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6관 스토리 ‘소설로 쓰면 욕먹을 설정’…아이스커피·카레 등 ‘승부 음식’ 뇌과학자도 인정
#소설 설정을 뛰어넘는 ‘진짜 천재’
“결국은 현실이 제일 재미있는 것인가.” 프로기사 후지이 소타가 활약할 때마다 화제가 되는 인기 소설이 있다. 라이트노벨(가벼운 소설) ‘용왕이 하는 일’은 일본에서 소위 대박이 난 작품이다. 10대 천재기사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누계 발행부수가 230만 부를 돌파했다. 인기에 힘입어 2018년에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용왕이 하는 일’ 1권이 발매된 것은 2015년으로, 후지이가 데뷔하기 약 1년 전이다. 주인공 쿠즈류 야이치는 15세에 프로기사로 데뷔, 16세 때 용왕전에서 우승해 ‘용왕’ 타이틀을 획득한다. 한편, 후지이는 2016년 역대 최연소 나이(14세 2개월)로 프로세계에 입문했다. 특히 데뷔전은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가토 히후미 9단(76)을 110수 만에 이겨 큰 화제를 모았다. 등장부터 소설을 뛰어넘는 ‘설정 과다 캐릭터’였던 것. 이후 공식 대국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29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무려 30년 만의 기록 경신이었다.
더욱이 후지이는 소설 전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타이틀을 따내기 시작한다. 일본 장기계의 모든 기록을 하나씩 갈아치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월 19일에는 8대 기전 중 하나인 ‘기왕전’에서 승리해 역대 최연소로 6관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용왕’ ‘기성’ ‘왕위’ ‘예왕’ ‘왕장’ ‘기왕’ 등 6개의 타이틀을 보유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자 ‘용왕이 하는 일’의 원작가 시라토리 시로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인공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나타났다”며 놀라워했다. “특히 후지이가 2021년 9월부터 반년 동안 타이틀을 3개나 획득했을 땐 작품 전개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트위터에는 “현실이 너무 강하다” “현실에 지지 마라” 등의 응원글이 올라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후지이가 일본 장기계 역사를 새로 쓴 3월 19일, 시라토리 작가는 “최연소 6관 탄생, 동일연도 내 일반기전 그랜드슬램 달성, 수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위업을 그것도 한 사람이 해낸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겠죠? 이런 스토리를 소설로 쓰면 지적당하겠죠?”라며 후지이의 천재적인 행보에 감탄했다.
흔히 ‘천재’라고 하면 일본에서는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와 장기 프로기사 후지이 소타, 이 둘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둘 다 7월생으로 어릴 때부터 주목을 한몸에 받았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가는 점도 비슷하다. 타고난 것도 크겠지만,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엄청난 노력을 거듭함으로써 재능을 더욱 꽃피웠다. 본업 외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는 점도 닮았다. 오타니는 술을 마시러 가는 것보다 야구연습이 더 좋다고 했으며, 후지이는 취미마저도 박보장기다.
두 사람은 2024년도부터 사용될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나란히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오타니 선수가 고교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적은 목표달성시트와 후지이 기사가 노력을 거듭해 톱기사가 된 경위가 도덕 교과서에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먹으면 승리하는 의외의 음식
소년 만화 주인공 같은 활약상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인미답의 행보에 일본 내에서는 ‘후지이 피버’라 불리는 사회현상까지 생겨났다. 스포츠종합지 ‘넘버’는 창간 40년 만에 처음으로 장기를 특집으로 다뤘는데, 2020년 9월 발행된 1010호 ‘후지이 소타와 장기 천재’는 발행부수가 23만 부를 기록했다. 이 잡지가 20만 부를 발행한 것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특집 이후 처음이다.
후지이가 중요한 대국 날 먹는 음식, 이른바 ‘쇼부메시(승부의 식사)’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치열한 두뇌 싸움에서 연승하는 비밀을 음식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 실제로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후지이의 식사 메뉴는 도움이 될 만한 요소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3월 19일 기왕전에서 주문한 메뉴다. 오전 간식은 대국이 열렸던 지역 닛코시의 명과와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점심은 지역 특산물 부추가 들어간 달걀요리(타마고토지)와 역시 지역 특산어 무지개송어로 만든 누름초밥을, 그리고 오후 간식은 오렌지주스와 아이스레몬티였다.
후지이는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빈도가 매우 높다. 올해 오전 간식을 먹은 대국은 16개인데, 그중 12개 대국에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뇌과학자 니시 쓰요시에 의하면 “커피에는 퇴행성 뇌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현지 특산물을 선호하는 식사 경향에도 뇌에 효과적인 요소가 있다. “현지 식재료는 신선도가 높아 치매 예방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산화된 음식을 먹으면 혈액도 산화되기 쉬워지며, 혈관이 녹슬 우려가 증가한다.
오후 간식으로 마신 것은 오렌지주스와 아이스레몬티, 둘 다 감귤류 음료였다. 이와 관련, 치매 전문의 엔도 히데토시는 “감귤류가 알츠하이머병으로부터 뇌를 보호한다”고 전했다. “감귤류에 들어있는 노빌레틴이라는 성분이 항산화, 항염증 작용을 해 기억장애를 막고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자몽은 혈압약과 함께 섭취하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후지이가 카레를 먹었을 때 승률이 높다는 점도 흥미롭다. 점심 메뉴로 카레를 선택했을 경우 후지이의 승률은 지금까지 20전 20승, 100%였다. 카레의 주원료인 강황은 뇌 속에 쌓인 해로운 단백질 물질을 제거해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싱가포르국립의대 연구에 따르면, 카레를 한 달에 한 번 이상 먹는 사람은 아예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절반가량 크게 낮았다.
메인메뉴가 치우침이 없는 것도 특징적이다. 징크스 때문에 승부 전 정해진 요리만 먹는 프로기사도 있지만, 후지이는 특별히 없다고 알려졌다. 한 인터뷰에서 후지이는 “대국 중 메인메뉴는 기분에 따라 먹고 싶은 것을 택한다”고 답했다. 뇌신경외과 의사인 오쿠무라 아유미는 “이 자세야말로 뇌에 가장 좋다”고 지적한다. 똑같은 것만 먹는 식생활이 되면 뇌의 자극도 줄어들기 때문. 오쿠무라 의사는 “궁금한 음식을 먹어보는 행위는 호기심을 자극해 뇌도 활성화시킨다”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