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전 사퇴한 뒤 총선 불출마 선언 시나리오…비명계 조기사퇴 요구 및 친명 내부 이견 ‘불씨’
2월 27일 체포동의안 부결 후 민주당 친명과 비명 간 대립은 최고조에 달했다. 비명 의원들이 최소 20명, 많게는 40명 가까이 이탈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이재명 대표 강경 지지층은 가결에 표를 던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을 추려 ‘공천 살생부’ 등을 만들어 돌렸다. 지난해 대선 경선 때 대장동 의혹을 제기했던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선 영구제명이 올라오기도 했다.
비명계에선 몸을 사리면서도 ‘개딸’로 대표되는 이 대표 강경 지지층 행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으로 주로 비명계 의원들을 지칭)’으로 찍힌 일부 의원들은 의원실로 밀려드는 항의 전화로 인해 업무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비명 의원들은 검찰이 또 체포동의안을 낼 경우 이번엔 더 많은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 의원 측을 압박했다.
이런 기류는 이 대표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전 아무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 씨는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김남준 당대표 정무부실장 등 핵심 측근 그룹과는 다소 결이 다른 인물이다. 앞서의 3명은 이 대표와의 개인적 친분이 바탕이 됐지만 관료 출신인 전 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선출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 대표가 충격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대표는 3월 10일 “제가 만난 공직자 중에 가장 청렴하고 성실하고 헌신적이고 유능했던 공직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검찰의 이 미친 칼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검찰을 강력 비판했다. 측근 인사들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 씨가 자신으로 인해 검찰 수사를 받았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 부분에 대해 괴로움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안팎에서 이 대표가 더 이상 버티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분출했다. 퇴진 압박이 거세지자 이 대표는 적극적인 통합 행보에 나섰다. 이 대표는 3월 14일 발표한 ‘민주당 2024 총선 공천제도 TF’에 비명계 의원들을 대거 배치했다. 11명 위원 중 이해석 문진석 의원을 제외한 9명을 비명계로 채웠다. TF 단장으론 이낙연계로 꼽히는 이개호 의원을 발탁했다. 총선 공천에 대한 비명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같은 날 이 대표는 자신의 강경 지지층을 향해서도 메시지를 냈다. 이 대표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하는 일들이 가끔씩은 자해적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다. 체포동의안 가결표 의원 색출 움직임에 대해서는 “거의 집안에 폭탄을 던지는 거랑 똑같다”라고 했다.
이 대표가 적극적으로 수습에 나서면서 당은 차분해졌다. 비명 일각에서 맴돌던 이 대표 사퇴론이 오히려 친명 진영에서 논의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이 대표가 전략적으로 2선으로 물러난 뒤 총선을 치르자는 시나리오였다. 정가에선 이를 ‘단계적 퇴진론’ ‘질서 있는 퇴진’ 등으로 표현했다. 한 친명 핵심 의원은 사석에서 “내홍이 거셀 땐 이 대표도 양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가라앉을 조짐을 보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단계적 퇴진론은 사법 리스크 출구전략 차원으로 이해하면 된다. 당에 악재가 발생하면 그 모든 화살이 이재명에게로 날아온다. 앞으로 이 대표 개인과 당에 어떤 돌발 변수가 터져 나올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2024년 총선 성적표까지 좋지 않을 경우 이 대표 입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럴 바엔 차라리 이 대표가 용단을 내려서 한 발 물러나 있는 게 좋지 않느냐는 의견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총선공천 TF 단장을 맡고 있는 이개호 의원도 3월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단계적 퇴진론은) 상당히 일리 있고 사실에 가까운 얘기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이어 이 의원은 “내년도 총선 승리가 가장 큰 판단의 기준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대표가) 어떤 게 유리하냐 이런 걸 보고 판단을 해서 결정을 해 나가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처음 열리는 3월 16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는 “일부 지지자들의 지나친 행위로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당 대표에게 있다”면서 몸을 낮췄다. 이어 “내년 총선에서 패하면 당이 어려워지고, 내 정치도 끝난다”며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다 같이 힘을 뭉쳐나가자”고 말했다. 이 대표가 발언을 마치자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발언을 두고 정가에선 무수한 해석이 쏟아졌다. ‘단일대오’를 부각하며 총선을 본인 주도 하에 치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보단 단계적 퇴진을 고려하고 있다는 뜻에 무게가 실렸다. 또 다른 친명 초선 의원은 “의원총회에선 즉답을 내놓진 않았지만 이 대표가 최근 연말 전 물러나는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한다”면서 “아직 결정된 게 없기 때문에 향후 상황을 보면서 판단하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 대표는 의원총회를 앞두고 틈틈이 의원 개개인들과 ‘차담’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이 먼저 요청해 의원실을 직접 방문했다. 앞서의 친명 초선 의원은 “그동안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대표가 직접 연락해 의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면서 “개인 문제뿐 아니라 당의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을 듣고 있다. 의원들로부터 호평이 많다”고 전했다.
특히 이 대표는 당의 원로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당 관계자들은 단계적 퇴진론 진원지를 이곳으로 꼽기도 한다. 일부 원로가 이 대표에게 전략적 후퇴를 건의했고, 이를 이 대표가 받아들였다는 게 골자다. 실제 이 대표를 만났다는 한 원로는 익명을 전제로 “당과 이 대표 모두를 위해선 총선 전 사퇴가 길이라고 강조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 대표가 모종의 결심을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단계적 퇴진론을 두고도 잡음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선 비명계는 연말이 아닌 조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비명계 조응천 의원은 3월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내년 총선이 4월인데, 연말이면 그 때는 거의 총선”이라며 “(연말엔) 거의 침몰 직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친문 의원 역시 “연말 사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비명계는 친명 진영에서 꺼내든 ‘단계적 퇴진론’에 또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으로 의심한다. 이 대표가 2선으로 빠지더라도 친이재명 성향 ‘비대위’가 출범할 것이란 관측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이 대표가 연말 퇴진⟶총선 불출마⟶차기 대권으로 가는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 하지만 국민들 눈엔 꼼수로 비칠 수 있다. 이 경우 당이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면서 “현 상황에 대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선 조기 사퇴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친명 내부 갈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단계적 퇴진론에 대해 일부 친명 의원들은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김남국 의원은 3월 13일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강경 지지층인 ‘개딸’ 역시 부정적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적잖은 친명 인사들은 이 대표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이 대표 거취를 두고 친명 간 대립이 불거질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