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대통령’ 허재 대표 내세웠지만 임금 체불 등 재정난 탓 최악의 결말…KBL은 인수기업 찾기 나서
2021-2022시즌이 끝난 뒤 고양 오리온 농구단을 인수해 창단한 데이원은 시즌 내내 재정난에 시달렸다. 가입비 지연 납부, 선수단과 사무국 직원, 경기 운영 인력의 임금 체불, 구단 인수대금 미납 등 각종 문제를 일으켰다. KBL은 더 이상 데이원스포츠를 신뢰하지 않기로 했고, 이사회와 총회를 거쳐 퇴출을 결정한 것이다.
#‘데이원 사태’의 출발점
2021-2022시즌을 마친 고양 오리온은 줄곧 매각설의 중심에 있던 팀이었다. 매각설 소문이 나돌 때마다 오리온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는데 2022년 4월 데이원자산운영의 존재를 인정하고 팀 매각 상황을 공개했다. 이것이 현재 농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데이원 사태’의 시작이었다.
당시 데이원자산운용은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관계사였는데, 이 기업 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이가 김용빈 회장이었다. 문제는 김용빈 회장이 자본시장법 위반과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 3월 28일 구속됐다는 사실. 검찰은 김용빈 회장이 허위 공시로 부당이득을 취하고 회삿돈으로 가치 없는 주식을 고가에 매수했다고 봤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지난 2월 법원이 기업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릴 정도로 경영이 악화했고, 1월부터 사무국 직원, 코칭스태프, 감독, 선수들에 대한 급여가 지급되지 못했다.
#구단주,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화려했지만
고양 오리온 농구단을 인수하며 프로농구에 뛰어든 데이원스포츠는 프로농구 최초로 캐롯손해보험을 네이밍 스폰서로 유치해 ‘고양 캐롯 점퍼스’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했다. ‘농구 대통령’ 허재를 스포츠 총괄 대표이사로 선임했고, 초대 감독으로 김승기 전 안양 KGC 인삼공사 감독과 손규완, 손창환 코치를 영입했다. 더욱이 FA 전성현과 계약 기간 4년 첫 해 보수 총액 7억 50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데이원스포츠의 구단 운영 방식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KBL 가입비 1차 납입분인 5억 원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데이원스포츠 측은 납기일 추가 연기를 요청했지만 KBL 이사회에선 데이원스포츠에 대한 불신으로 이를 거부했고, 데이원스포츠는 개막 직전 5억 원을 납부하며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데이원스포츠는 3월 말이 마감이었던 2차 KBL 가입비 10억 원 완납을 놓고 KBL로부터 납부하지 못할 경우 데이원의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불허한다는 최후 통첩을 받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데이원스포츠는 3월 30일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를 앞두고 최종 납부를 완료했고,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재정난에 따른 경기 외적 논란이 쌓여가자 네이밍 스폰서로 나섰던 캐롯손해보험이 지난 3월에 후원 계약을 중단하는 악재를 맞이했다. KBL 가입비 15억 원 완납 해프닝을 겪으며 2022-2023시즌 플레이오프를 치른 데이원스포츠는 5월 2일 ‘고양 캐롯 점퍼스’에서 ‘고양 데이원 점퍼스’로 명칭 변경을 승인받았다. 하지만 계속된 임금 체불 문제와 2023년 5월 연고지 계약 만료로 고양체육관 사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최대 위기에 봉착했고, 결국 KBL로부터 제명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지난 6월 14일 데이원 선수단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장 김강선은 “월급을 4개월 내지 5개월 정도 못 받았다. 돈이 없어서 많이 힘들다”며 “자식도 있는 상황에서 너무 힘들다보니 여기(국회)까지 오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임금 체불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프런트, 감독, 코치, 스태프들 모두 함께 겪는 고통스런 현실이었다.
#허재 대표는 사비 선수 지원
안양 KGC 인삼공사에서 두 차례 우승을 이끌었던 김승기 감독이 잘나가던 팀을 나와 새로운 도전에 나선 건 허재 대표이사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작용했다. 당시 김 감독은 안양 KGC 구단과 손규완 손창환 두 코치들 대우 문제로 대립 중인 상황이었다. 때마침 데이원에에서 농구단을 인수하며 허재 대표이사를 내세웠고, 허재 대표이사는 지도자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후배 감독에게 연락해 의향을 물어봤다는 후문이다.
김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으로 두 코치들에 대한 좋은 대우를 내세웠다. 데이원에선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김 감독은 허재 대표이사와 함께 새로운 팀에서 도전에 나섰다.
2022-2023시즌 전까지만 해도 고양 캐롯에 대한 평가는 비관적이었다. 최고의 슈터 전성현이 합류했지만 이대성과 이승현이 빠진 빈자리가 커 보였기 때문에 농구 전문가들은 캐롯을 하위권 후보로 예상했다.
그러나 시즌이 개막하자 김승기 감독의 캐롯은 돌풍을 일으켰다. 정규리그 5위를 기록한 캐롯은 당당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6강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모비스를 만나 5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선 정규리그 1위 안양 KGC 인삼공사를 상대로 2차전까지 1승 1패로 팽팽히 맞서며 선전했지만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다.
시즌 개막 전 하위권으로 분류된 캐롯은 김승기 감독과 손규완 손창환 코치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4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지만 시즌 내내 구단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김승기 감독은 16일 전화 통화에서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부터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했다. “구단에선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재정 상황만큼은 문제없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제 가보니 지원이 거의 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감독은 허재 대표이사에 대해서도 “허재 대표도 결국엔 이용당한 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KBL 회원사에서 제명된 데이원스포츠의 박노하 재무총괄대표는 16일 오전 입장문을 내고 “데이원스포츠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과 저는 새로운 방식의 프로농구단 운영을 꿈꿨지만 결국 한 시즌 만에 그 꿈을 접고 실패를 인정한다”면서 “재무총괄 대표이사직에서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저와 김용빈 회장을 믿고 함께 새로운 길을 선택했던 허재 운영총괄대표, 김승기 감독, 선수단 전원에게 모기업 부도와 미숙한 운영으로 의도치 않게 큰 피해를 입혀 재무총괄 대표로서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박노하 재무총괄대표는 덧붙여서 “농구단의 부정적인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구단주라는 직책 때문에 재무담당 대표인 제가 받아야 할 비난을 허재 대표가 대신 받았다”면서 거듭 사과를 이어갔다.
그러나 KBL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데이원스포츠 운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한다. KBL은 “리그를 훼손하고 팬들을 실망시킨 데이원스포츠 경영총괄 박노하, 구단주이자 스포츠총괄 허재 공동대표에게 이번 사태에 상응한 행정적, 법률적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KBL은 데이원스포츠를 인수할 기업을 적극 찾아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부산시가 남자프로농구단 유치 의사를 밝힌 만큼 KBL은 부산시와 함께 인수 기업을 찾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