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서울 기초단체 등서 아직도 관행처럼 이어져…“상급자가 인사·승진권 쥔 탓에 악순환” 지적
#“국·과장 끼니 대접 이해 안 돼”
6월 11일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충청북도 소재의 한 기관 소속 공무원으로 밝힌 A 씨는 ‘공무원들의 모시는 날 악습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게시했다. A 씨는 “국장·과장급은 말단 공무원보다 2배 이상 많은 월급을 번다”며 “월 200만 원가량 버는 7~9급이 왜 끼니를 대접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상관은 직원들에게 커피 한 잔도 대접하지 않는다”며 “게다가 그런 점심 식사 장소는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주로 이뤄진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A 씨는 일요신문과의 일대일 채팅방에서 “과거에 한 팀장이 모시는 날에 대해 반대한 적이 있었는데, 그 팀만 제외하고 모시는 날을 진행할 정도로 바뀌는 것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A 씨는 본인이 소속한 기관뿐만 아니라 충북 산하 기초자치단체 청사와 일부 행정복지센터에서도 모시는 날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A 씨의 글을 본 다른 공무원들도 댓글을 통해 모시는 날 관행이 있다고 했다. 충청북도 소재의 한 기초자치단체 소속으로 밝힌 한 공무원은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도 그 관행이 있다”며 “과거 언론 보도로 공론화됐지만, 모시는 날 대신 다른 이름으로 바꿔서 여전히 진행된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자치구 소속 공무원도 “점심 내내 이야기 들어주고 리액션하는 것도 힘들다”며 “직원들의 돈으로 모인 팀비나 업무추진비로 점심을 사드리지만, 국장이나 과장은 커피마저 안 사거나 가끔 생색을 낼 땐 업무추진비 카드로 결제한다”고 밝혔다.
#대전은 개선 위해 주니어보드 출범
모시는 날을 비롯해 ‘시보 떡 돌리기’ 등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조직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한 기관들도 많다. 2021년 9월 대전시청 소속의 한 9급 공무원이 ‘직장 내 갑질’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 대전시는 MZ세대 공무원 20명으로 구성된 주니어보드 ‘DMZ’(Daejeon MZ세대)를 출범했으며, 불합리한 관행 개선과 업무에 대한 개선안 3대 분야로 8대 역점과제를 도출했다.
3대 분야는 △불합리한 관행 없애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실천 △수평적 소통 활성화이며, 8대 역점과제는 △국‧과장 모시는 날 없애기를 비롯해 △신규 직원 호칭 개선(OO 씨→OO 주무관) △상호 존중·배려하기(나이·직급에 관계없이 존댓말 사용) △눈치 보지 않고 유연근무 사용 △강요 없는 건강한 회식문화 만들기 △휴가 사용 적극 권장 △익명 소통게시판 설치 △신규 공무원 적응 지원 등이다.
2022년 3월 강원 태백시청의 한 부서에서 5~6개 과가 돌아가면서 국장들의 점심을 대접한 사실이 밝혀졌다. 2022년 12월 전북 순창군청에서도 각 부서 계원들이 돌아가면서 부서장(과장) 점심을 챙겨주는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상급자가 인사권 쥔 것이 원인”
A 씨는 “월급이 박봉이어서 식대를 아끼기 위해 냉동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직원들이 많은 실정”이라며 “상급자를 모시고 비싼 밥을 사드려야 하니 많은 불만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이어 “모시는 날은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에서 벌어진다. 전국의 말단 공무원들이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상급자가 인사·승진·근무평정권 등을 쥐고 있기에 모시는 날을 비롯한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노조가 불합리한 관행 관련 신고를 적극적으로 접수해 악습을 없애 나가겠다”면서 “국·과장이 사비나 업무추진비로 부하들에게 격려 차원에서 충분히 밥을 사줄 수 있는데, 아직 그런 문화가 확고히 자리 잡지 않은 것 같다.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캠페인도 추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