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에서 ‘주력회사’로 투자 포인트가 바뀐다
▲ 여야 대선주자들이 내세우는 경제 관련 공약 속에는 증시 ‘게임의 룰’을 바꾸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 |
# 그룹주 투자공식 바뀔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예비후보는 대기업이 불공정 행위를 하거나 대기업 주주의 지나친 사익추구를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뜻을 내비친다. 당장은 공정거래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지배구조 문제까지 접근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안종범 박근혜 캠프 정책메시지본부장 겸 정책위원은 “대기업 지배구조를 건드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재벌의 권력남용을 철저하게 바로 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증시에서 성공투자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대기업집단 대주주의 지분이 집중된 회사에 투자하는 방법이었다. 총수일가의 지배력 세습과, 경영권 강화를 위한 자금이 이들 총수가 직접 지분을 가진 회사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의 시장가치는 총수일가의 경영권 장악력이 강해질수록 비약적인 상승세를 이어왔다. 상장사 가운데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현대모비스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의 글로비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 C&C가, 비상장사 가운데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삼성SDS, 삼성에버랜드 등이 대표적이다.
익명의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사실 이들 총수일가의 직접 지배회사는 그룹 전체의 일거리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불과 10년여 사이에 엄청나게 덩치를 불려왔고, 이들 기업에 투자한 이들도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었다”면서 “하지만 차기 정부가 이들의 그룹 내 일감 독점을 막게 되면 매출성장은 물론 이익성장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기존 총수 가족회사에 ‘빨대’를 꽂혔던 주력회사들의 경영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가족기업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데 따른 부담 외에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 약화에 따라 일반 주주의 의결권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줄어들면 지분 확대로 경영권 경쟁에 나서는 기관들이 나올 수 있고, 기존 경영진은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주주이익을 위한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배당이나 자사주매입 등 주가 제고를 위한 조치들이 많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한국기업의 대표적인 할인요소가 가족회사를 통한 비정상적인 기업지배로 인한 비(非)지배주주의 주주권 침해였다”며 “하지만 이 같은 편법적인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주주권 가치가 올라가면서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주식매매차익 과세, 증시 에너지 떨어뜨릴까
현재 상장주식 양도차익 과세는 코스피의 경우 지분율 3%(코스닥은 5%) 또는 지분총액 100억 원(코스닥은 50억 원) 이상 대주주의 거래에 양도차익을 부과하고 있다. 정부는 이 지분율 기준을 코스피는 2%, 코스닥은 3% 수준으로 낮춰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근혜 대선예비후보의 공약이고, 야당인 민주당도 비슷한 입장인 만큼 다음 정부에서 시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파생상품거래세도 도입이 추진된다. 파생상품거래세는 지난 18대 국회에서 의원 입법으로 도입이 시도됐다. 이혜훈 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했는데, 이 전 의원은 현재 박근혜 캠프의 경제 담당 브레인이어서 다음 정부에서 정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8대 국회 당시 이 전 의원이 내놓은 파생상품거래세는 시행 첫 3년은 세율 0%, 4년차부터 0.001% 과세한 뒤 단계적으로 0.01%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총선에서는 여야가 모두 이와 관련한 공약을 제시했다. 당시 세율은 새누리당은 0.001%, 민주당은 0.01%였다.
증권업계는 주식매매차익 과세보다는 파생상품거래세를 더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파생상품은 레버리지(Leverage, 차입을 통한 투자금 확대) 거래를 하고 빈번한 매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세율이 낮아도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부담은 훨씬 크다”며 “가뜩이나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증시 거래 대금에 파생상품거래세까지 부과되면 증시는 얼어붙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업계는 파생상품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이 이미 일본, 스웨덴, 대만 등에서 실패한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1987년 파생상품에 0.3~1%의 거래세를 부과했지만 파생상품 투자자들이 세금이 없는 싱가포르 등으로 이탈해 결국 1999년 거래세를 폐지했다.
# ‘10%룰’ 깨지면 증시 양극화 심해질 듯
최근 정부에서 침체된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자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이 연기금에 대한 이른바 ‘10%룰(Rule)’ 완화다. 연기금은 운용자산 가운데 상당부분을 자산운용사에 맡겨 운용하는데, 10%룰이란 자산운용사 펀드의 순자산 가운데 10% 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다. 또 단일 펀드가 한 상장사의 지분율 10% 이상, 여러 펀드를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는 동일 상장사 지분율 20% 이상 보유하지 못하는 규제도 10%룰이다.
이 룰을 완화시키면 펀드당 최소 편입종목수가 11종목 아래로 떨어진다. 그만큼 유망한 종목에 집중해서 투자할 수 있는 셈이다. 또 지분 10% 이상 보유제한 조치가 풀리면 펀드가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는 연기금의 의결권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결국 펀드의 힘이 강해져 총수 일가에게 주주 중심의 경영정책을 압박할 수 있게 된다.
투명성 강화와 주주가치 제고라는 효과는 일단 일반 주주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조치다. 하지만 연기금이 투자하는 종목이 집중되면서 증시 양극화와 정부의 민간기업 경영개입이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증시 관계자는 “종목 집중도를 높이면 소수 우량종목에만 연기금 자금이 몰리게 돼,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는 하락장에서는 시장보다 못한 수익률을 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