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대학 입학식에서 자랑스러운(?) 당신 아들의 멋진 사진을 찍어서 충북 괴산과 청주에 있는 친척들에게 그리고 멀리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친지들에게도 보내실 거라고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바로 그날 가슴이 철렁하는 공습경보가 이어졌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용은 이랬다.
“전국에 비상공습경보를 발령한다. 이것은 연습상황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모든 국민은 대피하라.”
이런 공습경보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서울 하늘을 뒤덮었다. 매달 15일 민방위 훈련을 해온 사람들이긴 했어도 실제상황이라는 다급한 방송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형언할 수도 없는 공포감을 안겨주었으며 나와 부모님 그리고 우리 형제들도 안절부절못하고 전쟁이 일어났다는 생각에 가슴을 졸인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대학가면 미팅도 해보고 고교 시절 못 해본 청춘을 즐기겠다는 계획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는 건 중요하지 않았고 전쟁이 나면 나는 전쟁터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실 더 컸다.
그러나 그 공습경보는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을 감행한 것으로 곧 밝혀졌고 우리 가족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이것이 내 인생 최초의 공습경보로 기억된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당연히 감당하는 병역의 의무를 난 1985년 11월 1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면서 시작했다. 현역병으로 입대를 했고, 그해 12월 초 의정부에 있는 군수사령부에 정훈병으로 군생활에 돌입했다.
정훈병은 현역병은 물론 단기사병들에게 정신교육과 여가생활에 도움이 되는 각종 문화행사를 담당하는 보직이었다. 정훈병이 나름 동료 병사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한 달에 한두 번 영화를 상영해주는 담당자였기 때문에 부대를 오고가는 많은 병사들이 나에게 “원 이병 언제 영화 틀 거야”, “야, 오늘 석식 후에 영화 하나 보여주면 어때” 등 각종 채근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부대에 전입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1986년 2월 초 여전히 이병 계급장을 달고 있던 나는 이런저런 업무를 빨리빨리 처리해야만 하는 막내 사병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마침 우리 부대 장병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날이기도 했다. 난 하루 종일 분주히 업무를 봤다, 사무실에서 16mm 영사기를 점검하고 있던 때에 갑자기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역시 실제상황이라는 방송이었다.
군인 신분임에도, 나는 단 한 번도 실제 전쟁을 겪을 거라곤 생각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부대에서 울린 공습경보와 함께 5분대기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모든 병사들이 막사로 올라가 전투준비를 하게 됐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전투복 단추를 여미고 있었다. 그때 고참 상병이 말했다.
“하. 이 자식 겁먹은 것 좀 봐라. 이래 가지고, 네가 전투에 나가겠어?”
고참 상병은 내 전투복 단추를 직접 여며주었다. 하지만 이날의 공습경보는 곧 해제됐다. 중국 공군 조종사 한 명이 전투기를 몰고 귀순한 것으로 판명됐던 까닭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 후폭풍은 거셌다. 나는 두고두고 선배들로부터 “너 그날 오줌 싼 것 아니냐”, “네가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육군이라고 할 수 있느냐” 같은 놀림을 받았다.
참 신기한 건 나 같은 신참들은 모두 벌벌 떨었는데 선임병들은 오히려 냉정하고 차분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중에 전역 후 만난 우리 선임들이 모두 공습경보가 울리던 그날 나처럼 매우 무서워했다고 말한 것을 듣고 한참을 웃기도 했다.
5월 31일 아침 6시 30분경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실제상황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남쪽으로 발사해서 경계경보를 발령한다, 노약자나 어린이를 먼저 대피하게 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라는 경보를 듣게 됐다. 이런 경보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딸들은 갑자기 울먹이면서 “아빠 우리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 것이냐, 전쟁이 난 것이냐”라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행히도 20~30분 후 경계경보는 오발령으로 알려졌다. 딸들과 우리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경계경보를 접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물론 일각에서는 과잉대응이었고 호들갑이었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지만, 대한민국은 현재 휴전 상태이며 언제라도 실제상황이 올 수도 있는 그런 처지다. 그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휴전 상태다.
이런 경험이 유쾌할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 딸들도 이번 경계경보를 계기로 경각심을 늦추지 말고 항상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든 국민은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모두 다 잊지 말아야 한다.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합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바라본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