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빼면 시체’ 그거 빼고 다 바꿔~
▲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취임은 삼성 신수종 사업·후계구도와 관련 깊다. 사진은 오른쪽부터 ‘2012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삼성가 3남매 이재용 사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부사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이건희 회장이 제2의 신경영에 준하는, 강도 높은 혁신을 주문했다. 최 부회장은 이 회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최적임자다.”
첫 번째 말은 지난 2010년 11월 19일 당시 삼성의 그룹 통괄조직인 미래전략실장으로 취임한 김순택 부회장의 취임 일성(一聲). 두 번째 멘트는 지난 7일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을 새로운 그룹 미래전략실장에 임명하며 삼성이 내놓은 발표문이다. 불과 1년 6개월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삼성 컨트롤타워 교체의 비밀을 증시를 통해 풀어봤다.
이번 미래전략실장 교체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삼성의 방향은 ‘신수종·신성장’ 사업을 육성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룹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김순택 전 실장도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다. 먼저 제일 잘나가는 삼성이 뭐가 아쉬워서 이럴까 싶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삼성그룹 상장사(3월 결산법인인 금융계열사는 제외) 매출 228조 9209억 원 가운데 삼성전자 매출은 164조 7000억 원으로 72%에 달한다. 순이익도 삼성전자가 13조 3592억 원으로 그룹 상장사 전체 순이익 16조 6453억 원의 80%가 넘는다.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약 300조 원인데, 이 가운데 삼성전자가 3분의 2인 200조 원이다.
별도 법인이지만 삼성SDI나 삼성전기 등과 같은 전자계열 회사들도 사실상 삼성전자의 실적에 따라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쯤 되면 ‘삼성그룹≒삼성전자’라 할 만하다. 삼성전자에 그룹 전체의 명운이 쏠려있다는 뜻인데, 거꾸로 자칫 삼성전자가 잘못되면 그룹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룹 수뇌부 입장에서는 극단적 쏠림을 완화시키기 위한 사업다각화가 절실한 이유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는 “삼성그룹에서 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에 높다 보니 다른 사업부문보다 전자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며 “다른 사업부문 입장에서는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잘 못 받는 셈이고,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보니 투자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이 커지는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만이 아닌, 삼성 회장인 이건희 회장도 당연히 이 같은 쏠림 현상을 꿰뚫어 보고 있다.
19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아내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선언했던 이건희 회장은 최근 그룹 신입사원에 전달한 영상메시지에서 “도전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풀이하면 신수종·신성장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다. 이런 점에서 최지성 신임 미래전략실장은 가장 적임자라는 평가다.
▲ 최지성 실장. |
최근 삼성이 추진하고 있는 신수종·신성장 사업은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제약 등이다. 이 가운데 기존 전자부문에 해당하는 LED는 세계 1위를 굳히며 성과를 내고 있지만, 나머지 비(非)전자부문에서는 이렇다 할 결과물이 아직 없다. 자동차용 전지는 LG화학에 밀리고 있고, 태양전지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수요기반이 취약한 상황이다. 바이오·제약 역시 바이오시밀러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아직 투자 초기단계다.
삼성 출신의 한 펀드매니저는 “재무통인 이학수 전 부회장, 전략통인 김순택 부회장 등 지금까지의 그룹 2인자들은 관리형 인물들이다. 현재 있는 조직과 사업을 잘 관리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는 데는 취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최지성 실장은 삼성그룹에서 20년여 만에 처음으로 등장한 사업 실무형 2인자다. 그동안 삼성 관련 주식은 이익을 꾸준히 내는 안전한 주식으로 평가 받았지만, 앞으로는 얼마나 성장잠재력을 실현하느냐에 투자 포인트를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조언했다.
관련 종목은 삼성정밀화학, 제일모직 등의 화학계열과 삼성SDI, 삼성전기 등 전자부품계열 등이다. 바이오는 삼성에버랜드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출자했지만, 비상장사여서 당장 투자할 길은 없다.
최지성 실장의 기용은 삼성의 후계구도와도 관련이 있고 이는 다시 증시와 연결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정도의 그룹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물려받으려면 우호지분과 기관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뭔가 경영능력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관리형 2인자를 두던 삼성이 사업형 2인자로 전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인 듯싶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도 “이제 후계구도는 어느 정도 된 만큼 후계자들의 사업성과를 만들어주기 위해 실무형들에게 그룹 대권을 맡긴 듯하다”고 풀이했다.
한편 최지성 실장의 진두지휘로 신수종사업이 성공할 경우 의외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사장은 이건희 회장 자녀 가운데 유일하게 기업단위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이 사장이 대주주인 삼성석유화학은 태양전지, 최고경영자인 삼성에버랜드는 바이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직접적으로 경영하는 호텔신라의 경우 공항면세점 사업을 해외로 확장하고 있는데 이어 최근에는 서울 호텔의 전면 리모델링을 결정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