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기준 청소년 4명 중 1명 우울증 위험…진단과 치료 부족한 상황서 학교와 가정 역할 강조
4월 말 중국의 교육부 등 17개 부처는 ‘학생 정신건강사업 전면 강화 및 개선을 위한 특별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정신건강 모니터링, 심리 조기경보 도입, 청소년 상담 전문 클리닉 설치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 계획은 2023년부터 3년간 집중 진행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청소년 우울증 환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우울증으로 인한 청소년 자살수도 같이 늘었다. 2020년 발표한 ‘중국 국민 정신건강 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24.6%가 우울증 위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명 중 1명꼴이다.
의사들은 이 비율보다 더 많은 청소년들이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을 것으로 봤다. 상하이시 정신보건센터 소아과 주임 두야손은 “우울증 진단은 까다롭다. 우울한 감정이 4주 동안 지속되어 학업과 생활, 대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때 의사들은 우울증을 진단한다”면서 “척도로는 평가할 수 없는 우울증 환자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우울증을 아직도 정신병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도 영향을 미친다.
청소년들의 우울증 진단은 성인보다 더욱 복잡하다. 베이징대 의학부 정신과 교수 왕지슝은 “청소년들의 우울증 진료는 성인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또 진단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표현은 불분명하고, 또 말하기를 꺼려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표현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에 걸린 청소년들은 성인과는 달리 자극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불쾌한 상황에 직면하면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만큼 치료와 진단이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늘면서 소아정신과, 우울증 클리닉 등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자연스레 청소년들에 대한 진료 및 상담시간도 줄어들었다. 베이징의 한 소아과 우울증 클리닉 의사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있다.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1인당 평균 진료시간이 5~6분”이라고 귀띔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울증에 걸린 자녀를 둔 부모 역시 우울증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소아과 의사 리신디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이의 부모가 우울증 진단을 받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이 부모들은 아이의 질병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사들은 우울증 청소년뿐 아니라 그 부모들에 대한 상담 및 관리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우울증 치료는 주로 약물을 활용했다. 하지만 과도한 항우울제 복용은 증상을 오히려 더 악화시키거나 심지어는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등의 부작용을 일으켰다. 지금은 환자에 따라 심리 및 물리 치료, 약물 등을 처방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 차오징주는 “각 치료별로 장점과 단점을 잘 따져봐야 한다”면서 “우울증을 가진 아이들이 크게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심리치료가 최우선”이라고 했다. 실제 베이징 소재 대학 병원 6개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심리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심리 치료 역시 한계가 있다. 주요 도시를 제외한 지방에선 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소아정신과 의사를 찾기 힘들다. 의사들이 우울증 심리치료를 하기 위해선 보건위원회에서 발급한 전문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많은 병원들이 심리 치료 전문의를 두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우울증 처방이 약물로 이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아정신과 의사는 성인정신과 의사보다 1년 더 많은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의대생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아정신과 의사들에겐 보다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 당국은 소아정신과를 개설하는 병원엔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우울증에 대한 인식 개선도 요구된다. 차오징주는 “우울증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아이들과 부모가 많다. 이는 추후 더 큰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아이들이 갑자기 부모에게 대들고, 학교를 빼먹고, 싸움을 하고, 과도하게 휴대전화를 사용한다면 우울증 초기 증상을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를 간과하기 일쑤”라고 했다.
2021년 세계정신과학협회가 발표한 ‘우울증 연구에 관한 주요 보고서’에 따르면 고소득 국가에선 우울증 환자의 절반이 진단 또는 치료를 받지 않는 반면, 중저소득 국가에선 이 비율이 80%가 넘는다는 내용이 있다. 무엇보다 우울증에 대한 진단 부족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중국 내에서도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부모들의 우울증 인식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관찰된다. 지방으로 갈수록 우울증을 미신 등에 의존해 치료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대부분이 아이의 상태가 심각해져서야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곤 한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우울증 치료가 가족 단위로 이뤄져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소아과 의사 리신디는 “사실 우울증 걸린 아이는 아픈 가정의 대표 환자일 뿐이다. 아이 뒤엔 무감각한 부모가 있다. 그 부모는 아이와 교감이 없었고,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면서 “특히 부부 갈등이 심할수록 청소년 우울증 발병 확률이 높았다”고 했다.
학교 참여도 필요하다.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들로 인해 아이들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사례가 자주 보고됐다. 우울증에 걸린 학생들을 엄하게 다스리는 교사들도 많다. 정신과 의사 차오징주는 “정신과 의사, 청소년 가족, 학교가 치료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차오징주는 “우울한 아이를 식별하는 방법, 우울증 초기 증상 등을 교사들에게 꾸준히 교육할 필요가 있다”면서 “소아정신과, 심리전문가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학교와 가정이 제대로 역할을 한다면 청소년 우울증은 극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