 하진 않았다. 한 판사는 “국회의 입법권 과정을 두 차례 문제 삼은 바 있지만 한 번도 헌재가 국회 결정을 무효로 한 적은 없다”며 이미 예상됐던 결과라고 설명했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들이 많은 것도 ‘국회’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점쳐지는 대목이었다. 현재 헌재 재판관 9명은 진보 6명, 보수 2명, 중도 1명 정도로 분류된다. 진보색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유남석 소장을 필두로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했다. 이들 가운데 유남석 소장, 문형배 재판관은 권한쟁의 기각으로 표를 던졌다. 또한 이미선 재판관은 권한은 침해됐다면서도 무효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역시 국회의 손을 들어준 이석태 재판관의 경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역임한 인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했다. 입장을 함께한 김기영 재판관은 더불어민주당 몫으로 재판관이 된 경우다. 모두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옛 바른미래당 몫으로 임명된 이영진 재판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몫으로 지명된 이종석 재판관 정도만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검찰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한 재판관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 안에서 헌재가 국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헌재 판단이 정치적인 판단이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검찰에게 주어진 카드
그렇다면 법무부는 이제 어떤 대응카드를 선택할 수 있을까. 법무부 안팎에서는 대통령 시행령으로 검찰 수사권을 다시 회복시키는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통령 시행령을 구체화해 경찰로 수사권이 넘어간 사건들 중 일부를 검찰이 함께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통해 ‘국회’를 거치지 않고 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공소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 시행령을 수정해 검찰의 수사 범위를 넓히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이는 향후 재판에 갔을 때 무조건 공소권이 적절하냐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고 시행령보다 상위에 있는 검찰청법 등으로 문제 삼을 경우 ‘공소권 무효’ 판단이 나와 처벌이 불가해질 수 있다”며 “검찰 입장에서는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하는 리스크가 있어 선택하기 쉬운 카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