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지·주식시세 조종 등 다양화…‘스마트폰 금융 서비스 시대’ 개인정보 유출 탓 각본도 정교해져
# 금융범죄 타깃 기업인→서민
금융범죄의 역사는 금융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공존했다. 금융기술이 발달하고 경제 규모가 확장되면서 금융범죄도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대형 금융범죄 시초는 1982년에 발생한 장영자 사건이 꼽힌다.
당시 범행 대상은 일반 투자자가 아니었다. 장영자의 뒷배경도 상당했다. 장영자의 남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이자 중앙정보부의 2인자까지 오른 이철희다. 그의 친언니는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 씨의 처삼촌과 결혼했다.
장영자는 ‘대화산업’이란 사무실을 통해 사채업을 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회사에 원금의 3배에서 최대 9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고 자금을 빌려줬다. 당시 관례상 약속어음은 시장에 유통시키지 않는 보관용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자금을 융통하려는 사장들은 별 의심 없이 약속어음을 발행해줬다.
하지만 장영자는 이렇게 받은 약속어음을 사채시장에 유통시켰다. 당시 발행된 어음은 7111억 원에 달했다. 당시 18평 기준 강남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000만 원을 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 가치 수조 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하지만 중간에 어음을 막지 못하는 회사들이 나타나자 약속어음을 발행한 회사들은 연쇄적으로 부도를 맞았다. 이 일로 재판에 넘겨져 15년형을 받은 장영자는 9년 10개월 만에 석방됐다.
장영자 사건은 엄청난 배경을 앞세워 기업인을 타깃으로 한 금융범죄였다. 그러나 오늘날 대형 금융범죄는 거액의 투자자뿐 아니라 일반 서민으로 확대됐다. 딱히 유력한 배경도 없는 금융범죄자들이 부자가 되고 싶은 서민의 꿈을 자극해 투자금이라는 미명하에 돈을 끌어모은다. 수법과 범죄규모가 다양해지고 있다.
서민들을 울리는 대표적인 금융범죄 중 하나는 폰지사기다. 폰지사기범은 서민들의 투자금을 돌려막는 방식으로 자금을 모은다. 어떤 사업 아이템에 자금을 투자하면 거기서 발생한 수익이나 투자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방식으로 자금을 유치한다. 예상 수익률과 이자는 투자자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폰지사기범들이 내세우는 사업 아이템은 대부분 실체가 불분명하다. 폰지사기범들은 애초에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업 아이템으로 큰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폰지사기범은 자금을 모으는 초기엔 피해자들에게 수익이 발생했다며 약속한 대로 수익금이나 이자를 지급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받은 돈은 사업 수익이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에게 끌어모은 투자금이다. 폰지사기범들은 초기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이후 들어온 투자자들에게 지급해 수익이 나고 있는 것처럼 속여 입소문이 나게 한다. '카드 돌려막기'를 연상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진행해 계획한 만큼 자금이 모이면 폰지사기범은 자금을 세탁해 사라지고 피해자들만 무더기 양산된다.
대표적인 사건이 2004년 발생한 조희팔 사기사건이다. 당시 조희팔은 회사를 설립하고 의료기기를 빌려주는 사업으로 고수익이 가능하다며 피해자들을 끌어모았다. 일반 투자자들은 이자나 수익금을 공유하겠다는 꾐에 빠져들었다. 투자금을 유치하던 시기에는 사업 수익이 났다며 피해자들에게 약속한 이자 등을 지급했지만, 이 돈은 대부분 다른 피해자들의 투자금이었다. 2008년 10월 조희팔은 수사 당국의 수배를 받았지만 중국으로 밀항한 후 사망했다. 조희팔의 사망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혹이 나왔지만 법적으로 사망 결론이 났다. 조희팔 사기사건의 피해액은 4조~5조 원으로 추산되며 피해자는 3만 명에 달했다. 서민들의 꿈이 담긴 투자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같은 폰지사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민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 사업 아이템은 사기꾼들의 상상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최근에는 가상화폐를 이용한 폰지사기가 극성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상화폐 관련 폰지사기는 2018년 62건에서 2020년 333건으로 4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금융범죄인 주식 시세조종의 진화는 더 빠르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 시세조종은 조직화·집단화 현상을 보였는데,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보급되면서 누구나 시세조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주식 동호회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활성화도 한몫을 했다”고 분석했다. HTS은 집에서 컴퓨터로 주식을 매매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과거 증권사에 전화하거나 직접 방문해 매매 주문을 넣는 방식에서 훨씬 간편해졌다.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 보급으로 HTS보다 더욱 쉽게 주식매매가 가능한 MTS(스마트폰을 이용한 주식 매매)가 보편화되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주체가 전문가뿐 아니라 개인으로 확대되면서 개인도 주가조작을 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일반투자자 A 씨는 2011년 ‘대선 후보와 주가조작 대상 회사 대표와 등산 친구’라는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게재한 후 주가가 올라 200만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비슷한 유형의 주가조작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도 서민을 노리고 있다. 2006년 급증하기 시작한 보이스피싱은 초기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 경찰, 금융당국 기관 직원이라고 속이고 금품 등을 계좌이체하는 수법이 사용됐다. 피해자를 속이기 위한 각본도 비교적 허술했다. 하지만 정보기기 발달로 지금은 스마트폰 메신저, 이메일, 전화 등 피해자와 접촉할 수 있는 모든 통신수단이 활용된다. 개인정보 유출 탓에 피해자를 속이기 위한 각본도 더 정교해지고 있다.
# 누구나 피해자 될 수 있어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발생건수와 발생액은 각각 2만 1800건, 54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29.5%, 29.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이스피싱 피해는 차츰 줄어들고 있지만, 가상화폐를 통한 보이스피싱 규모는 매년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띈다. 실제 가상화폐 관련 보이스피싱 피해금 규모는 2019년 82억 6000억 원, 2020년 163억 6000억 원, 2022년 199억 6000만 원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가상화폐로 전환될 경우 자금 추적과 계좌동결이 어려워 피해금 보전이 힘들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가상자산으로 전환돼 해외로 송금될 경우 자금추적이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서민들을 노리는 금융범죄는 휴대폰을 통해 모든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지능화하고 있다”며 “발전하는 기술을 이용해 교묘해지는 금융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선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