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벽 아파트’ 알선수재 구속, 성남시 로비 여부 주목…대장동 유동규도 대북송금 김성태도 변심 후 입 열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던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는 녹지였다. 2015년 성남시는 이 부지 용도를 녹지에서 준주거지로 4단계 상향조정했다. 당시 시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용도변경 이전까지 한국식품연구원 부지는 애물단지에 가까운 땅이었다. 전북 완주로 청사 이전이 예정된 상황에서 부지 매각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 부지는 8차례나 유찰됐을 정도로 인기 없는 땅이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2014년 4월 성남시에 행정지원 요청 공문을 보냈다. “사업성 확보를 위해 토지 용도를 녹지지역에서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바꾸는 관련 서류를 제출하니 적극적인 지원을 간곡히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종 일반주거지역은 용적률 상한 210%인 용도다.
2015년 2월 한국식품연구원은 11만 2861㎡ 규모 청사 부지를 민간사업자에 2187억 원에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2015년 4월 성남시는 토지 용도를 변경했다. 한국식품연구원이 요청한 2종 일반주거지역보다 용적률 상한이 2단계 높은 준주거지로 용도가 바뀌었다. 기존 용도였던 녹지 기준 4단계 상향 조정이라는 파격적인 조치가 이뤄진 셈이었다. 용도변경을 승인하는 서류에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대표 서명이 날인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토지는 용도마다 용적률 상한이 다르기 때문에, 용도에 따라 개발 방향성이 달라진다”면서 “부동산 사업 관점에서 보면 용적률은 수익률과 비례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백현동 용도변경 논란 중심에 서 있는 부지의 경우 아파트를 짓기 전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맹지’에 가까운 토지”라면서 “맹지가 알짜 아파트로 변신했을 경우 시행업자들의 수익률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고 했다.
이 부지엔 현재 ‘옹벽 아파트’라 불리는 1223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다. 시행사는 성남알앤디PFV다. 성남알앤디PFV 대주주는 아시아디벨로퍼다. 2015년 1월 아시아디벨로퍼는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에 출마할 때 선대본부장을 지냈던 김인섭 전 대표를 영입했다. 김 전 대표가 회사로 들어온 뒤인 2015년 4월 부지의 용도는 변경됐다. 시행사는 총 3142억 원 규모 수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10월 24일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의혹에 연루돼 있는 천화동인4호 실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백현동 택지개발 사업 인허가는 김인섭이 다 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인섭은 성남시에서 가장 영향력이 센 로비스트”라는 취지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인섭 전 대표는 2023년 4월 14일 구속됐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다. 김 전 대표는 2015년 9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백현동 개발사업 인·허가 관련 편의 알선 대가로 정 아무개 아시아디벨로퍼 대표로부터 77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2017년 10월엔 백현동 개발사업 공사장 식당(함바) 사업권을 수수한 혐의도 받는다. 법원은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김 전 대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대표 수사 핵심 쟁점은 알선수재 혐의가 성남시를 향한 로비와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핵심 측근인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이 김 전 대표 및 백현동 ‘옹벽 아파트’ 개발과 관련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김 전 대표가 백현동 용도변경 논란 키맨으로 부상한 셈이다.
그간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 양대 축을 구성하는 사건으론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이 꼽혔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선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정도로 수사가 상당 부분 진척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수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키맨의 변심’이었다.
2022년 9월 침묵하던 유동규 전 성남시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검찰의 대장동 의혹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유 전 본부장은 2023년 3월 9일 법정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유 전 본부장은 “10년 동안 이재명을 위해 산다고 스스로를 세뇌했다”면서 “(구속 이후) 위에서 보낸 변호사를 접견하면서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유 전 본부장은 “JMS 신도로 같이 있다가 탈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다음에 내가 그 입장이라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키맨은 김성태 전 회장이다. 쌍방울과 경기도 사이 어떤 연관성이 있었는지를 규명할 당사자인 까닭이다. 2023년 1월 김 전 회장은 태국에서 체포된 뒤 국내로 송환됐다. 송환 당시 김 전 회장은 “이재명 대표를 모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김 전 회장 역시 변심했다. 김 전 회장 변심으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은 더욱 구체화됐다. 송금 명목이 김 전 회장 입에서 나왔다. 김 전 회장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이재명 대표가 쌍방울과 관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 것에 대해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백현동 용도변경 논란이 제3의 사법리스크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제 스포트라이트는 김인섭 전 대표를 향하고 있다. 김 전 대표가 어떤 진술을 하는지에 따라 수사 방향성과 진행 속도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에서 키맨들이 변심한 계기는 모두 배신감이었다”면서 “배신감이 들기 시작한 뒤 ‘내가 지은 죄만 처벌 받겠다’는 취지로 의미 있는 진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이재명 대표나 정진상 전 실장 측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 김 전 대표 스탠스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제 막 구속 수사가 시작된 시점이기 때문에 김 전 대표가 어떤 콘셉트로 수사에 임할지 쉽게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김인섭 전 대표가 선임한 변호인에도 관심이 쏠린다. 4월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김 전 대표 영장실질심사에 입회한 변호인은 송영천 변호사다. 부산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낸 법관 출신이다. 송 변호사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둘째 형이기도 하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