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화가로 외길, 현재 인사동서 개인전…“팬데믹으로 붕괴된 사람들에게 치유 메시지 전해”
강리나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배우 출신 작가와는 결이 다르다. 어릴 때부터 예술가의 길을 걸었고 선화예고,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미술 엘리트로 볼 수 있다. 강리나는 우연한 기회로 연예계 생활을 했지만, 본업으로 돌아가 약 30년 가까운 세월을 외길만 걸어왔다.
5월 30일 강리나를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삶의 궤적을 들어봤다. 강리나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죽어간 사람들, 삶이 무너진 사람을 보면서 하트를 주제로 삼았다”면서 “절대자가 주는 무한한 사랑, 보듬어 주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모델로 데뷔해 영화배우로 활동했다. 상도 받았고 흥행도 성공했던 영화배우 자리를 은퇴하고 미술계로 돌아갔다.
“모델로 일할 때는 재밌고 행복했다. 반면 영화판은 너무 거칠고, 욕설도 난무했다. 촬영 현장 환경도 모델 일 할 때 비해 영화계가 열악했다. 영화를 안하고 싶었을 때 주변에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 하기 싫은 게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를 찍다 보니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가족 문제로 지치게 됐고 영화계를 떠나 본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만 공부했으니, 다시 미술계로 돌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큰돈을 벌 수 있는 영화배우 은퇴가 아쉽지는 않았나.
“좋은 작품, 좋은 배역을 내가 뭐라고 다 마다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건 있다. 지금은 배우가 노래도 부르고, 영화도 찍고, 그림도 그릴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 특히 미술계로 돌아왔을 때 ‘영화 찍던 사람이 왜 미술 작품 활동을 하려고 하느냐’는 시선도 있어서 더욱 독실하게 외길만 걷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꽤 오래 설치 미술을 주로 했다. 이유가 뭔가.
“영화배우로 일하면서 영화 미술 감독을 사실상 병행한 경우도 있었다. 감독이 ‘너 홍대 미대 나왔다며?’라면서 중요한 신의 배경을 꾸며보라고 했고, 나는 재밌어서 그걸 열심히 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연결이 됐는지도 모른다. 영화배우 그만두고 설치 미술에 빠져 돈도 많이 썼다. 2003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앉은키 정도 구슬 33개로 100평 규모 전시장을 가득 채워 본 적도 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제석천의 무기가 무한한 구슬로 이뤄진 인드라망(인다라망)이다. 구슬이 서로서로 비춰서 무한해 보이는 모습을 연출해, 제석천 무기를 재현해 보고자 했다. 설치 미술 작가들은 프로젝터 한두 대로 해도 되는데 전셋집 내놓으면서도 수십 대씩 빌려 내 걸 좋게 보여주려고 하는 욕심이 있다.”
―이번 개인전 주제는 ‘아모르, 아모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더욱 치유와 사랑 얘기를 하고 싶었다. 팬데믹 기간 죽은 사람도 많고, 삶이 붕괴된 사람도 많이 만났다. 그들을 생각하며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내가 그리는 ‘하트’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심근경색을 앓는 오빠의 심장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빠의 심장은 나 개인이 한 생명이 이어지길 간절히 기원하게 했던 상징이다. 3년여 전 팬데믹과 함께 시작했고 엔데믹이 임박해 마침표를 찍는다는 자세로 작업했다.”
―작품 주제에 미사일이 많이 보인다.
“미사일도 인드라망과 같은 일종의 무기다. 강력한 것에 대한 열망이 있다. 사랑을 예를 들어 본다면, 남녀 사이의 사랑을 권총에 빗대 볼 수 있다. 내가 바라는 사랑은 그보다 훨씬 큰 하늘에서 폭탄처럼 떨어지는 일종의 대량 살상 무기 같은 사랑이다. 다이너마이트의 어원이 된 성경에 나오는 ‘두나미스’라는 단어가 있다. 두나미스는 신의 권능을 뜻한다. 내가 그리는 하트 이름도 그래서 두나미스다. 파괴적이고 폭발력 있고 펑 터져서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플 때 정말 아파서 죽다 살아나면 새로운 삶을 사는 경우가 있다. 그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미사일과 같은 강력한 무기 등에 천착하게 된 배경이 있나.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절대자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과거를 떠올려 보자면 영화를 찍을 때 어느 낯선 지방 도시로 떠나 거대한 철제 장비를 챙긴 스태프들이 각자 무거운 장비를 들고 총알과 같이 필름을 쓰면서 뭔가 작전 수행을 하는 듯했던 게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높은 데서 올라가서 보면 내 눈에는 전쟁하듯 보였다. 우린 끝없이 ‘긴장해야 한다’, ‘우린 전쟁터로 간다’ 등의 비장함도 있었다.”
―캔버스로 그림을 그리지만, 그 안에도 겹겹이 재료를 쌓는 일종의 설치 미술적인 요소가 있다.
“과거 설치 미술에 집중했던 면이 반영되는 것 같다. 그림을 구상할 때 지나치게 오래 고민에 빠져 있지 않으려고 한다. 과거 연구만 하고, 생각만 하다 1년을 보내고, 6개월이 흘러갔다. 그 기간 캔버스만 째려보다가 하나도 그리지 못한 적도 있다.”
―작가로서 어떤 작품 활동을 할 계획인가.
“미술계에서 지인이 ‘그림 전공하는 사람은 다른 길로 나갔다가도 전공한 길로 간다’는 말을 해줬다. 설치 미술을 하다가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한다. 동양화는 한 획을 긋는데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한 획을 더하면 그 이유를 물었다. 지금은 아크릴로 작업하지만 마음이 편해지면 수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욕심이 조금씩 없어져 간다. 작가로서의 성취는 지금처럼 계속해 나가면 어느 선까지는 인정받지 않을까 조금 기대하는 정도다. 목표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건 있다. 여러 사람과 하나의 목표를 가진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과거 영화배우일 때 스태프들과 각자의 역할에 따라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던 시절이 돌아보면 참 즐거웠다. 그때 생각이 나서인지 여러 작가와 단체전을 하든, 또 다른 프로젝트를 하든 다 같이 하는 걸 해보고 싶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