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 같은 사행성 게임 잣대로 내년 1월부터 규제…베팅 목적 회원 5% 이내, 바둑 문화 위축될까 우려 나와
인터넷 바둑에 베팅을 도입한 것은 일종의 ‘묘수’였다. 대국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힘껏 싸웠고, 지켜보는 갤러리들은 베팅을 통해 고수들의 승부를 자신의 바둑인 것처럼 손에 땀을 쥐어가며 즐겼다. 덕분에 인터넷 바둑 사이트들은 두는 사람, 응원하는 사람으로 불야성을 이뤘다. 대형 게임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넉넉지 못한 재정에 허덕이던 바둑 사이트들의 수익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뿐 아니다. 인터넷 바둑의 활성화는 대한바둑협회나 한국기원이 펼치는 바둑 보급 효과는 물론 정보 이용에 따른 나름의 수익까지 얻게 했다. 더불어 바둑방송과 바둑 유튜브의 확장에도 기여하고 있으니 넓게 보면 바둑 생태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제 인터넷 바둑을 빼고선 바둑세계를 논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 난데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인터넷 바둑을 고스톱, 포커와 같은 사행성 게임 반열에 놓고 이들과 동일한 잣대로 규제에 나선 것이다. 향후 추이에 따라서는 온라인 대국이나 관전 같은 인터넷 바둑서비스가 크게 위축되거나, 최악의 경우 서비스가 중단 또는 폐지될 상황이라고 한다. 바둑 생태계가 자칫 붕괴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난해 9월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일부 사용자들의 바둑 관련 베팅 민원이 지속되고 바둑 사이트에서 제3자 베팅이 이루어지므로 인터넷 바둑이 고스톱과 포커에 준하는 게임법 시행령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아직은 바둑이 사행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진 않았으나, ‘배당과 베팅’을 모사한 게임이라는 웹보드 시행령의 문구 해석상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시행령은 총 7개의 규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바둑을 사행성이 강한 고스톱과 카드게임과 같은 잣대로 다루고 있고 세부 내용도 매우 촘촘하다. 이에 바둑업체들은 “바둑의 사행성이 시행령에 포함될 만큼 심하지 않고, 고스톱과 포커에 적용하는 시행령을 일률적으로 바둑에 적용하기에는 게임의 특성상 매우 힘들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바둑은 게임적 요소뿐 아니라 스포츠, 문화, 예술, 교양, 교육 등 복합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국가가 특별히 ‘바둑진흥법’을 제정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 그리고 바둑 사이트들은 갑작스런 정부의 규제에 매우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후 게임위원회와 6개 인터넷 업체들이 논의를 지속했으나 게임위원회는 끝내 권고 사항을 변경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23년 5월부터 6개 인터넷업체는 큰 폭의 매출 감소를 감수하면서 시행령의 핵심 항목인 월 70만 원 한도와 1회 베팅 한도를 정해 자율규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자율규제를 넘어서 시행령의 모든 항목을 적용해야 하는 법적규제가 내년 1월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적규제라는 극약 처방을 받게 되면 인터넷 바둑서비스는 폐지 수준의 위축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수익 창출에 타격을 입은 바둑은 대형 게임 포털사이트에서 존재감이 희박해질 것이고, 사이버오로나 타이젬 같은 바둑전문 사이트는 존립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릴 수도 있다.
최근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세계바둑대회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바둑전문 사이트가 제공하는 인터넷대국 환경과 바둑 베팅의 비중이 컸고, 한국 바둑계도 그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할 수 있다.
바둑 베팅은 2002년 타이젬(동양온라인)이 최초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6개 온라인 바둑업체(넷마블·네오위즈·사이버오로·엠게임·타이젬·한게임) 서비스하고 있고 온라인 바둑은 대한바둑협회·한국기원 등의 기관과 바둑TV·K바둑 등 바둑 방송사도 연계서비스를 하며 상생하는 바둑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사이버오로의 정용진 전무는 “인터넷 바둑 베팅에 사행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사행성을 잡겠다고 법적규제를 받게 된다면 사행성이라는 빈대를 잡겠다고 바둑이라는 초가삼간을 한 번에 불태우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한번 무너진 생태계는 규제가 없어진다 해도 복원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규제 기관이 필요한 범위에서 적절하게 규제를 적용하고 업체가 자발적으로 사행화 방지를 위해 노력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혹시라도 이번 규제 조치가 ‘교각살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인터넷 바둑은 사용자가 베팅 행위를 목적으로 접속하는 고스톱, 포커, 스포츠 베팅과 달리 승부 예측을 1회 이상 하는 회원이 전체 사용자의 2.5~5% 이내다.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베팅이 아닌 대국, 관전, 채팅 등에 보다 집중돼 있다.
한국바둑의 실력은 현재 세계 최강 수준이다. 또 ‘더 글로리’ ‘미생’ ‘응답하라1988’ ‘승부’ ‘신의 한 수’ 등 각종 영화나 드라마의 메인 소재로 한류 열풍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지나친 정부의 규제가 세계에 통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사장하는 것은 아닌지 극히 우려스럽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