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에게 목돈 왜 줘?
▲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회사 돈 4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그가 59.2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흥국생명이 최근 현금배당을 결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흥국생명 해고자들과 노조원들이 서울서부지검 앞에서 그룹내 비리를 규탄하고 복직투쟁을 펼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
이 전 회장은 이미 간암 판정을 받고 지난해 3월 구속집행이 정지됐으며 한 달 뒤인 지난해 4월 간절제수술을 받은 바 있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월 9일 횡령에 대한 책임과 건강 문제로 그룹 회장직은 물론 계열사 사내이사직 등 태광그룹 내의 모든 지위에서 물러났다.
책임을 지겠다며 모든 지위를 내놓았지만 이 전 회장과 태광그룹의 도덕성은 여전히 비판의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태광산업 등 일부 핵심계열사의 정기주주총회 모습과 6월 초 흥국생명의 적잖은 현금 배당은 태광그룹과 이 전 회장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 계속 의혹이 제기된 탓인지 태광그룹 핵심계열사들은 지난 3월 주총을 소수 주주만 참석한 채 급하게 끝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보다 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흥국생명의 현금 배당 결정이다.
흥국생명의 현금 배당을 부정적으로 보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흥국생명의 주주가 실질적으로 이호진 전 회장 일가로 구성된 것, 다른 하나는 그 시기의 부적절성이다. 비록 흥국생명 측은 “6년 만의 배당”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대부분 배당금이 실형을 선고받은 오너 일가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탓에 흥국생명 측 항변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흥국생명의 이번 배당은 보험료를 빼서 주주 배를 불리는 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욱이 올 초부터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과도한 배당을 자제할 것을 권유했고 배당보다 재무건전성에 더 신경 쓸 것을 주문한 터라 금융당국마저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7월 3일 기준 흥국생명의 최대주주는 이호진 전 회장으로 59.21%(804만 3128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대주주는 이 전 회장의 조카 이원준 씨로 14.65%(199만 189주)를 갖고 있다. 그 외 대한화섬(10.43%), 일주학술문화재단(4.70%) 등 오너 일가와 그룹 계열사가 흥국생명 지분 100%를 나눠 갖고 있다. 따라서 배당은 곧 오너 일가의 주머니를 불리는 꼴이다. 예컨대 이 전 회장의 경우 이번 배당으로 현금 140억 원가량을 챙길 수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생명보험 시장점유율(MS) 기준 8위(4.2%, 외국사 포함)에 올라 있다. 그러나 흥국생명은 ‘재벌 계열 생보사 특별 검사’로 알려지며 큰 파문이 일었던 금감원 생보사 부문검사 대상에서는 제외됐다(<일요신문> 1052호 보도).
금감원 생명보험검사국 박성기 검사기획팀장은 “현재 8개사를 대상으로 부문검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흥국생명은 8월부터 진행할 종합검사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종합검사는 일감 몰아주기, 배당 결정 과정뿐 아니라 경영 전반적으로 검사하는 것을 말한다.
흥국생명 측은 “그동안 내부 안정을 위해 이익을 내면서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며 “6년 만의 배당인 데다 금감원이 권고한 35%에 못 미치는 배당성향 28.1%로 고액 배당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시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흥국생명 측도 인정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