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알선한 피해자 협박해 허위 합의금 뜯어내…다른 피해자엔 유리병 등 흉기로 무차별 폭행도
“동생 사건을 보면 너무 화가 나 참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알려져야 합니다.” A 씨 친오빠의 말이다. A 씨 오빠는 동생 사망을 확인한 뒤 경찰에서 사건을 단순 자살로 종결하려는 시도를 막으려고 직접 증거를 찾고 가해자에게 연락도 취했다고 한다. A 씨 오빠는 “이 사건이 단순 자살로 끝나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말했다. A 씨 유서에 따르면 “정 씨가 자기 억울한 것만 얘기하면서 잘못을 덮으려 한다. (오빠가) 그걸 막아달라”고 써 있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검찰 공소장 내용과 A 씨와 B 씨 유서, 녹취록 등을 종합해 보면 사건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은 2022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 씨는 지인이던 허 아무개 씨로부터 ‘주변에서 돈이 급하고 필요한 친구들 있으면 전월세 대출을 모집해 준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허 씨는 ‘C 은행 전월세 대출이다. 불법이 아니’라면서 1억 원을 빌릴 수 있다고 권했다.
마침 친구 정 아무개 씨가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A 씨는 허 씨 얘기를 해주게 된다. 유서에 따르면 A 씨는 “허 씨가 ‘절대 불법일 수가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주변에서 이상하다고 해서 나는 (대출을) 받지 않았다. 친구인 정 씨에게도 ‘너도 무서우면 하지 마’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하지만 정 씨는 돈이 너무 급하다며 계속하겠다며 스스로 선택했다”고 적혀 있다. 반면 정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자세히 얘기하기 어렵지만 유서 내용과 당시 상황이 다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유서에 따르면 결국 정 씨는 대출을 받았고, 친구인 A 씨에게 고맙다는 이유로 500만 원을 이체했다. 그런데 대출은 사기였고, 정 씨는 1억 원 이상 본인 명의 빚을 지게 됐다. 2022년 7월 정 씨는 ‘대출로 빚을 지게 됐다’는 얘기를 주변에 하다 친구이자 ‘작업 대출’꾼이었던 이 아무개 씨에게도 그 얘기를 하게 된다.
당시 이 씨는 김 아무개 씨, 강 아무개 씨 등과 함께 작업 대출 일을 하고 있었다. 작업 대출은 대출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통해 금융기관을 속여 대출을 실행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2022년 사건 당시 김 씨는 23세, 강 씨는 21세, 이 씨는 19세에 불과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전과는 화려했다. 김 씨는 보험 사기법 위반 등으로 전과가 있었고, 강 씨는 강도상해죄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바 있다. 가해자 무리 중엔 작업 대출 조직원 장 아무개 씨도 있다. 다만 장 씨는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상태로 따로 기소돼 이번 사건 공소장엔 더 자세한 부분이 나오지 않는다.
정 씨에 따르면 김 씨와 강 씨는 사장, 이 씨는 직원으로 칭했다고 한다. 나이 등으로 추정해볼 때 이들 무리는 김 씨, 강 씨 등이 대장 격이고, 장 씨는 중간, 이 씨가 막내로 보인다. 정 씨 소식을 전해들은 일당은 이 소식을 돈을 벌 기회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들은 곧바로 대구로 떠나게 된다.
2022년 7월 11일 대구로 먼저 건너간 장 씨와 이 씨는 정 씨와 함께 피해자 A 씨를 함께 만나게 됐다. 장 씨가 나서 A 씨에게 ‘정 씨 인생을 어떻게 할 거냐. A 씨가 사기 치려고 정 씨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정 씨가 A 씨를 신고하면, A 씨 너도 처벌받는다’며 협박을 시작했다. 이 씨도 옆에서 ‘정 씨만 피해를 봤다. A 씨는 전세자금 사기대출로 교도소에 갈 것’이라며 A 씨를 겁줬다.
7월 12일 이들 일당은 겁을 먹은 A 씨를 차에 태워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면서 경남 창원을 거쳐 대전으로 이동해 김 씨, 강 씨와 합류했다. 이곳에서 이들은 A 씨가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로 기재한 서류를 만들어 금융기관에 제출했다. 2022년 7월 12일 당일 한 저축은행으로부터 A 씨 명의로 700만 원을 대출 받게 했고, 이 돈을 일당이 나눠 가졌다.
이 작업 대출 조직은 함께 잠을 자고 이번에는 전북 전주로 이동했다. 2022년 7월 14일 이들은 같은 방법으로 A 씨 명의로 300만 원을 대출 받게 한 뒤 그 돈 역시 일당이 나눠 가졌다. 정 씨는 “돈을 받게 해준다고 해서, 이들을 끌어들인 건 잘못이지만 나도 이런 사람들인 줄 몰랐다. 나도 폭력이 두려워 도망갈 수도 없어서 같이 따라다녔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건은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 7월 중순부터 이들 무리는 또 다른 피해자인 C 씨를 불러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C 씨는 A 씨 커플과 달리 직접적인 폭력을 당한 피해자다. 정 씨는 ‘폭력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부터 C 씨가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 조직원들은 C 씨를 폭행, 특수 상해한 사건으로도 기소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7월 23일 1시 대전에 있는 한 야산에서 이들 무리는 C 씨가 자신들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C 씨를 무릎 꿇렸다. 이때는 대장 격인 강 씨, 김 씨가 나섰다. 강 씨는 손바닥으로 C 씨 뺨을 수회 때렸고 김 씨는 깨진 유리병으로 C 씨 손등을 내리 찍어 C 씨 손등이 찢어지게 했다. 장 씨는 그 옆에 서서 위세를 가하며, 폭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8월 1일 오전 11시 경남 진주시 한 모텔에서 김 씨는 C 씨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데기(전기머리인두)로 C 씨 손가락을 강하게 집어 손가락에 화상을 입하기도 했다. C 씨는 최근 재판에서 증인 출석을 요청 받았지만 출석하지 않았다.
조직원들은 C 씨를 폭행하는 동시에 A 씨 커플을 향한 협박도 이어갔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 일당은 정 씨에게 ‘A 씨에게 합의금을 못해도 3000만 원, 최대 5000만 원까지 불러라’라고 했다. 2022년 8월 1일 이들은 A 씨와 A 씨 남자친구 B 씨에게 ‘변호사도 선임해야 하고, 이자도 내야 한다. 돈을 달라’며 위협했다. 이들은 남자친구 B 씨에게 문신을 보여주거나 약 40cm 회칼을 보여주는 방식 등으로 위협했다. 이들은 A 씨 커플 앞에서 C 씨를 칼로 찌를 듯이 위협하고 욕설까지 하며 계속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C 씨가 당하는 모습을 보며 A 씨 커플은 겁을 먹게 됐다. 이들 무리는 A 씨 커플을 끌고 진주, 대전 등을 돌아다니며 이번엔 B 씨 명의로 은행에서 1500만 원 대출을 신청했다. 이들은 이 돈을 합의금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렇게 받아낸 1500만 원을 전액 정 씨 계좌로 입금한 뒤 강 씨가 받아 나눠 가졌다. A 씨 유서에 따르면 “정 씨가 이렇게 받아낸 돈 중 10원도 못 썼다고 하지만, 먼저 허위 합의금 명목으로 정 씨 계좌로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받아 간 돈을 조직원들과 나눠 가졌다”고 적혀 있다. 정 씨는 “내 계좌를 거쳐갔지만, 한 푼도 나눠 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A 씨 유서에는 B 씨 말도 써 있다. B 씨는 “A 씨와 정 씨가 합의하지 않으면 A 씨가 징역 4~5년 간다며, 정 씨가 갑이라는 협박과 거짓말에 속았다. 그래서 A 씨를 위해 1500만 원 대출을 받았고 그 금액을 정 씨에게 이체했다. 그런 뒤 A 씨와 함께 변호사 상담을 하고서야 그게 허위 합의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적혀 있다.
1500만 원을 줬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2022년 8월 초 A 씨 커플에게 정 씨 과거 친구였던 또 다른 이 아무개 씨에게 연락이 오면서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씨는 정 씨가 1억 원 사기대출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돈을 돌려받으면 10%인 1000만 원을 달라고 제안했고, 정 씨가 승낙했다’고 한다. 이 씨는 당시 열아홉 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 씨는 이 사건 외에도 현재 공동공갈, 보험사기법 위반 등으로 재판 중인 상황이다.
이 씨는 8월 9일 A 씨에게 전화해 ‘그러니까 얼마 줄 수 있냐. 지금 계좌에 얼마 있냐. 500만 원 지금 이체 못 하냐. 그쪽 부모한테 손 못 벌리냐. 다음 주 금요일까지는 이체해 주셔야 할 것 같다. 시간 많이 줬다. 돈 생기는 대로 다 보내라. 전화번호 바꾸고 해 봤자 어차피 걸리니까 미련한 짓은 안 해주셨으면 한다’며 위협했다. 이 씨는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피해자 신체 등에 어떤 위해를 가할 것같이 행동하며 협박했다. 정 씨는 “이 씨가 대출사기 당한 사실을 어떻게 알고 연락이 왔는지 나도 모른다. 돈을 받아준다고 해서 수락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여러 차례에 걸친 협박에 못 이긴 A 씨 커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A 씨가 친구에게 따로 남긴 유서에 따르면 “나와 B 오빠 모두 정 씨에게 사기, 공갈 당했다. 정 씨 쪽 업자들에게 협박당해서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그래서 B 오빠와 긴 얘기 끝에 다 그만하기로 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A 씨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서 “정 씨와 정 씨 쪽 업자들이 B 오빠나 내게 협박하는 것들이 생각나 무섭고, 삶을 살아갈 의욕이 없어지고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끼니를 거르는 날들이 많아져 이런 선택을 하게 됐다. 절대 삶과 목숨을 쉽게 생각한 적 없다”고 썼다.
A 씨 친오빠는 “사실상 폭력집단에 말도 안 되는 협박을 당해 사기 대출에 이용되고 돈까지 빼앗긴 뒤 협박에 못 이겨 1명도 아니고 2명이나 동반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이렇게 묻히게 놔둘 수 없다. 재판에서 이들이 큰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라면서 분노를 표했다.
이어 그는 "피고인들은 각자 증인석에서 작업 대출인지 몰랐다며 서로 부인하고 있다. 증인석에서 한 말이 거짓일 시 위증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하는데도 거짓말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구속되지 않은 가해자들을 시내에서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은 재판이 진행 중이며, 곧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