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소방관 연이은 순직과 ‘개딸’ 공격 등으로 결단 내린 듯…세대교체 가능성 두고는 당내 온도차
초선 오영환 민주당 의원이 내년 4월 치러지는 차기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오 의원은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특수구조대에서 근무한 소방관 출신이다. ‘암벽여제’로 불린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 김자인 선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그해 1월 인재영입 5호로 민주당에 입당, 경기 의정부갑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소방관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 당 재난재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당 원내대변인 등을 역임했다.
오영환 의원은 4월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년 가까운 현장 소방관 경험에 비추어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정치에 투신했다”며 “이제 저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던 저의 사명, 제가 있던 곳이자 제가 있어야 할 곳인 국민의 곁을 지키는 소방관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불출마 결심 이유로 최근 이어진 동료 소방관들의 잇단 순직을 꼽았다. 오 의원은 “지난해 3명의 소방관 순직과 영결식이 끝난 뒤,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발 늦은 현실에 절망했다”며 “지난달 또 한 명의 유골을 현충원에 묻으며 더 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는 한계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오 의원은 “우리 정치는 상대 진영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오염시키는지를 승패의 잣대로 삼으려 한다”며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에 바쁜,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한 명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이어 “말만 앞세운 개혁이 무슨 의미인지 국민이 묻고 있고 그 물음에 ‘내려놓음’이라는 답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오 의원은 불출마 선언에 다른 정치적 고려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2020년 총선 때 지역구 세습 논란이 불거졌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 아들 문석균 씨가 의정부갑 출마를 준비 중이라 오 의원이 불출마하는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에 대해 오 의원은 4월 13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굉장히 모욕적”이라며 “어떤 정치적 이유나 정치적 계산을 해서 그만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계파 충돌 과정에서 불출마 선언한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오 의원은 민주당 대선 경선 때 이낙연 전 대표 수행실장을 맡아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들로부터 줄곧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은어)’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오 의원은 “(내가) 이낙연계라는 표현 자체가 오해”라며 “제가 (영입) 당시에 진심을 다해 지지하고 응원하고 함께했던 분인 것이지, 그 분 계파로서 연관이 깊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딸들로부터 수박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게 이번 불출마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 의원을 잘 아는 민주당 한 청년 정치인은 “지지자들이 자꾸 수박이라고 하니까 회의감이 많이 들었던 것으로 안다”며 “사실 오 의원은 이낙연계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친문계에 가깝다. 지지층은 무작위로 과도한 비판을 하는 것을 멈출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오 의원 불출마 선언은 21대 국회에서 초선 의원 중 처음이다. 앞서 민주당에서는 4선 중진 우상호 의원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도전하면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송영길 전 대표도 2022년 1월 ‘86 용퇴론’ 카드를 꺼내들며 본인부터 총선 불출마를 약속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오 의원을 시작으로 총선 불출마 선언이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앞서 20대 국회에서는 초선 중 이철희 표창원 이용득 이훈 윤일규(민주당) 유민봉 윤상직 조훈현 최교일(당시 미래통합당) 채이배(민생당) 등 의원 20여 명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초선 132명 중 약 15%가 재선에 도전하지 않았다.
오 의원과 함께 21대에 처음 국회에 발을 들인 이탄희 의원은 4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초선 의원 중 오 의원과 같은 고민을 하는 분이 더 있느냐’는 질문에 “많다고 본다”며 “다만 (불출마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다 보면 결국 생각이 지배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고 전했다. 또한 “애민정신을 가지고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감각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이 못 버티고 계속 떠나는 상황, 계속 새로운 정치인들이 들어오는데 대폭 물갈이 돼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오 의원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86 용퇴론’을 비롯한 세대교체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초선 의원이 정치 변화를 외치며 불출마 선언을 하는데, 중진들이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86 용퇴론이 제기됐지만 흐지부지 끝났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유권자들은 언제나 변화를 원한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했다. 내년 총선에서 인적쇄신을 하지 않으면, 특히 수도권 상당수 지역구에서 민주당 현역들이 다시 나온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새로운 후보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럼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공천을 개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민주당에서도 혁신 공천을 통한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는 4월 13일 “기득권 정당이 아니라 국민 정당 민주당을 위해 정체성을 회복하는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며 “민주당 기득권 내려놓기를 위해 시급히 혁신안을 완성해 공포해주실 걸 요청한다”고 당 혁신위원회에 공천 혁신을 요구했다.
청년위가 제안한 공천 혁신안의 내용은 △동일 지역구 3선 제한 △현역의원 하위 30% 컷오프 △공천 및 검증 업무 시 외부인사 절반 배치 등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인위적 세대교체 공천 개혁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86 용퇴론은 너무나 막연한 주장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재명 대표도 ‘86세대’다. 이 대표 역시 차기 총선에서 물러나야 하느냐”며 “민주당은 이해찬 전 대표 때 만들어진 ‘시스템 공천’ 룰이 있다. 이 대표 체제에서 이를 더 보완해서 공정한 경쟁을 붙이면 된다. 당원과 국민들이 국민의힘에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리라 믿는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