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사가 원장 대리해 단체협약 교섭 나서자 공인노무사회 “노무사 고유 업무 침범” 고발
#"보조교사 발령과 퇴사 중 택하라"
2023년 4월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가 한 통 접수됐다. 경기도 광주의 한 아파트 단지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진정인은 "원장의 명확한 이유나 설명도 없이 보직 변경과 퇴사 압박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곧 진상규명에 착수할 계획이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A 교사는 2019년부터 해당 어린이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매일 오전 7시 30분 아이들 등원을 시작으로 오후 6시쯤 일을 마쳤다. 다만 각종 행사 준비와 서류 업무 등으로 늦게 퇴근하는 상황이 잦았다. 이에 시간 외 수당 등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일과 중 교사들이 번갈아 쉴 수 있도록 휴게시간도 요구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밖에 한 해 연차 계획을 연초에 일괄 제출해야 하는 일 등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A 교사는 문제 개선을 위해 2022년 초 노조에 가입했다. 그러자 원장의 압박이 더 심해졌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모든 교사들을 불러 모아 "A 교사가 노조에 가입했다"며 관련 서류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책상에 올려두고 다른 원장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도 사실을 알렸다. 노조 가입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 정보'로 분류돼 당사자 동의 없이는 공개가 금지된다.
이후 A 교사는 담임 직책에서 돌연 보조교사로 보직이 변경됐고 퇴사 종용까지 받았다. 이에 수차례 원장과 면담하며 구체적인 이유를 물었으나 납득할 만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가장 자주 들은 말은 "다른 교사들도 당신과 같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A 교사의 스트레스는 극에 다다랐다. 소화 기능에 문제가 생겨 구토를 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원장과 면담 중에도 경련과 호흡곤란 등을 일으키곤 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는 시도를 두 번씩이나 했다.
그럼에도 상황은 쳇바퀴처럼 돌았다. '보조교사 발령과 퇴사 중 선택하라'는 원장의 지시와 '구체적인 이유를 알려 달라'는 A 교사 요구가 수개월여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원장은 "선생님이 원장이라면 노조 가입했다고 뭐가 날아오는데 내가 가만히 있어야 되겠냐"며 "노조에 가입했다는 건 선생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행동한 거 아니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결국 노조가 사안을 접하고 2022년 7월 단체협약에 나섰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가 직접 어린이집을 찾아 교섭을 시도했다. 휴게시간 보장과 부당노동 행위에 대한 관련자 처벌 규정 등을 노사협약에 명시하는 게 뼈대였다.
#"어린 것이 건방지게" 막장 교섭 후폭풍
문제는 원장이 교섭 대리인으로 행정사를 내세우며 불거졌다. '학부모들의 폭언 등 악성 민원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행정사는 "어떤 경우에도 교사가 어린이집을 이탈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조 측은 "노동자의 처신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보호조치를 논의하는 자리"라고 맞섰다. 그러다 행정사는 "어린 것이 건방지다"면서 비속어로 고성을 지르고 단체협약 거부를 선언했다.
해당 사건이 한국공인노무사회까지 흘러 들어가면서 일이 커졌다. 단체협약 당시 녹취록 등이 전해지며 공인노무사회가 집단 대응에 나섰다.
2022년 12월 행정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이어 올해 4월에는 원장까지 더해 노동부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공세를 높이고 있다. 공인노무사법과 노동조합법 및 변호사법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행정사가 노무사의 고유 업무를 침범했으며, 원장은 비자격자를 동원해 노조 활동을 방해했다는 게 골자다.
한국공인노무사회 관계자는 "행정사의 업무 범위가 모호한 측면이 있어 헷갈릴 수도 있을 테지만 너무 버젓이 벌어진 행위였다"며 "어느 법을 봐도 행정사가 단체협약에 나설 수 있다고 명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단체교섭이라도 잘 진행됐더라면 넘어갈 수도 있었다"면서 "노동법에 관한 지식과 소양이 없는 대리인이 나선 탓에 교사의 노동권리가 더욱 심하게 침해됐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행정사도 거세게 맞설 의지를 내비쳐 이목이 쏠린다. 그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심한 표현으로 고성을 지른 점은 실수였음을 인정한다"면서도 "노동부 등 여러 기관에 유권해석을 문의한 결과 행정사도 단체협약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자세한 논리는 노무사들에게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밝힐 수 없다"면서 "만약 기소되더라도 행정사 역시 단체협약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판결문에 분명히 명시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사가 행정사에 유리하게 흘러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른 행정사들 일부가 힘을 실어주고 있으나 정작 대한행정사회는 노무사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행정사회 관계자는 "단체협약에서 행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행정 관련 상담이나 문서 작성 정도"라며 "협약 대리로 나서는 일은 노무사 고유의 권한"이라고 밝혔다. 특히 "행정사가 어린이집 측 대리인으로 나선 사례는 개인의 일탈로 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수차례 반복된 노무사와 행정사 갈등
이번 사안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는 노무사와 행정사의 갈등이 수차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으로 부딪힌 사례는 처음이지만, 2021년에는 임금체불 사건 등을 수행한 행정사가 공인노무사법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올해 1월에는 산업재해 업무를 대행하다 노무사에 고발된 행정사가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그 외에도 서류 작업을 수반하는 노동 관련 업무 등에서 노무사와 행정사 집단은 크고 작은 대립을 반복해 왔다.
이번 어린이집 사건에서는 노조법 제29조 3항이 쟁점으로 꼽힌다. 노사 교섭 및 체결 권한이 '노조와 사용자 등의 권한을 위임받은 자'에 있다고 명시했다. 행정사가 단체협약에 나설 수 있다는 주요 근거로 활용 가능한 항목이다. 반면 공인노무사회는 노동부의 2016년 행정해석 등에 따라 교섭 권한이 '노사 관계를 잘 이해하는 자'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행정사가 단체교섭 등을 대리할 수 있다는 내용은 행정사법에도 없다고 부각한다.
노무사회는 법 개정까지 촉구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노무사법 제27조 제1항 단서를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비자격자가 노무사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업무의 제한을 규정한 게 핵심이다. 하지만 행정사들이 최근까지도 국회에서 개정 반대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결사항전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통과를 예단하긴 힘든 상황이다.
한편 A 교사는 행정사로부터 소송을 당해 시름이 더해졌다. 단체협약 녹취록 등을 노무사회에 공유했다는 등의 이유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 놓였다. 원장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조만간 노동부에 출석해 어떤 부분이 어떻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라며 "있는 사실 그대로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