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랜드마크 역할할 수 있지만 재난 상황과 주거환경 등 고려해야”
서울시는 금융기관이 집적된 동여의도 일대를 대상으로 용도지역 상향, 용적률 인센티브 제공 및 높이 완화 등의 내용이 담긴 ‘여의도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안’을 발표했다. 시는 금융 투자 여건 조성 및 적극적인 금융 기능 도입 등으로 국제금융중심지 육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국제금융중심지구 내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는 용도지역 조정 가능지로 지정해 일반상업지역에서 중심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상향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명동, 상암동에 이은 서울의 세 번째 중심상업지역으로서 용적률을 1000%까지 부여한다. 친환경적이고 창의‧혁신 디자인을 적용하면 1200% 이상 완화한다. 또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를 중심으로 350m 이상의 초고층 건축물을 유도하고 높이를 추가로 더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여의도 최고층 빌딩인 파크원이 333m인 것을 고려하면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 내 높이 규제를 사실상 폐지한 것이다.
서울시는 여의도뿐 아니라 서울 고도지구 건물 높이 제한 완화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 고도지구는 △남산(중구·용산) △북한산(강북·도봉) △경복궁(종로) △구기·평창(종로) △국회의사당(영등포) △서초동 법원단지(서초) △오류·온수(구로) △배봉산(동대문구) 총 8곳이다. 이미 규제가 완화된 배봉산을 제외한 7곳이 재정비 대상이다. 현재 각 고도지구의 건물 높이 제한은 남산 12~28m 이하, 북한산과 구기·평창동 20m 이하, 경복궁 15∼20m 이하, 서초동 법원단지 28m 이하 등이다.
서울시는 올해 1월 2014년부터 적용해온 ‘35층 룰’을 폐지하기도 했다. 35층 룰은 순수 주거용 아파트의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는 지침이다. 이처럼 서울시의 건축물 관련 전반적인 정책방향이 건물 높이 제한을 완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층건물을 짓는 것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고, 상업적으로 효율적인 역할을 하는 등 도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만 서울 내 건물 공실률, 재난 상황 대비, 경관적 가치 등을 고민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서원석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뉴욕의 사례를 보면 맨해튼을 중심으로 고층건물이 있는 곳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도시발전 측면에서 봤을 때 역세권 중심으로 고밀 개발을 하는 것이 관광·상업적 측면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도시발전에 고밀 개발이 업무의 효율성 등에서 순기능이 없진 않다”면서도 “다만 주거지역에 고층건물이 들어설 경우 주거환경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고,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피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건물 간 거리가 짧을 경우에는 사생활 보호가 안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송창영 광주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미국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나 존 핸콕 빌딩이 세계적인 마천루로 불리고, 뉴욕 맨해튼에 랜드마크가 되는 건물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관광 측면에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도시 전체의 균형을 생각해 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건물 높이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건물들을 고층화한다는 건데 저층건물보다 고층건물이 더 재난에 많이 노출돼 있다”며 “안전 측면에서 문제가 없는 선에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내 공실인 건물이 많은데 고층건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서울에 빈 상가도 많고, 빈 집도 많아서 주택과 상업시설이 모자라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주택도 상업 공간도 공실인 곳이 있다고 하는데 고층 건물을 지어 공간을 더 공급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상업지역인 명동의 공실률을 살펴보면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4분기부터 2020년 2분기까지 공실률은 0%였다. 하지만 올해 1분기 명동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1.5%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9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받은 ‘임대주택 공가(6개월 이상 비어 있는 주택) 현황’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419가구가 6개월 이상 빈집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통계청의 서울시 빈집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의 빈집은 9만 7000호였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의 종로 같은 곳은 과거에 나지막한 건물이 있었는데 재개발하면서 고층건물이 많이 들어서 동네 특유의 분위기가 약해졌다”며 “건물을 고층화하는 것이 사업성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고층화된 건물들 중 비어 있는 곳도 많고, 역사문화가 중심인 곳에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오히려 도시의 특징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고층 건물이 밀집된 곳에서는 상업적으로 효율성이 있겠지만 전체적인 도시 발전에는 큰 의미가 없다”며 “고층이 되면 엘리베이터도 하나 더 설치해야 하고, 수도 시설도 더 늘려야 하는 등 에너지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고층건물이 지가에 대한 보완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반적인 에너지 측면에서 보면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도지구 재정비 계획안은 아직 만드는 중이고, 6월 말에서 7월 초 공개할 계획”이라며 “무조건 높이 규제를 완화하지는 않겠지만 지구별로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한 부분들을 살펴본 후 재정비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계획안이 나오면 시민들과 전문가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