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이륜차 탑재 경험 있다지만 전문가들 ‘갸우뚱’…자이글 “자체 배터리 셀 개발 능력 높은 평가 받고 있어”
#홈쇼핑 신화 쓰다 내리막, LFP 배터리로 눈 돌려
2008년 설립된 자이글은 2010년대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자이글은 2009년 적외선을 이용해 위아래에서 음식을 굽는 적외선 조리기를 출시했다. 제품이 홈쇼핑을 통해 방영되면서 인기를 끌었고 창업 7년째인 2015년 매출 1019억 원을 달성했다. 2016년엔 코스닥 시장에 공모가 1만 1000원으로 상장했다. 2016년에도 자이글은 매출 1020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2015년과 2016년 각각 167억 원, 131억 원이었다.
그러나 2017년부터 자이글의 매출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7년 매출은 824억 원으로 떨어졌다. 2018년엔 매출이 558억 원으로 급감했고 64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이후 매출은 줄곧 하락했고 지난해 매출은 150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이 정점을 찍었던 2015년과 2016년 대비 10분의 1 토막 난 셈이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27억 원이었다.
자이글이 쇠퇴한 데는 필립스를 비롯한 다양한 주방가전업체들이 내놓은 에어프라이어의 등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기름 없이 튀기는 에어프라이어는 주부와 자취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결국 자이글은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2018년 자이글은 뷰티‧헬스케어 브랜드 ‘ZWC’를 선보였고, ‘자이글 그릴&펍’을 통해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외식 사업 부문에서 발생한 매출은 0원이었다.
최근 자이글은 예상치 못한 신사업에 출사표를 던져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자이글은 2차전지 사업, 그중에서도 LFP 배터리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LFP 배터리는 리튬, 인산, 철로 구성된 양극재로 만드는 배터리다.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저렴하고 화재 위험이 낮지만, 무겁고 출력이 떨어진다. 지난해 12월 자이글은 국내 기업인 씨엠파트너 전지사업부문의 공장, 생산설비, 개발 등 유·무형 자산을 74억 원에 양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를 위해 63억 원을 은행에서 차입했다. 지난 3월 30일에는 미국에 2차전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한 세부 사항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공장은 시제품을 생산할 규모에 불과해 미국에 기가급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설명이다.
자이글 관계자는 “전기 오토바이팩, 태양광 소형 전지팩 등 자체 제조 셀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 개발을 완료했다”며 “2021년 미국의 LFP 배터리 원천 특허가 만료되면서 배터리 제조가 특허로부터 자유로워졌는데, 씨엠파트너는 그 이전에 이미 자체 양극재를 개발해 회피 특허를 확보해 제품을 생산했다”고 설명했다.
즉 전기이륜차와 태양광 가로등 등에 자체 배터리 셀을 활용해왔다는 것이다. 자이글이 우선 진출하는 시장은 ESS와 UPS(무정전전원장치) 분야다. ESS는 수백kWh(킬로와트시) 이상의 전력을 대량으로 저장하는 장치고 UPS는 ESS의 일종으로 전력 공급이 차단돼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장치다. 자이글은 미국 통신사 ESS 설비에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고 밝혔다.
#LFP 배터리 역량 발휘 가능할까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자이글이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성수 한국전지학회 회장(충남대학교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은 “전기자전거 등에 들어가는 소형팩과 ESS·자동차는 기술 스케일이나 관련 기술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소형 UPS까지는 중소기업의 역량에 의해 승산이 있을 수 있으나 전력저장과 같은 대형의 경우는 전력 운용 등과 관련된 내용이라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술과 그 기술을 상용화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국내 대기업인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도 LFP 배터리 개발을 끝내고 시제품이 나왔는데, 상용화하기까지 1~2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고 말했다.
자이글은 중국 기업은 물론 국내 배터리 대기업과도 경쟁해야 한다. 지난 3월 ‘인터배터리 2023’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ESS용 LFP 배터리 셀과 해당 셀이 탑재된 전력망과 주택용 제품 등을 공개했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ESS용 LFP 배터리 일부를 양산할 예정이라 밝혔고,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7조 2000억 원을 투자해 신규 원통형 배터리와 ESS용 LFP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다고도 발표했다. 삼성SDI도 LFP 배터리 진출 가능성을 열어뒀다. 중국의 기세도 무섭다. 지난해 LFP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 기업들의 ESS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7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CATL은 차세대 LFP 배터리를 개발해 양산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자이글은 양산용 오토바이에 적용했던 EV용 LFP 배터리를 전기차에 적용하는 것을 지속적인 연구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난관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가 전기차에 들어가면 배터리 셀이 100개 이상 연결된다. BMS(배터리관리시스템)를 통해 온도나 전압 차를 조정하는 게 중요해진다. 생산 물량 확보라는 면에서 자동차 회사들이 소규모 회사에 직접 접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중국의 가격 경쟁력을 따라잡아야 하는 것도 과제”라고 지적했다.
자이글은 2차전지 사업 이외에도 피부 의료기기 사업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21년 6월 산소발생기에 대해 의료기 인증을 받았고, 2021년 10월과 올해 3월엔 LED돔과 피부 고주파기에 대해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3월 주주총회에서는 ‘의료용 기기 개발, 제조 및 조립업’과 ‘의료용 기기 도‧소매업 및 수출‧수입업 제반 관련 부대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코로나19 이후 마스크를 벗고 외모를 관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헬스케어 부문은 자이글 매출의 63%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으나, 지난해 매출은 2021년 대비 10% 떨어진 101억 원을 기록했다.
자이글은 본업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 제품군인 자이글 그릴의 매출은 지난해 49억 원으로 2021년 대비 46% 감소했다. 재무 상황도 좋은 편은 아니다. 지난해 자이글의 유동비율은 64.91%로 2021년(135.87%) 대비 70.97%포인트 감소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28.21%에서 46.36%로 높아졌다. 4월 4일에는 운영자금과 채무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00억 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도 공시했다.
이와 관련, 자이글 관계자는 “2차전지 사업 특성상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알기에, 해외 투자자 유치와 해외 합작법인 설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LFP 배터리는 자체 노하우와 생산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며 자체 배터리 셀을 개발 완료했다는 점 자체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며 “의료기 인증을 획득한 산소발생기, 피부 광조사기 등 마케팅을 강화해 기록적인 성장을 해나갈 것이다. 전기그릴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계속 전기그릴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는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