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지도부 존재감 없고 내각선 한동훈 ‘원톱’ 리스크…대통령실, 당정 힘 키우기 위한 ‘핀셋 인선’ 가능성
#원팀 전략, 무기력한 집권당
여러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대통령실과의 갈등 끝에 출마를 포기하고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김기현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자 여당은 대외적으로 ‘원팀 완성’을 외쳤다. 원활한 국정 추진을 위해서는 여권 전체가 일체감을 이뤄야 하고 전당대회에서 표출된 전체 당원들의 뜻도 이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당내에서 불거지는 모습은 “원팀에 치중하다 집권당의 위상이나 내부 역동성이 너무 약해진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각종 설화로 물러난 태영호 전 최고위원 후임을 뽑는 최고위원 보궐선거 후보 등록 결과가 단적인 예라는 내부의 지적이 나온다.
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6명의 원외 인사가 등록했을 뿐 현역 의원들 중에서는 단 한 명도 후보 등록자가 없었다. 당원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히는 대구경북에서 4명, 경남과 서울, 충남,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도 출사표를 던질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손을 들고 나온 의원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꼬리를 물었다. 눈치 없이 나섰다가 몰매를 맞을 수 있다는 지난 전당대회에서의 이른바 ‘나경원 학습 효과’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지도부가 무기력하다는 비판에 휩싸여있는데, 그 지도부 안에 들어가면 무능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걱정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뒤를 이었다.
여기에 최고위원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던 이용호 의원이 비선 논란에 불을 지필 만한 발언을 하면서 여권이 발칵 뒤집혔다. 여당 내 유일한 호남 지역구 의원(전북 남원·임실·순창)이자 재선인 이 의원은 5월 30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가 최고위원 보궐선거에 현역의원이 나서지 않은 것과 관련해 김기현 지도부를 겨눴다.
그는 “기본적으로 지금 김기현 체제가 모습이 좀 이상하게 됐다. 기대만 못 하게 됐다”며 “최고위원회의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데 거기에 걸맞나. 혹시 들러리냐. 실제 중요한 핵심의제 결정은 다른 데서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용산 (대통령실은) 아니고, 당내에서도 ‘5인회’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이런 얘기들이 있다 보니까 (최고위원 선거 기탁금) 4000만 원 내고 이게 가성비가 나오냐”고 덧붙였다.
지도부인 최고위원이지만 핵심 의제 결정은 최고위원회가 아닌 ‘당내 5인회’에서 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는 마당에 들러리를 서기 위해 출마 기탁금을 내고 출사표를 던질 현역 의원이 없었다는 취지다.
이 의원은 ‘5인회’에 대해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당내 친윤 핵심 의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기현 대표에게 매일 아침 회의에서 중요 사안을 보고하는 이철규 사무총장, 박대출 정책위의장,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배현진 조직부총장 등 주요 당직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5인회 논란에 대해 김기현 대표는 “일고의 가치 없는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친윤계에서도 “이 의원의 사견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기류가 강하다. 이 의원도 파문이 커지자 6월 2일 이 발언을 취소했다.
하지만 의원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총선을 앞에 두고 5인회 존재가 제기되면서 줄서기가 시작될 것이고, 이에 따라 당 지도부 리더십은 더욱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뜩이나 존재감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당 지도부 대신, 5인회로 상징되는 비선 그룹이 앞으로 더욱 부각된다면 내년 총선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커지는 것은 물론, 후유증도 심각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징계를 받은 최고위원까지 지도부 성토에 나서자 당내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하다. 설화로 인해 당원권 1년 정지 중징계를 받은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6월 1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 출연, “제가 20년 동안 당에 있으면서 이런 식으로 징계한 자체가 처음이었다”며 징계의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뜻을 내놨다. 개인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문제 삼아 징계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지도부의 한 축인 사람을 징계를 해버리니까 (지금) 일종의 순망치한 현상이 벌어진 것 아닌가라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다”면서 지도부 무게감을 스스로 낮추는 뺄셈식 당 운영을 김기현 체제 리더십 부재 현상의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여당이 독자적인 힘을 회복해야 당정이 모두 빛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문 대통령 지지율이 압도적인 고공 행진을 지속했음에도 민주당은 당의 간판으로 문 대통령에 필적할 만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춘 정치적 거물 이해찬·이낙연 대표를 선출했다. 여당은 여당대로 역할이 있기 때문에 당에도 무게감을 충분히 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여권은) 원팀 전략이 여당의 보폭을 좁혀놓는 악재가 돼버렸다.”
#한동훈에만 기댔다가는…
윤석열 내각 원톱은 단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때 한 장관과 엇비슷한 화력을 보여줬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원 장관은 공격 가담 횟수가 확 줄었다. 이 장관은 탄핵 태클에 걸려 역할 정지 상태에 놓여 있다. 정치권에선 “한동훈만 보인다”는 얘기가 나온다.
구조적으로 한동훈 장관만 보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있긴 하다. 과거 정권에서는 대통령 임기 초반 경제 부처 장관들이 조명을 많이 받는데 윤석열 정부의 경우, 세계적 경제 침체기와 맞물려 경제 부처가 공세적 정책을 만들기 힘들고 수세적 입장에서 방어형 처방만 내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경제 부처 장관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어려운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광범위한 수사 정국이 펼쳐지고 있는 것도 한 장관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수사에 대해 야당이 강력 반발하면 다시 한 장관에 대한 집중도가 올라가는 순환 작용이 반복되면서 한 장관 주가는 더욱 우상향하고 있다. 5월 30일 경찰이 한 장관의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 MBC 기자 및 MBC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 집행에 나서면서 정치권은 들끓었다. 야당은 괘씸죄에 걸린 언론탄압이라고 성토했다.
한 장관에 대해 자주 날을 세우는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5월 30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나와 ‘검사가 수사권을 갖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인가’라는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소환하며 “이거(압수수색)야말로 전형적인 깡패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는 “한 장관은 정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깡패”라면서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단어까지 동원했다. 이 언급 역시 한 장관으로 시선이 다시 집약되게 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돈봉투 사건 등 야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한 장관 노출 빈도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윤관석 이성만 의원에 대한 국회의 체포동의 절차가 진행 중이라 한 장관이 국회 표결이 이뤄지는 6월 12일쯤 국회 본회의장에 나와 이들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 필요성을 설명할 전망이다. 한 장관은 2022년 12월 노웅래 민주당 의원, 지난 2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때도 직설적 표현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 내각에서 한 장관을 능가하는 공격수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 내각 상황이 변할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특정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는 결국 고스란히 여권의 부담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를 이끄는 한 장관이 혼자 앞에 나와 있으면 ‘야당 탄압’ ‘공안 정국’ 등의 프레임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여권 내에서도 ‘한동훈 견제 움직임’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래저래 한 장관을 바라보는 여권의 시선은 편치 않은 셈이다.
#용산, 너무 앞서나가도 문제
여권이 유일하게 안도하는 부분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위를 향해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조사에서는 40%대에 안착했고 윤 대통령 대선 득표율인 48%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희망 섞인 기대도 있다. 여러 악재에 둘러싸인 민주당이 단시일 내에 이를 극복할 가능성이 적어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세가 오래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국정에 탄력을 받은 윤 대통령은 취임 후 2번째 공식 기자회견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일본 방문을 통한 외교 성과로 인해 지지율이 올랐고, 이에 따른 자신감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여권에서는 집권 2년 차를 맞은 윤 대통령이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면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으로까지의 외연을 넓혀 내년 총선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을 것으로 점친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실적 달성 압력이 집중되는 것은 부담이다. 여당에서는 강한 메시지가, 내각에서는 부처마다 정책 꾸러미가 나와 여론을 잡아나가야 하는데 보조바퀴 2개가 대통령실이라는 앞바퀴 속도를 따라주지 못한다는 걱정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여당, 그리고 내각의 힘을 키우는 핀셋 인선을 검토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정·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다. 한상혁 방통위원장 면직 조치 이후 그 자리에 이명박 정부 때 일했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거론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내각 보강작업의 일환이라는 의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