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 전액 손상차손 처리하고 공항면세점 집중…HDC, 매년 임차료 수십억 받아 사업 포기 어려울 듯
정부가 올해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를 선언하자 면세업계에서는 실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객이 줄면서 면세업계 전반적으로 실적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세업계의 올해 1분기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1분기 4조 3000억 원에서 올해 1분기 3조 1000억 원으로 오히려 26% 감소했다. 중국 따이공(보따리상)이 거래를 크게 줄인 탓이다.
이런 가운데 HDC신라면세점이 희망퇴직을 추진하고 있다. HDC신라면세점 노사협의회는 최근 사내망을 통해 “올해 상반기 중 정리해고를 포함한 감원조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 희망퇴직 등 해고 최소화 방안을 협의했다”며 “세부 시행방안 등은 노사 간 성실한 협의를 통해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HDC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아직 일정이나 규모가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HDC신라면세점의 희망퇴직은 인건비 절감 등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HDC신라면세점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593.81%에 달했다. 부채는 3000억 원이 넘지만 자본총액은 123억 원에 불과했다. 수익성도 좋지 않았다. HDC신라면세점은 2021년과 2022년 각각 380억 원, 29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유통업계에서는 국내 면세산업이 단기간 내 실적을 개선할 가능성도 낮게 본다. 무엇보다 국제정세로 인해 중국 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는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히면서 중국 내 반한감정이 심화되고 있다.
류연주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면세산업은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전환에도 불구하고 매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2022년 11월까지 강도 높은 방역정책을 지속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했다”며 “2022년 12월부터 중국이 빠른 속도로 방역조치를 완화하고 포스트 코로나19 전환에 합류했지만 항공편 정상화 소요 기간 등을 감안하면 2023년 하반기부터 정상화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HDC신라면세점의 경우 공항이 아닌 시내에 위치하고 있어 실적 개선이 특히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공항면세점의 경우 대부분의 해외 관광객이 마주칠 수밖에 없지만 시내면세점은 그렇지 않다. HDC신라면세점과 같은 시기 시내 면세점에 진출했던 갤러리아면세점63이나 두타면세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실적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HDC신라면세점은 인근에 넓은 주차장이 있고, 교통도 편리해 상대적으로 선방했지만 공항면세점에 비하면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HDC신라면세점은 모회사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호텔신라와 HDC(주)가 현재 HDC신라면세점 지분을 50%씩 갖고 있다. 호텔신라와 HDC(주)가 보유한 지분이 같으므로 현재는 두 회사가 각각 추천한 인사가 공동대표로서 HDC신라면세점을 이끌고 있다. 김대중 HDC신라면세점 공동대표는 HDC현대산업개발 수주부문 부문장 출신이고, 유찬 HDC신라면세점 공동대표는 신라면세점 전략영업팀장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HDC신라면세점의 현재 가치는 호텔신라와 HDC(주)에게 각기 다르다.
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호텔신라는 HDC신라면세점에 투자한 금액을 전액 손상차손 처리했다. 손상차손이란 실제 가치가 장부 가치보다 현저히 하락했을 때 재무제표에 손실로 반영하는 회계처리를 뜻한다. 이와 관련, 호텔신라 관계자는 “법인의 의지에 따라 손상차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계상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HDC(주)도 HDC신라면세점에 투자한 금액 일부를 손상차손 처리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호텔신라처럼 전액을 손상차손 처리하지는 않았고, 여전히 장부가액 기준 약 90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재계에서는 HDC(주)가 HDC신라면세점을 전액 손상차손 처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임차료 등의 수익이 있어 이에 대한 가치가 인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HDC신라면세점에 대한 가치가 호텔신라보다 HDC(주)에게 더 크게 반영된다는 것이다.
HDC그룹 측은 실적과 무관하게 HDC신라면세점으로부터 임차료 등의 명목으로 매년 46억 원가량을 받고 있다. 임차료를 받는 주체는 HDC아이파크몰이다. HDC신라면세점이 HDC그룹 소유의 용산 아이파크몰에 입주해있기 때문이다. 건설업 위주의 HDC그룹이 HDC신라면세점을 통해 유통업 노하우를 익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HDC그룹은 지난해 12월 서울시 구로구에 ‘아이파크몰 고척점’을 개장하는 등 유통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HDC(주)가 HDC신라면세점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손해라고 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반면 호텔신라는 HDC신라면세점보다 더 큰 숙제를 안고 있다. 관세청은 인천국제공항 출국점 면세점 신규 사업자로 호텔신라와 신세계DF, 현대백화점면세점 등을 선정했다. 면세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은 이번 입찰에서 탈락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계기로 호텔신라가 롯데면세점을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지난 2월 ‘한국방문의 해 위원장’에 선임되면서 해외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박찬솔 SK증권 연구원은 “호텔신라가 공항 면세 사업자에 최종 선정되면서 외형 확장을 통해서 장기적인 사업 우위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 호텔신라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501억 원의 적자를 거두는 등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호텔신라의 부채비율도 지난해 말 기준 444.39%에 달했다. 호텔신라는 올해 1분기 532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호텔신라가 2019년 수준의 실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호텔신라의 HDC신라면세점 지원은 후순위에 놓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호텔신라와 HDC(주)는 모두 HDC신라면세점의 재무 위기를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호텔신라와 HDC그룹 관계자 모두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