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밥차 보내준 팬들께 감사…선수들 한 팀서 ‘행복 농구’ 하고 싶다”
훈련복이 아닌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나온 전 고양 데이원의 주장 김강선은 인터뷰에 앞서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 또 다시 현실을 자각했다. 프로 입단 후 숱하게 내뱉었던 ‘대구 오리온스 김강선입니다’ ‘고양 오리온의 김강선입니다’ ‘고양 데이원의 김강선입니다’를 더는 언급하지 못하는 현실 말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건 아니다. 2022-2023시즌을 치르며 재정난으로 불안함을 안고 살았고, 팀이 공중분해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속에서 시즌을 치른 터라 지난 16일 KBL의 제명 처분을 받았을 땐 오히려 담담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6월 22일 경기 고양체육관 지하 보조연습장에서 김강선을 만났다. 그곳엔 남은 10명의 선수들과 2명의 트레이너들이 굵은 땀을 흘리며 체력 훈련을 하고 있었다. 김강선과 인터뷰를 정리한다.
지난해 8월 고양 오리온을 인수해 창단한 데이원. 모기업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재정난을 겪으며 KBL 가입비를 제때 납부하지 못했고, 선수단 임금 체불이 시작되면서 구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마침내 KBL은 6월 16일 이사회와 총회를 열고 고양 데이원을 퇴출시켰다.
오갈 데가 없어진 데이원 선수들. 그들을 이끄는 주장 김강선은 팀이 제명당하기 전 국회도 찾아가고, KBL에 도움을 호소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현재 소속팀 없이 선수들이 모여 훈련 중인데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클 것 같다.
“불안함이 큰 게 사실이다. 농구 시작하고 지금과 같은 일은 처음 경험한다. 지난해 고양 오리온이 매각돼 데이원자산운용으로 넘어갈 때도 인터뷰에서 데이원이 마지막 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는데 또 다시 새로운 팀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2009년 대구 오리온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지금까지 한 팀에서 뛰었다. 이전 고양 오리온이 매각된다는 사실은 언제 알았나.
“팀이 매각될 거란 소문은 오랫동안 이어졌던 터라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2021-2022시즌 마치고 회식할 때도 구단 관계자에게 매각설에 대해 물었지만 절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는데 회식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갑자기 매각 관련 기사가 뜨더라. 순간 속은 느낌이 들었고 섭섭한 마음도 컸다.”
―고양 오리온을 인수한 기업이 대우해양조선건설을 모기업으로 둔 데이원자산운용이었다. 이 회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나.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봤을 정도다. 데이원자산운용이 낯설었지만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허재 전 감독님이 구단 대표로 오신다고 해서 선수들이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허재 대표님이 선수들 편에서 힘을 주실 거라 믿었고, 방송 노출도 많아지면 선수들도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양 KGC 인삼공사를 우승으로 이끈 김승기 감독과 손규완·손창환 코치가 창단 팀 감독과 코치로 합류했다. 당시 선수들 반응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조금은 긴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장 나이 많은 난 살짝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훈련 방법이나 색깔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잘 맞춰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시즌을 준비하고 좋은 경기들을 치르면서 팬들과 더불어 ‘행복 농구’ ‘감동 농구’를 할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플레이오프 4강에 올랐기 때문에 월급만 받았다면 정말 인상적인 한 시즌이 됐을 것이다.”
―2022-2023시즌 개막 전부터 데이원이 KBL 가입비 15억 원 중 처음에 5억 원도 제때 납부하지 못했고, 남은 10억 원도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완납했다. 이런 상황이 노출될 때마다 선수들의 불안함이 극에 달했을 것 같다.
“그땐 국내 선수들뿐 아니라 외국인 선수들도 힘들어했다. 그들도 월급을 받지 못하고 게임을 뛰는 터라 굉장히 답답했을 것이다. 돈이 없어 식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팬들이 밥차와 도시락을 보내주셔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팀이 해체된 지금도 팬들이 간식이랑 커피를 챙겨오신다. 팬들에 대한 고마움은 감사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어제 주차장에서 우연히 한 팬을 만났는데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 “고양을 연고로 계속 함께 했으면 좋겠지만 선수들이 모두 함께 뛸 수 있다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도 응원하겠다”라고 말이다. 그분은 우리가 안정된 환경에서 운동하기를 바랐다. 우리를 아끼는 그분의 마음 씀씀이에 크게 감동했다.”
―2월부터 선수들한테 월급이 지급되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린 선수들이 한두 명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나는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됐지만 신인이나 트레이드돼서 온 선수들은 구단이 마련해준 집에서 지내며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그런데 방값을 제때 내지 않아 집 주인에게 전기와 물을 끊겠다는 소리를 듣고, 식당 앞을 지나갈 때면 밀린 식대를 언제 해결해줄 수 있느냐며 원성을 들어야만 했다. 선수들도 눈치 보면서 밥을 먹다가 어느 순간엔 식당에 가지도 못했다. 원정 경기 가선 코치님들 카드로 호텔비와 식비를 계산했다. 코치님들도 그렇게 사용한 비용을 정산받지 못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허재 대표님한테 전화드린 적도 있었다. 그분도 월급을 못 받고 생활하셨고 실질적인 오너가 아니다 보니 직접 해결하기 어려웠던 걸로 알고 있다.”
―정말 막막했을 것 같다. 어떻게 프로 농구 팀이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 의아할 정도다.
“원정 경기 때는 코치님들 카드로 해결했지만 홈에서 훈련이 있거나 경기를 마치면 미칠 지경이었다. 경기가 늦은 시간에 끝나면 밥 먹을 곳이 없었다. 구단에선 선수들이 알아서 밥 챙겨 먹으라고 하는데 2월부터 돈을 못 받은 선수들이 무슨 돈으로 밥을 사 먹을 수 있겠나. 월세 사는 선수들은 방값이 밀렸고, 전세 대출 받은 선수들은 이자를 내지 못해 연체 위기에 내몰렸다. 방값을 내지 못해 방을 빼서 나온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 집에 얹혀 지내기도 했다. 선배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후배들 방값을 내준 적도 있었다. 심적 고통이 극에 달했던 시간들이었다.”
김강선은 최근 김세창이 군 입대하기 전 김세창을 따로 불러내 식사를 사준 손규완·손창환 코치에게 깊은 고마움을 나타냈다. 특히 선수들을 챙기려고 공사장 잡일도 마다 하지 않았던 손창환 코치 이야기를 꺼내며 고개를 숙였다. 김강선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군대 가는 선수를 위해 마음을 나누는 코치들 모습에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는 말도 덧붙인다.
―지난 14일에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운동하면서 국회를 찾은 건 처음 있는 일 아닌가.
“그렇다. 농구 선수가 국회에 갈 일이 뭐가 있겠나. 당시 팬들이 트럭 시위도 하고, 국회에 전화를 걸어 호소도 하는 등 애쓰신 덕분에 국회에서 연락을 받았다. 도와줄 일이 있으면 적극 돕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곳에 찾아간 것이다.”
―원래 18명의 선수들이 뛰었는데 지금 훈련에 참가한 선수들 보니 김강선 선수 포함해서 10명뿐이다.
“군 입대한 선수들과 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이 빠졌다. 다들 기운이 빠져서 훈련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우리를 인수할 팀이 나타난다면 최선의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다른 팀들처럼 훈련을 시작했다. 감독님, 코치님들도 훈련을 돕고 싶어 하셨는데 KBL 규정상 어렵다고 해서 선수들만 모였다. 마치 부모 잃은 자식들만 남은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훈련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선수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 모두 한 팀에서 뛰는 것이다. 선수뿐 아니라 스태프 모두 함께 갔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굉장히 끈끈해졌다. 그동안의 경험들, 느낀 점들, 그리고 농구를 하고 싶다는 열정 등이 모여 강한 팀워크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한 팀에서 모여 진정한 행복 농구, 감동 농구를 하는 게 남은 선수 생활의 목표다.”
전 데이원 선수들은 KBL의 긴급 생활자금 지원 덕분에 무이자 대출을 받고 있다. 6월부터는 월급도 지급될 예정이지만 선수들의 생활고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