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양숙 여사는 어디서 그 돈을…’
▲ 노정연 씨의 13억 원 출처 조사는 민감한 ‘노무현 비자금’ 문제를 건들 수 있어 검찰의 고민도 크다. 사진공동취재단 |
특히 13억 원이 허드슨클럽 구매 자금임을 시인한 정연 씨가 그 돈을 어머니인 권양숙 여사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과연 재미교포 형제의 폭로에서 촉발된 ‘13억 돈 상자 사건’이 봉인된 ‘노무현 비자금’을 건드리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그간 검찰은 2009년 1월 미국 뉴저지 소재 허드슨클럽 주인인 경연희 씨에게 전달된 13억 원과 관련된 수사를 진행해왔다. 경 씨에게 전달된 13억 원은 정연 씨가 2007년 구입한 허드슨클럽 중도금이며, 기상천외한 환치기 등의 수법을 거쳐 불법 송금됐다는 댄 리 씨 형제의 폭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보수단체의 의뢰로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당시 야권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기획수사’라며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정치권과 여론을 의식한 듯 검찰은 일찌감치 ‘노무현 일가 비자금’ 수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의 칼끝이 결국은 노무현 일가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 미국 허드슨클럽 전경. 연합뉴스 |
▲ 문제의 13억 돈상자의 일부. |
이런 와중에 키맨인 경 씨가 “2009년 초 정연 씨로부터 아파트 매매 대금의 일부로 13억 원을 송금받았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함으로써 사건은 일대 전환을 맞게 되고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경 씨의 소환 거부와 정치권의 반발 등으로 인해 답보상태를 보였던 수사는 경 씨의 진술로 인해 사실상 재점화됐고, 검찰은 그간 정연 씨에 대한 조사 여부를 저울질해왔다. 경 씨의 주장대로 13억 원을 정연 씨에게 받았다면 돈의 출처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난 6월 25일 검찰이 정연 씨와 권 여사로부터 서면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받으면서 이 사건은 정치권을 긴장시키는 뇌관으로 재부상했다. 사건은 검찰의 의지에 따라 가파르게 전개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정연 씨는 아파트 원주인인 경 씨에게 보낸 중도금 13억 원을 어머니인 권 여사에게서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 여사는 정연 씨에게 돈을 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자금의 원출처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혹의 핵심은 7개의 돈상자로 만들어져 밀반출된 13억 원이 어디서 나왔는지의 여부다. 2007~2008년 노 전 대통령 가족에게 640만 달러를 건넸던 박연차 전 태광그룹 회장도 13억 원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권 여사 또한 13억 원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어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의혹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내역과 맞물리면서 더욱 증폭됐다. 2008년 4월 15일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관보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재산은 9억 7224만 원이었다. 퇴임 시 전체 재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토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산 9-1번지 등을 포함해 임야 3필지(신고가액 1356만 원)였으며 10억 6155만2000원 상당의 사저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SM5(444만 원) 에쿠스(6737만 원) 체어맨(1390만 원) 등 3대였다. 예금은 본인과 가족을 포함해 모두 2억 7356여만 원이었고 채무 4억6700만 원, 본인 명의 한화콘도 회원권(485만 원) 등으로 파악됐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 한 일간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의 신고가액은 10억 6155만 2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의 경우 직전 신고일인 2007년 1월에는 본인과 배우자, 장남과 손녀 등의 예금을 합쳐 모두 6억 2126만 9000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으나, 이번에는 3억 4770만 1000원이 줄어든 2억 7356만 8000원으로 신고했다.”
이러한 재산 신고 내역이 사실이라면 2008년 4월 당시 노무현 일가의 예금액은 2억 7000여만 원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의혹은 권 여사가 정연 씨에게 아파트 자금 일부로 건넨 13억 원이 어디서 나온 돈인가를 규명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및 허드슨클럽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그의 자살로 종결됐지만 가족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은 시효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사건이 어디까지 확전될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건 추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검찰도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정연 씨가 13억 원을 불법 송금한 사실이 확인되면 죄의 경중과 무관하게 외국환관리법 위반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연 씨의 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바뀌면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자금출처에 대한 조사가 어느 범위까지 이뤄질지 여부다. 일각에서는 검찰 수뇌부의 마음먹기에 따라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외화 밀반출 혐의와 관련된 사항들을 확인하는 범위에서 수사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자칫하면 실체(13억 원)는 있는데 출처는 없는 전대미문의 희한한 사건으로 남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수사방향 및 범위를 둘러싸고 검찰 안팎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검찰의 남모를 고민도 깊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