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초래하고 서로 ‘으르렁’…서울시 vs 행안부 경계경보 논란

서울시 “대피 준비하라” 행안부 “서울시 오발송”…전문가 “위급 정보 최초 파악한 부처서 즉시 전송해야”

[일요신문] 북한이 31일 남쪽으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 발사 이후 서울시는 경계경보 발령과 함께 서울 시민들에게 대피를 요구하는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이른 새벽, 서울시의 재난문자에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 시민들이 겁에 질렸다. 그러나 약 20분 후 행정안전부(행안부)가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는 정정 문자를 보냈다. '전쟁이 나는 줄 알았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서울시민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엇박자에 분노를 폭발시켰다. 

북한이 발사체를 발사한 31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서울시의 재난문자 발송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합동참모본부(합참)는 31일 오전 6시 29분쯤 북한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발사된 우주발사체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6시 41분쯤 시민들에게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채 출근 준비를 하기도 전인 시간이었다. 서울시 재난문자에 잠에서 깬 시민들은 당장이라도 북한 미사일이 떨어지고 아수라장 같은 전쟁 상황이 발생할 것 같은 분위기에 떨었다. 

그러나 오전 7시 3분쯤 이번에는 행안부에서 ‘서울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고 재난문자를 보냈다. 이후 서울시는 오전 7시 25분쯤 ‘서울시 전 지역 경계경보 해제되었음을 알려드린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일상으로 복귀하시기 바란다’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 

행안부는 북한이 발사체를 발사한 뒤 백령·대청면에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서울시는 행안부가 발령한 경계경보 지역에 해당하지 않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경계경보 오발령과 관련해 “서울시 전역에 전송된 문자는 서울시가 오발송한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행안부의 경계경보) 수신처가 모호한 상황에서 연락도 되지 않으니 자체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경보 시스템은 행안부가 통제하는 중앙민방위경보통제센터에서 위기상황 발생 시 각 지자체와 연결된 시스템을 통해 지령을 전달하도록 돼 있다. 지령은 음성 형태로 전달된다. 실제 서울시 오발령 사태 후 일부에선 이날 지령방송의 내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경계경보 발령 사태에 대해 “많은 분들께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면서도 “오발령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문현철 국가위기관리학회 부회장은 “이태원 참사처럼 국가 위기 시스템 가동이 아예 이뤄지지 않은 것보다는 잘한 행동”이라면서 “오히려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도 움직였어야 한다(경보 시스템을 가동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31일 북한 우주발사체 관련 서울시와 행정안전부가 발송한 재난문자. 

하지만 이미 예견된 발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제 전쟁 상황인 양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과대 조장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한은 이미 지난 29일 일본과 국제해사기구(IMO)에 “5월 31일 오전 0시부터 6월 11일 오전 0시 사이에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에서 자취 중인 김유진 씨(27)는 “알고 있는 내용인데 국민적 공포감을 극대화한 것 아니냐”며 “오늘 우주발사체를 발사한다는 것을 알았어도 사이렌 소리 들으면서 ‘대피’ ‘경계경보’가 적힌 재난문자를 받으면 ‘뭔 일 났나’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무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재난문자를 빠르게 전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피 안내조차 허술하게 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출근 준비 중 경계경보 재난문자를 받았다는 안상혁 씨(28)는 “우려할 상황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실제 전쟁과 같은 위험 상황에서 10분이 지난 뒤 재난문자를 받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질타했다.

전문가들은 재난문자 발송 등 경보시스템 제도에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내용을 전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위급 상황을 최초로 파악한 부처에서 즉시 국민들에게 재난문자를 보내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난문자 전송시 대피 안내에 대해선 “각 국민들이 거주하는 지역별로 어디에 대피소가 있는지 함께 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