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총재였던 나 때문에 감독 안 된다는 미안함 존재…쉽지 않은 일 해내 대견하다”
김영기 전 총재는 아들 김상식 감독의 통합우승 달성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는 '일요신문i'와 통화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놨다"고 표현했다. 레전드의 아들로서 따라다녔던 꼬리표를 극복하고 성과를 내 기쁘다는 의미였다. 김 전 총재는 "내가 얼마 전까지 KBL 총재를 했다. 그때 김상식이 쉴 때인데 어느 구단에서든 데려다 쓰기 꺼리지 않았을까 싶다. 아들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 우승으로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배재고-고려대-기업은행에서 선수로 활약한 김영기 전 총재는 태극마크를 달고도 10여 년간 뛰었다. 1956 멜버른, 1964 도쿄 올림픽에 출전해 한국 농구의 존재감을 알렸다. 국가대표팀 감독도 지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1969년 농구계의 또 다른 전설 신동파가 영웅으로 등극한 ABC대회(현 아시아컵)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듬해 1970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사상 최초 금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김영기 전 총재가 남긴 족적은 코트 밖에서도 이어졌다. 대한농구협회 임원,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등을 지내며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등에 기여했다. 농구대잔치가 전부던 시절, 프로농구 출범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인물도 김영기 전 총재다.
김영기 전 총재는 요즘 농구팬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인물이다. 김 전 총재에게 본인 자랑을 간략하게나마 부탁을 하자 "1964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팀 성적이 좋지 못했다(9전 전패로 16개 국가 중 최하위). 지금보다 국제무대에 나가서 경쟁이 어렵던 시기다. 팀이 져서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내가 올림픽 전체 개인 득점 2위를 했다"고 말했다. 국제농구연맹 기록에 따르면 김영기 전 총재는 당시 올림픽 9경기에서 174 득점으로 경기당 평균 19.3점을 기록, 히카르도 두아르테(페루, 23.6점)에 이어 득점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영기 전 총재는 김상식 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농구 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나는 농구로 덕을 많이 본 사람이다. 올림픽에 출전하고 아시아에서 우승하는 등 선수, 지도자로 성공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이 많다"며 "아들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반대했다. 그래도 끝까지 한다기에 할 수 없이 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시작해서 시기가 늦었는데도 곧잘 하더라"라며 웃었다.
선수 김상식은 인정하지만, 지도자 김상식에 대해서는 "빛을 못봤다"고 평가했다. 김영기 전 총재는 그 원인이 자신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는 "내가 계속 체육회나 농구계에 남아 있다 보니 꼬리표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상식의 지도자 생활에 조금은 방해가 되지 않았나 싶다. 구단들로선 김영기 아들 김상식이 불편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KGC의 우승은 이전까지 쌓였던 김영기 전 총재의 무거운 마음을 한 번에 씻어낸 계기가 됐다. 그는 "10년 넘게 꾸준히 감독을 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을 한 시즌에 해냈다(웃음)"며 "한 번도 선두자리를 내주지 않고 정규리그를 우승했고 챔프전에다 국제대회까지 우승했다. 쉽지 않은 일인데 너무 대견하다"고 했다. 또 "농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오랜만에 참 재밌는 경기를 펼쳤다는 점도 칭찬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상식 감독은 이번 시즌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질타보다 조언을 건네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성장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김영기 전 총재는 자신만의 견해를 내놨다.
"이전까지는 몰랐는데 아들이 농구부 생활을 시작하면서 좀 차분한 성격으로 변해간 것 같다. 그런데 성격과 지도 스타일은 다른 것이다. 내가 선수로 뛸 적엔 그러지 않았는데 아들 시대에는 농구부가 엄격했다.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영향을 받았다. 이후 아들이 미국 연수를 자주 다녀왔는데 거기서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며 영감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외국인 선수와도 원활하게 소통하지 않았나 싶다."
김상식 감독은 최근 소속 선수의 입대 현장까지 직접 찾아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팀 내 '관계'를 중요시하는 운영을 펼치는 그의 가족 내 관계는 어떨까. 김영기 전 총재는 "효자다. 이제는 걔가 버니까 점심도 사주고 한다. 조만간 식사하러 올 것이다"라며 흐뭇해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